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의 존재 이유나 다름없는 ‘정치적 중립’이 도전받고 있다. 현직 수장이 중도 사퇴, 그것도 정치 입문을 위해 직을 내려놓으면서 상당히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금과옥조로 여겼던 감사원의 위상 하락이 불가피한 것은 물론 국민의 신뢰를 되찾아야 하는 난제를 떠안게 됐다.
28일 최재형 원장이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하면서 감사원은 당분간 강민아(56) 감사위원이 원장 대행을 맡는 과도 체제로 운영될 전망이다. 감사원법은 ‘원장의 궐위 혹은 사고 시 감사위원으로 최장기간 재직한 이가 권한을 대행한다. 재직기간이 같은 감사위원이 2명 이상인 경우 연장자가 대행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현재 감사위원 5명 중 2018년 3월 임용된 강 위원과 손창동 위원이 재직 기간이 가장 긴데, 강 위원의 생일이 한 달 정도 빨라 대행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 강 위원이 권한대행 자리에 오르면 여성으로서 첫 감사원 수장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시스템이 구비된 만큼 업무 공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실추된 위상이다. 감사원은 국가기관과 공무원의 직무를 감사ㆍ감독하는 사정기관.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는 독립성이 최우선 덕목이고 그만한 권한을 보장받고 있다. 그러나 대선 출마 여지를 남기고 떠난 최 원장의 중도 하차는 감사원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꼴이 돼버렸다.
조직 내부도 술렁이고 있다. 최 원장이 사퇴한 이날 감사원 안에서는 그간 온갖 권력기관의 외압을 무릅쓰고 진행한 모든 감사 활동이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을 거란 비판이 터져 나왔다. 한 직원은 “감사원장 자리가 대선 출마를 위한 ‘스펙쌓기’ 용도로 변질되는 것 같아 걱정된다”고 했다. 감사원장 출신으로 대선에 나갔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한 김황식 전 국무총리 사례가 있긴 하지만, 이들은 정무직인 국무총리를 거친 뒤 정치판으로 들어갔다. 감사원 정치화에 대한 우려가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감사원 관계자는 “최 원장의 인품과 별개로 조직의 정치적 중립성이 의심받게 돼 안타깝다”며 “외부에서 감사원 활동을 노골적으로 불신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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