선거 판 소용돌이에 몰아넣는 '정치권 X파일'
정치권 곳곳서 등장하는 이름 '김대업'
김대업, '이회창 병풍 사건 녹음 테이프' 폭로 당사자
김대업은 구속…대선서 치명타 입은 이회창
"X파일이 휘발성과 전파력도 짱인 소재이기에 윤석열(전 검찰총장)은 오래가지 못할 것 같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건 전형적인 구시대 공작 정치다. 제2의 김대업 공작 정치를 결코 묵과해선 안 된다."(하태경 국민의힘 의원)
"당시 김대업이 공작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회창 전 총재의 두 아들이 병역을 면제한 것도 팩트 아닌가. 국민 감정에 부합하는지 따져야 한다."(홍준표 국민의힘 의원)
'윤석열 X파일'로 정치권의 시계는 차기 대선을 향해 빠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차기 대선 후보들이 아직 링 위에 오르지 않았지만 공중전은 어느 때보다 뜨거운데요. 정 의원의 표현대로 그만큼 휘발성이 크다는 건데, 윤석열 X파일은 차기 대선의 큰 변수로 작용할 것 같습니다 .
그런데 국민의힘에서 바로 '공작 정치'라는 프레임으로 맞불을 놨습니다. 그러면서 사용한 표현이 '김대업 사건'인데요.
사실 주요 선거 때 여야의 공방이 격해지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게 김대업이란 이름입니다. 여야는 의혹이 제기되면 상대 당에 '제2의 김대업'이라며 역공을 펼치는 형식인데, 김대업 사건이 대체 뭐길래 정치권이 민감하게 구는 걸까요.
1997년 이어 2002년 대선서 가장 큰 변수 된 '이회창 병풍 사건'
김대업 사건은 2002년 대선 때 선거 판을 뒤흔든 X파일의 원조 격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병풍(兵風) 사건'으로도 불렸는데요. 병풍은 병영 논란을 말합니다. 대권을 거머쥘 가능성이 꽤 높았던 절대강자 이회창 한나라당(1997년 대선 때는 신한국당) 후보는 아들 군 면제 비리 의혹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됩니다.
이와 관련한 내용을 녹음한 게 김대업씨의 X파일인 셈이죠.
다만 김대업 사건에 '공작'이란 꼬리표가 붙는 이유는 이 후보를 정조준한 아들 군 면제 특혜 의혹이 무혐의로 끝났고, 의혹을 폭로한 김대업씨는 구속됐기 때문입니다.
이회창 후보의 두 아들 군 면제 의혹은 1997년 15대 대선 때도 핵심 이슈였죠. 두 아들 모두 비슷한 기간 체중이 10㎏ 이상 줄어 병역 면제 판정을 받았습니다.
첫째 아들 정연씨는 179㎝ 큰 키에 45㎏이 나왔고, 둘째 아들 수연씨는 41㎏이 나와 5급 면제 판정을 받았는데요. 당시 병적기록부 조작·은폐 의혹까지 불거지며 정치권의 공방은 길어졌습니다.
5년 뒤인 2002년 16대 대선에서도 이 후보에 대한 병풍 논란은 이어졌습니다. 다만 5년 전과는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됐는데요. 이 후보 측이 두 아들의 군 면제를 청탁했고, 이를 다룬 녹음 테이프가 있다는 폭로가 터졌습니다.
당시 4개의 녹음테이프가 있다고 폭로한 건 의정 부사관(당시는 하사관으로 불리었음) 출신이자 전 병역 비리 합동수사반원을 지낸 김대업씨입니다.
김대업, 의정 부사관으로 활약했지만…병역 비리에 연루도
당시 김씨는 독특한 이력으로 주목을 받았는데요. 군 병원 신검(신체검사) 부서에서 오래 근무한 경력을 인정받아 1998년 민간인으로는 처음으로 군검찰단 의정 수사관에 발탁됩니다.
3년 동안 병무 비리 사범 1,000여 명을 적발할 정도로 이 분야에선 탁월한 능력도 보였죠. 심지어 당시 병역 비리로 복역 중이었는데 이례적으로 수사팀 합류를 요청받기도 했습니다.
김씨는 검·군 병역 비리 수사에 참여했지만, 정작 자신이 병역 비리에 연루돼 협박·사기 등의 혐의로 여러 차례 사법 처리를 받았는데요. 1997년 7월 협박 혐의로 구속됐고, 의정 수사관 근무 직후인 2001년 3월 사기 혐의로 구속됐다가 이듬해 3월 출소했습니다.
김씨는 2002년 7월 이 후보의 아들 병역 비리 관련 폭로로 정치권에 또다시 폭탄을 터트립니다.
김씨는 또 같은 해 8월 이 후보의 부인 한인옥씨가 장남 병역 면제 과정에 개입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15대 대선 직전 한나라당 두 의원과 병무청 고위관계자들이 장남 병역 관련 비리 은폐를 모의한 대책 회의 녹취록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군 고위 관계자들의 증거 인멸 시도도 있었다고 했죠.
김대업 폭로에…여야, 반년간 고소고발 남발하며 극한 대치
당시 한나라당은 김씨의 주장을 정치 공작으로 규정하고 강경 대응에 나섭니다. 병풍 사태를 장기 쟁점화하려는 새천년민주당과 정치 검찰, 김씨를 '3각 정치 공작'이라는 프레임으로 대응했죠. 민주당은 이에 검찰의 수사를 방해·협박한다며 한나라당의 정치 공작이 도를 넘었다고 응수합니다.
여야, 그리고 김씨는 고소고발을 남발했고 공방전은 갈수록 뜨거워졌습니다. 김씨는 한나라당 지도부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한나라당은 김씨의 폭로 배후에 민주당 의원이 있다고 역공을 펼쳤습니다. 한나라당은 정권 퇴진 운동과 김대중 대통령의 탄핵도 추진하겠다고 으름장을 놨죠.
그러자 김씨는 정치인 15명의 병역 비리와 정연씨 병적기록표 바꿔치기 의혹을 추가로 제기합니다. 그러면서 한나라당이 자신에게 거액을 제시, 회유했다며 한나라당을 향한 공세 수위를 높입니다.
한나라당은 이에 녹음테이프가 편집·조작됐다고 맞서는데요. 당시 홍준표 의원은 "1998년 김도술 전 국군수도병원 주임원사에 대한 군검찰 수사 기록을 받아봤더니 이 후보의 장남 관련 내용은 들어있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검찰, 이회장 아들 병역 비리 무혐의로 종결
김씨의 폭로로 촉발된 병풍 사건은 정치권은 물론 검찰과 군, 정부까지 소용돌이에 빨려들게 됩니다. 당시 수사를 맡은 검사의 자격 시비는 물론, 군의 구조적 문제까지 터지며 아수라장이 됐죠.
검찰도 사태를 오래 끌 수 없다며 수사에 속도를 높였는데요. 병역 비리 의혹을 수사한 서울지검 특수1부는 2002년 10월 정연씨 병적 기록표 위·변조 의혹에 대해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또 '김씨의 녹음 테이프 음성 분석 결과 목소리를 판단할 수 없다'고 했는데요. 그해 10월 25일 서울지검은 이 후보의 아들 병역 면제 의혹에 대해 무혐의 종결키로 합니다.
이듬해인 2003년 1월 25일 검찰은 김씨에게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합니다. 그해 2월에는 서울지검이 김씨가 검찰의 병역 비리 수사에 참여하면서 수사관 행세를 한 사실을 확인, 공무원 자격 사칭 혐의를 추가해 구속기소하고 수사를 마무리합니다. 대법원은 2004년 2월 김씨에게 징역 1년 10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합니다.
김씨는 얌전하게 물러나지 않아 다시 한번 눈길을 끌었는데요. 그는 한나라당의 사과와 반성 요구에 대해 2005년 5월 서울 강서구 염창동 한나라당 당사로 사과 한 상자를 보냅니다.
사과 상자에 "한나라당 의원 김문수, 김무성, 전여옥, 박근혜. 사과 상자 속에 서신 재중. 사과받기를 간절하게 원하시니 사과를 드리오니 사과를 받으시오. 김대업 보냄"이라고 쓴 종이를 넣어 조롱한 것이죠.
김씨는 병풍 사건 이후에도 사기 등 각종 혐의로 감방을 들락거립니다. 2014년에는 불법 사행성 오락실을 운영하다가, 2019년에는 강원랜드 사업권을 미끼로 금품을 받아 챙긴 혐의로 체포됩니다. 당시 김씨는 3년 동안 도주 생활 끝에 필리핀에서 붙잡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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