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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형사사법시스템...수사단계 충분한 정보 줘야"

입력
2021.06.30 04:3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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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에 빠진 내 사건]<하>단계마다 정보 제공
국가기관 개혁 초점, 국민 불편 심각히 인식 안해
원점 복귀는 비현실적...예측 가능성 담보돼야
검·경에 단계별 정보 제공 의무 조항 신설 필요
고소장 반려 동의서 도입해 '반려 신뢰 확보'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7월 1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국민의, 국민을 위한 권력기관 개혁' 등이 포함된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7월 1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국민의, 국민을 위한 권력기관 개혁' 등이 포함된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올해 1월 70년 만에 새로운 형사사법시스템을 출범시켰지만, 검찰 수사권을 축소하고 비대해진 경찰 수사를 견제하는 데만 집중하는 바람에, '국민의 국민을 위한 개혁'이란 수사권 조정의 의미는 크게 퇴색했다. 수사권 조정 뒤 수사경로와 단계가 복잡해지면서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었지만, 검찰과 경찰은 뚜렷한 개선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사 단계마다 당사자들에게 충분하고 투명한 정보를 제공하는 게 현실적 대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금이라도 국민 입장에서 시스템 수정·보완 필요

전문가들은 수사권 조정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현실과의 괴리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검찰과 경찰이란 국가기관 개혁에 초점을 두다 보니, 정작 새로운 제도가 국민들에게 불편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상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제도를 바꿀 때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떻게 도움이 될지를 최우선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며 "그런데 새 시스템이 도입되는 과정에선 이런 부분을 꼼꼼하게 따져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형사소송법학회장인 정웅석 서경대 교수는 "수사권이 조정되면 고소·고발 사건 처리 기간이 길어지고 처리 과정도 복잡해져 일반 시민들이 피해를 볼 것이란 지적이 있었지만, 정부에선 검·경의 권한 조정에만 주로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학계와 법조계에선 새 형사사법시스템이 너무 복잡하고 불편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원점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말한다. 서 교수는 "새로운 제도는 한번에 완성되는 게 아니라 시행하면서 수정하는 게 일반적이다. 수사 서비스 이용자 관점에서 보완할 점이 나타나고 있는 만큼 지금이라도 예측 가능성이 담보된 명확한 시스템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일지. 송정근 기자

검·경 수사권 조정 일지. 송정근 기자


단계마다 판단 이유와 향후 절차 설명 의무화해야

형사사법시스템의 존재 이유가 권리 침해와 범죄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신속하게 재판을 받도록 도와주는 것이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새 시스템이 너무 복잡해 전문가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수사기관에서 당사자에게 정보도 제대로 제공하지 않고 있어 불신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의사에게 치료 전에 설명 의무를 부여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치료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듯이, 경찰과 검찰에도 이 정도 수준의 수사 단계별로 충분하고 완전한 설명을 하도록 의무를 지워야 한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경찰의 불송치 결정서에 수사진행 경과와 불송치 결정 이유를 상세하게 쓰도록 하고, 불송치 이후 진행될 수 있는 상황을 모두 적시해 고소인들이 다음 상황을 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승 연구위원은 "현재 법령과 규칙에 수사단계별 정보 제공 의무와 기준을 명시해 놓은 조항이 없다. 향후 이런 내용이 반영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소장 반려 신중히… 입건 전 수사 목소리도

수사 서비스 이용자들의 가장 큰 불만인 경찰의 고소장 반려에 대한 촘촘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문도 나온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고소행위가 너무 많아, 고소장 반려를 아예 안할 수는 없어 현실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찰이 고소장을 반려해도 된다는 규정도 없어, 사실상 경찰 처분에 맡겨진 상황이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고소인 불만을 줄이려면 경찰이 고소인 주장을 얼마나 정확히 따져보고 설득력 있게 반려하느냐가 관건"이라며 "반려 과정에서 고소인에게 '반려 동의서'를 받게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입건 전 조사'를 신설하는 것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정식 입건은 아니지만 수사에 준하는 과정을 거쳐 입건 여부를 경찰이 판단하는 것이다. 경찰이 판단 근거를 충분히 설명하면 고소인도 납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현행법상 없는 제도라 법 개정이 필요하다. 일각에선 경찰의 임의적 판단을 막기 위해, 고소장이 접수되면 예외 없이 사건번호를 부여해 전산 입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경찰은 인력난을 들어 고개를 흔들고 있다.

보완수사 신속해야 수사 속도 높아져

수사 속도를 높이기 위해선 '보완수사 요구' 관련 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검찰은 경찰 수사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하면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는데, 경찰로 돌아간 사건이 너무 오래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참여연대 출신의 양홍석 변호사는 개정된 형사소송법에서 보완수사 요구 조항(197조의2)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조항은 '사법경찰관은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에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지체 없이 이행해야 한다'고 돼있다. 그러나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이란 조건 때문에, 경찰이 지체 없이 보완수사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양 변호사는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에 경찰이 웬만하면 따를 수 있도록 해야 그나마 신속한 수사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한국일보는 고소인 입장에서 새 형사사법시스템에서 복잡해진 사건 처리 절차를 직접 따라가볼 수 있는 '체험형 인터랙티브'를 제작했습니다. 한국일보 인터랙티브를 통해 '내 사건'이 어떻게 처리될 수 있는지 예측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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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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