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사의를 수용하며 "감사원장의 임기 보장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최 전 감사원장은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를 만들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사실상 정치 참여를 선언한 최 전 원장의 선택을 막을 수 없지만 부적절한 행동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은 오늘 오후 5시 50분쯤 최 감사원장 사의를 수용하고 감사원장 의원면직안을 재가했다"고 밝혔다. 최 전 원장이 사의를 밝힌 지 8시간 50분 만이다. 헌법에 규정된 감사원장의 임기는 4년으로, 2017년 12월 29일 임명된 최 원장은 임기를 6개월 남겨놓고 직을 중도사퇴한 셈이 됐다. 문 대통령은 사표를 수리하면서 강한 유감을 표현한 것이다.
청와대는 최 전 원장의 행보가 감사원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크게 훼손했다고 보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문민정부 들어 현직 감사원장이 임기 중에 사퇴한 것은 전대미문의 일"이라고 밝혔다. 전윤철·양건 전 원장 등 중도사퇴한 전례는 있지만 이들은 정치 행보가 아니라 정권 교체에 따른 사퇴였다.
문 대통령의 최 전 원장의 사의 수용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 때와 비교할 때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문 대통령은 지난 3월 윤 전 총장이 사표를 제출한 다음 날 수리했다. 이번에는 대권 도전 의사를 밝힌 최 전 원장의 거취 문제를 오래 끌지 않겠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최 전 원장의 결정을 작심 비판했지만,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날 관련한 언급을 가급적 피했다. 청와대가 최 전 원장을 비판할수록 향후 야권 대선주자로 나설 가능성이 큰 그의 정치적 존재감만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무시 전략'으로 보인다. 지난해 청와대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정면충돌하면서 윤 전 총장은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급부상한 전례를 감안했을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공약인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타당성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에 대해 "정치적 목적의 감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최 원장의 '탈(脫) 원전' 감사에 대해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며 강력 비판한 민주당과 온도 차가 있었다.
그러나 최 전 원장의 정치 선언이 기정사실화하자, 청와대에서도 격앙된 분위기가 감지돼 왔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최 전 원장이 정치에 뛰어들면서 그동안 그가 벌인 감사의 정치적 중립성도 의심받게 됐다"며 "사정기관 출신 고위 공직자의 정치권 직행을 막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이날 최 전 원장에 대해 "정치적 편향을 이유로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의 감사위원 임명을 거부했던 분이 원장을 그만두고 야권의 대선후보로 나온다는 것은 너무나 말이 맞지 않는 내로남불"이라고 직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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