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호정 의원, 등 파진 드레스로 타투법 제정 촉구
빨간 재킷 입고 공화당 의원 저격한 美 초선의원
모자 쓰고·유니폼 입고...대권주자들의 패션은?
대처 총리·올브라이트 장관, 핸드백·브로치 정치
"이런 거 하라고 국회의원 있는 거 맞습니다."
권위와 위엄으로 보이지 않는 철벽을 두른 듯한 국회에서 낯설고도 낯선 장면이 연출됐다. 지난달 16일 국회 앞마당 파란 잔디 위에 보랏빛 드레스로 한껏 멋을 낸 이가 등장했다. 등이 깊게 파인 이 드레스의 주인공은 바로 류호정(29) 정의당 의원.
류 의원은 이날 '타투업법'의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등에는 화려한 모양의 타투 스티커를 붙여 미적으로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류 의원의 용감한 '패션'만으로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듯했다. 타투는 개성을 존중하는 하나의 표현이니, 낡은 사고 방식을 버리고 새롭게 법을 제정해달라는 힘찬 목소리였다.
국내 대표 MZ세대(199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정치인 류 의원의 파격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고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정치와 패션이 만들어낸 절반 이상의 성공이었다. 그간 다양한 패션을 선보이며 예행 연습을 해왔던 경험이 한 몫 했다.
최근 '패션 정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MZ세대 청년 정치인들이 시의적절하게 실용적으로 활용해 눈에 띄더니, 내년 대선을 놓고 여야 대권주자들의 행보에도 패션 정치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MZ세대 정치인의 패션 정치는 개성·실용주의
류 의원의 드레스는 법안을 알리기 위한 일회성 퍼포먼스였다.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는 방법으로 정면돌파했다. 무릇 기성 정치인들은 눈살을 찌푸릴지 몰라도, 누구 하나 시도한 적 없는 젊은 정치인의 용기였다.
류 의원은 그로부터 일주일 후 국회 본회의장에 일명 '멜빵 바지'를 입고 들어섰다. 그는 "멜빵 바지의 유래는 노동자 작업복으로 안다"며 활동하기 편해서 종종 입는다고 했다.
패션에 자신의 정치적 가치관을 불어넣은 행보다. 그는 지난해 국회 본회의장에 붉은 계열 미니 원피스를 입고 나타나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국회가 50대 중년 남성의 차림인 검은색 수트와 넥타이로 상징되는 것에 반기를 들고 관행을 깨보려는 시도였다고 한다.
이후 류 의원의 패션 정치는 '젊은 정치'로 읽힌다. 권위와 품위에 눌려 행동이 굼뜬 기성 정치인과 다르다는 얘기다. 특히 그는 국회에서 긴급 의원 총회나, 동의안 투표, 대정부질문, 법률안 제안 등 중요한 일정이 있을 때마다 화려한 색상의 원피스, 데님 점프수트, 치마 정장 등 다채로운 의상을 입으며 언론과 여론의 눈도장을 받고자 애썼다.
이준석(36) 국민의힘 대표도 '노타이' '백팩'으로 젊은 정치인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허례허식이 아닌 자신에게 맞는 편한 패션을 선택해 활동성을 높인 것이다.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취향을 고수하는, 전형적인 MZ세대의 패션주의라 할 만하다.
복장의 TPO(시간·장소·상황)를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실용적으로 활용한 셈이다.
미국의 초선의원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AOC·32) 민주당 하원의원도 대담한 패션 정치로 목소리는 내는 정치인이다. 2018년 29세 나이로 선출돼 미국 역사상 가장 젊은 여성 의원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그는 패션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주요한 일정이나 사안에 맞춰 패션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그의 패션 정치 데뷔전은 2019년 1월 하원으로 국회의사당에 입성해 선서식을 할 때였다. 여성 참정권에 대한 찬사를 뜻하는 흰색 정장을 필수로, 그간 의원들에게 볼 수 없던 빨간 립스틱과 링 귀걸이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빨간 립스틱과 링 귀걸이는 의도적이었다. 그는 자신과 같은 '뉴욕 브롱크스 출신 히스패닉'인 소니아 소토마요르 연방 대법관에게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소토마요르는 미국 최초의 히스패닉 출신 대법관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그는 나흘 동안 인사청문회에 참석했는데, 당시 빨간 매니큐어를 바른 손톱이 빌미가 될지도 모른다는 주위의 권고에도, 지우지 않고 그대로 유지했다고 한다. 개성과 개인의 자유를 중시한 선택이었다.
AOC가 가장 주목받은 건 지난해 7월 의회 연설 때다. 빨간 재킷과 립스틱으로 무장하고 연단에 섰다. 그는 자신에게 욕설을 한 테드 요호 공화당 하원의원에게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내 부모님은 남자들로부터의 학대를 받아들이도록 나를 키우지 않았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에서조차 만연한 여성에 대한 폭력적 언어와 폭력 등 성차별적 문화를 알리고 중단을 요구하는 연설이었다.
공화당 상징색인 빨간 재킷을 입은 건 '신의 한 수'였다. 연설 내내 공화당과 요호 의원의 잘못을 떠올리게 하면서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실제로 쇼핑 검색 플랫폼 리스트(Lyst)에 따르면 AOC의 연설 이후 닷새 동안 빨간색 재킷 검색이 75% 증가했을 정도였다.
미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AOC는 스타일을 즐기는 것이 그의 능력을 손상시키지 않으며, 패션이 차세대 리더에게 영감을 주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권주자들도 패션 정치?...보여주기식은 진정성 없어
대선 출마를 선언한 여야 대권주자들은 바쁘다. 당장 내년 3월 대선까지 시간이 많지 않아서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강한 인상은 전달하기 위해 애쓴다. 특히 '이준석 현상'으로 무섭게 떠오른 20·30대에 어필해야 하는 운명에 놓였다.
그러자 패션의 '패'자도 모를 것 같은 60·70대 대권주자들도 패션을 활용한 정치에 눈길을 주고 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아재' 패션에서 벗어나기엔 아직 어색한 점이 많다.
야권 대선주자인 윤석열(61) 전 검찰총장은 얼마 전 특별한 '모자 패션'으로 눈길을 끌었다. 지난달 19일과 23일 공원에서 산책하는 모습이 포착됐는데, 이때 '천안함 모자'를 착용했다. 앞서 대전에서 천안함 생존 장병 회장인 전준영씨를 만난 뒤 선물로 받은 모자였다.
윤 전 총장이 두 번씩나 천안함 모자를 쓰고 산책했다는 건 의도적인 행동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의 최근 행보 때문이다. 윤 전 총장은 지난달 9일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하며 퇴임 후 첫 행보를 보였고, 29일에는 대선 출마 선언을 위해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정치권에선 애국, 국방, 보훈 등의 코드로 읽힌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천안함 모자 패션이 보수 진영에 보내는 메시지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이준석 대표가 당대표 선출 전후로 천안함 유족들과 스킨십을 보였던 점을 감안하면, 윤 전 총장 역시 젊은 층에 어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MZ세대에게 다가가기엔 너무 경직된 패션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검사 출신답게 어두운 계열의 정장과 점퍼 등에 익숙한 듯하다. 심지어 젊은 층에 어필하려고 개설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대문 사진에서 전준영씨를 만난 날 보았던 줄무늬 셔츠를 입고 있다. 어쩐지 세련된 패션 정치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여권 대선주자들은 젊은 세대를 잡기 위해 디지털 문화에 접근했다. 정세균(71) 전 국무총리는 소셜미디어 플랫폼 '틱톡'을, 이낙연(69)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e스포츠(온라인 게임)를 선택해 나름대로 패션 정치를 선보였다.
정 전 총리는 류 의원 못지 않은 파격을 택했다. 뜻밖에도 '힙합패션'을 선보이며 10·20대가 주요 이용하는 '틱톡'에 등장했다. 그는 영상에서 독도 티셔츠 위에 가죽 재킷과 벙거지 모자,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등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참신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러웠던 게 문제였을까. 젊은 세대의 환심을 사려던 작전은 도리어 '표절' 논란을 부르며 희석됐다. 젊은 층으로부터 캐나다 퀘백 정부가 제작한 할머니 동영상과 매우 흡사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정 전 총리는 해명을 해야 했다. 그는 "유명한 영상이나 동작을 패러디하는 틱톡의 문화 특성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젊은 세대의 마음을 얻으려고 그들의 놀이문화인 틱톡에 얼굴을 내밀었다가 "어설프다"라는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낙연 전 대표는 지난달 두 차례나 e스포츠 경기장을 찾았다. 그 곳에서 실제 온라인 게임도 체험했고, 한 번은 팀 유니폼까지 챙겨 입고 젊은 대학생들과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그는 지난달 30일 광주시 동구 조선대 e스포츠경기장에서 호남대 e스포츠산업학과 학생들과 만났다. 그는 호남대 학생들과 함께 유니폼을 입고 FPS 게임을 위해 준비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앞서 14일에는 서울 광화문 롤파크를 방문해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를 체험하기도 했다.
특히 이 전 대표는 유니폼 패션을 통해 경직된 모습을 내려 놓았다. 평소 근엄한 이미지의 그가 유니폼을 입고, 그것도 게임에 몰두하는 것은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그림이었다. 달리 말하면 이 전 대표가 젊은 표심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 전 총리와 이 전 대표가 디지털 문화에 접근한 건 탁월했다. 그러나 이들의 패션 정치에는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려울 듯하다. 수십년의 정치인생 동안 패션으로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는 등의 활약을 보인 적이 없어서다. 대중 역시 이들의 '깜짝' 시도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한 패션브랜드 디자이너는 "대선주자들이 젊은 세대에 어필하려는 욕구는 강한 반면, 그들을 환기시킬 만한 패션 활용의 경험은 부족해 보인다"면서 "미국처럼 스타일리스트 등 패션 전문가를 조기에 영입해 체계적으로 선거를 준비하는 작업도 중요해졌다"고 조언했다.
굳이 남다른 패션 감각을 앞세우거나 스타일리시해 보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보여주기식의 패션 정치는 진정성이 없다는 얘기다.
패션 정치의 고수들은 누구일까
미국과 영국은 역사적으로 세계 정치와 경제, 문화 등을 이끌어 오면서 패션 정치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었다. 특히 미디어 분야의 발전은 정치인의 패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철의 여인' '대처리즘' 등 수식어를 가진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 당시만해도 남성들의 정치판에서 강직한 카리스마를 표출한 여성 정치인이었다. 그의 강단 있고 확고한 이미지는 알고 보면 패션이 완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처 총리의 패션 정치는 간결했다. 다양한 색감의 치마 정장과 목 둘레를 리본으로 묶는 '푸시 보우(push bow)' 블라우스, 손잡이가 달린 네모진 핸드백이 그의 정치 색깔을 반영했다. 남성들의 넥타이에 맞서 푸시 보우 블라우스로 격식을 갖추는 동시에 목걸이와 귀걸이 등 진주를 활용한 액세서리로 부드러운 이미지를 추가했다.
그가 분신처럼 들고 다니던 '라우너(Launer)' 블랙 핸드백도 특별했다. 대처 총리는 고위급 각료 회의나 각국의 정상회담 등 중요한 행사 때마다 이 가방을 들었다. 자신의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데 이처럼 좋은 '무기'는 없었다. 그가 테이블에 이 핸드백을 올려 놓는 순간 장관들을 긴장하게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오죽하면 '핸드 배깅(hand bagging)'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을까.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관철시킨다는 뜻으로, 대처 총리의 깐깐한 성품과 정치 철학이 담긴 셈이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미국의 외교 정책을 지휘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도 패션 정치의 고수였다.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이었던 그는 각국의 지도자들을 만나며 '브로치 외교'를 펼친 인물이다.
그는 외교적 상황에 따라 재킷 위에 브로치를 달고 메시지를 전했다. 2000년 북한 평양에서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을 가졌을 때는 한쪽 어깨를 덮을 만큼 큼직한 미국 성조기 브로치를 달았다.
강한 미국의 이미지를 극대화하려는 전략이었다. 그는 자신의 저서 '내 브로치를 읽어보세요(READ MY PINS·2009)'에서 "미국이 강하고 자신감 넘치는 나라임을 강조하기 위해 대담한 디자인의 브로치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같은 해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회담을 가질 때는 햇살 모양의 브로치를 착용했다. 김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햇볕 정책을 지지한다는 의미였다.
자신을 '독사'라고 표현한 당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만났을 때는, 그의 말에 아이디어를 얻어 뱀 브로치를 선보였다. 자신의 철학과 신념을 드러내는 데 브로치를 이용했다.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은 "외교관계에서 조금 따끔하고 힘든 메시지를 전해야 할 때는 말벌 브로치를, 의견 조율이 더디게 진행될 때는 게와 거북 모양의 브로치를 선택했다"고 저서에 썼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전략적인 패션을 선보이곤 한다. 세계 역사상 가장 많은 사진이 찍힌 여성 중 한 명인 여왕에게 패션 정치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왕의 옷장에는 화려하고 눈에 띄는 디자인과 색감이 넘쳐난다. 특히 여왕의 치마 정장 대부분은 노란색, 주홍색, 자주색, 연두색, 로얄 블루색 등 독특하고 대담한 색깔을 자랑한다.
여왕의 셋째 아들 에드워드 왕자의 아내 소피 웨식스 백작부인은 "여왕은 군중이 그녀를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옷을 입는다"고 2016년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말했다.
영국을 60년 동안 통치한 군주로서 여왕의 이미지는 영국 국민에게 안정과 전통을 의미한다. 그래서 멀리서도 여왕의 모습을 한 번에 찾을 수 있도록 국민들을 배려한 옷차림이기도 하다.
영국 왕실전문 한 저널리스트는 "여왕이 의상의 색깔을 고를 때 고려 사항은 잔디가 많은 장소에서 푸른 계열 옷을 피하고, 어두운 실내에선 어두운 색상을 입지 않는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여왕의 패션은 외교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30년 동안 여왕의 복장 고문으로 일한 앤젤라 켈리는 "모자 하나를 디자인하기 위해 일기 예보와 지역 관습에 이르기까지 조사해야 했다"며 "여왕의 패션은 현명하지 않으면 안 됐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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