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정상원 특파원 美 현지 취재]
붕괴 후 나흘째 여전히 실종 156명
더딘 구조, 생환 가능성 점점 희박
현장에 몰린 시민 추모와 비관 교차
천국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산더미 같은 잔해를 나흘째 헤치고 있지만 현장에는 지옥불 같은 연기와 먼지만 가득했다. 구조 성과도 변변하지 못했다. 숨진 채 발견된 9명을 제외한 실종자만 27일(현지시간) 오전 11시 기준 156명. 72시간으로 알려진 구조 '골든타임'이 지났지만 새로운 생존자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과연 이들은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26일 미국의 대표 휴양지 플로리다주(州) 마이애미데이드카운티의 서프사이드 ‘챔플레인 타워 사우스’ 붕괴 현장. 대서양과 마이애미비치 백사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던 12층 콘도(아파트)가 무너진 지 사흘째. 초여름 남국의 환한 태양빛에도 불구하고 이곳에는 사고 충격과 불안, 추모와 눈물의 어두운 그늘이 가득했다. 사고 현장 인근에서 만난 주민들은 “평소에도 건물에 불안감이 있었다”며 인재(人災) 가능성도 제기했다. 더딘 구조 작업과 무지막지한 붕괴 상황 때문에 “그들이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비관도 점차 고개를 들고 있었다.
더딘 구조 속 추모의 벽엔 눈물만
이날 오후 콘도 붕괴 현장 남쪽 ‘노스 쇼어 파크 비치’ 인근 도로로 들어서자 플로리다주 각지에서 온 소방서 구조 지원 차량이 길 한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연방재난관리청(FEMA)의 차량도 여러 대 눈에 띄었다. 소방관 딕슨은 기자에게 “교대로 현장에 들어가 실종자를 구조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라고 말했다. ‘언제 복귀할 것 같은가’라는 질문에는 “모르겠다”는 답만 돌아왔다.
공원 쪽 경찰 통제선을 통과해 미국 주요 방송사의 생중계 현장을 지나가자 무너진 콘도 건물 쪽 철망에 실종자 추모벽이 만들어져 있었다. 실종자의 환한 웃음이 담긴 얼굴 사진 30여 장과 추모 포스트잇, 꽃송이가 여기저기 꽂힌 모습이었다.
손을 잡고 기도를 하는 가족, 무릎을 꿇은 채 눈을 감고 묵상하는 남성 등 현장에는 추모의 기운이 가득했다. ‘로렌조와 그의 아빠 알프레도 리오네. 가족의 친구들이 그들(로렌조 부자)이 512호에 있었다고 내게 말했다’는 생환 기원 글귀와 사진, 역시 이 콘도 702호에 살고 있었다는 루이스 안드레스 버뮤다즈와 그의 어머니 안나 오티즈의 사연도 빗물에 젖었다 말라가는 시간 속에 글귀가 이미 바래가고 있었다.
9층에 살고 있다 건물 붕괴 때 5층으로 떨어져 수술을 받았던 안젤라ㆍ데본 곤잘레스 모녀의 가족들은 실종된 아버지 에드가의 사진을 붙여놓고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있었다.
사고 당일인 24일 오전 1시 30분쯤 남편과의 통화에서 “건물이 흔들린다”고 말한 직후 연락이 끊겼다는 카산드라 스트래튼의 사진에는 장미 두 송이가 달려 있었다. 그의 언니 스테파니 폰트는 미 언론 인터뷰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을 잃어 간다”며 말끝을 흐리기도 했다. 반면 92세 여성 실종자 힐다 노리에가의 며느리 샐리는 “신을 믿고 절대 희망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콜롬비아 출신 변호사 루이스 바스는 아내, 딸과 함께 미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맞고 고국으로 돌아가기 전 잠시 짬을 내 이곳에 머무르다 실종됐다.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베네수엘라 출신 등 실종자 중 3분의 1 정도가 중남미 출신 외국인으로 알려졌다.
실종자 생환할까? 희망과 비관 교차
추모의 벽을 지나 대서양 해변 쪽으로 접어들자 붕괴 사고 현장이 조금 더 눈에 잘 들어왔다. 멀리 마이애미 시내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들어오는 방향으로 대형 크레인이 한 대 서 있었다. 이 크레인은 해변 쪽에서 잔해를 들어 포클레인에 옮겨 싣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실제 현장에서는 지하에 터널을 뚫어 빈 공간 속에서 생존자를 찾고 있고, 지상에서는 콘크리트와 철근을 일일이 손으로 치우며 생존 신호를 확인 중이라고 했다.
구조 당국은 붕괴 현장 더 가까운 쪽으로 일반인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해변을 남북 양쪽에서 완전히 차단한 상태였다. 산책 나온 주민, 멀리서 일부러 찾아온 시민, 해수욕을 하다 수영복 차림으로 온 관광객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바리케이드 앞으로 몰려들었다.
“엄마 친구가 실종돼 현장에 왔다”는 매크리스는 붕괴된 콘도를 바라보며 연신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마이애미 인근 포트로더데일에 산다는 앤디 슬레이터(58)는 “18세 때 처음 운전면허를 딴 곳이 서프사이드라 뉴스를 본 뒤 현장 상황이 더 궁금해져 와봤다”며 “비가 오고 해서 스며든 빗물이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니 몇 사람이라도 살아 있기를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옆에 서 있던 인근 주민 가브리엘은 “주변 건물 중 무너진 콘도가 가장 오래됐고 낡았다. 건물이 너무 처참하게 무너졌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번 사고는 미국인들에게 또 한 번의 트라우마로 다가오는 듯했다. 은퇴한 해안경비대원 엠브리엘은 “9월 11일이 생일인데 2001년 9ㆍ11테러를 TV 생중계로 보면서 충격을 받고 영원히 못 잊게 됐다”며 “이번 사고도 여러 사람들에게 그렇게 각인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에 후진국형 인재ㆍ참사라니” 한탄도
현장 수색ㆍ구조 책임자인 다니엘라 레빈 카바 마이애미데이드카운티 시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최우선은 수색과 구조다. 잔해에서 생존자를 찾을 것이다. 우리는 계속 희망을 품고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사망자 시신 일부가 현장에서 발견된 것을 제외하고 생존 신호조차 제대로 포착되지 않는 비관적 상황이 현실이다. 현장에서는 잔해 속 불길, 연기 때문에 수색과 구조에 더 어려움을 겪었으나 27일 오전 다행히 불길은 잡혔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는 서프사이드 당국이 공개한 2018년 보고서를 토대로 붕괴한 콘도가 3년 전 점검 때 심각하게 손상됐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수영장을 둘러싼 상판 아래 방수제, 더 아래에 있는 콘크리트판 모두 하자와 손상투성이였다. 콘크리트 기둥과 벽에 금이 가고 바스러진 부위도 관측됐다고 한다. 아파트 관리를 맡은 주민위원회는 이 보고서를 토대로 조만간 대규모 보수 작업에 돌입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콘도 건물에 다양한 문제가 있었지만 적절한 조처가 늦었다’는 점에서 결국은 인재였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특히 100명 이상의 인명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후진국형 사고가 미국에서 발생했다는 점과 사고를 조기에 수습하지 못하는 이유 등에도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슬레이터씨는 “주위에서 어떻게 미국에서 이런 사고가 벌어질 수 있는지 한탄하는 목소리가 많다”며 “수십 년 부실하게 공사했던 결과가 하나씩 드러나는 것 아니냐”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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