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혐의 징역 10년 선고받았지만 2년 만에 출소
재판부, 범죄 행위 무죄가 아니라 기소 절차 문제 삼아
피해자들 성범죄자에 면죄부 준 사법시스템 성토
'미투(Me Too·나도 고발한다)' 운동 국면에서 처음으로 법정에 섰던 미국의 코미디언 빌 코스비(83)에 대한 유죄 판결이 뒤집혔다. 그는 판결 즉시 석방돼 자유의 몸이 됐다.
사법부는 성폭력 범죄 행위는 인정되지만, 기소 과정에 문제가 있어 무죄를 선고했다는 입장이지만, 피해자들과 시민들은 사법부가 성폭행범에게 '면죄부'를 줬다며 분노하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대법원은 30일(현지시간) 성폭력 혐의로 복역 중인 코스비의 유죄 선고를 기각하고 석방을 명령했다고 AP통신과 뉴욕타임스(NYT) 등 미 언론들이 보도했다.
코스비는 2004년 모교인 템플대학 스포츠 행정 직원이던 안드레아 콘스탄드에게 약물을 먹여 정신을 잃게 한 뒤 필라델피아 교외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그를 성폭행한 죄로 2018년 9월 1심 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뒤집힌 판결 왜? 사법 절차 문제 때문
재판부의 결정은 코스비의 성폭력 혐의 자체를 부인한 것이 아니라, 검찰 기소 과정의 기술적 문제로 그가 공정한 사법 절차를 누리지 못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사건 담당 검사가 성폭력 진술에 대해 형사처벌 하지 않기로 코스비 측과 합의했으나, 이를 저버리고 처벌한 것은 코스비의 정당한 방어권을 침해했기에 구제를 받아야 한다는 취지다.
NYT 등에 따르면 브루스 캐스터 주니어 전 몽고메리카운티 지방검사장은 2005년 콘스탄드 사건을 조사한 뒤 코스비를 형사 기소하기에는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대신 캐스터 전 검사장은 콘스탄드가 제기한 민사 소송에서 코스비의 증언을 독려하기 위해 그를 기소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검사장의 약속을 믿은 코스비는 민사 재판에서 자신이 여성들과 성관계를 하기 위해 약물을 준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후임자인 케빈 스틸 현 몽고메리카운티 지방검사장은 12년의 공소시효가 끝나기 직전인 2015년 12월 코스비의 민사 재판 증언 등을 근거로 코스비를 전격 체포해 성폭력 혐의로 기소했다.
이와 관련해 데이비드 웩트 펜실베이니아주 대법관은 코스비가 기소하지 않겠다는 전임 검사장의 약속을 믿고 사실상 자신의 유죄를 인정하는 증언을 한 것으로 판단했다.
웩트 대법관은 "정당한 법 절차 위반이 밝혀진 이상 우리는 코스비에게 주어져야 할 해결책을 찾아야만 한다"며 유죄 선고 기각과 이 사건에 관한 검찰의 추가 기소 금지가 바로 그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들 "완전히 역겹고 충격적" 사법시스템 성토
이에 검찰은 입장문을 내고 코스비의 성범죄는 명백한 유죄이며 이번 무죄 판결은 사건과 관련 없는 사법 절차의 문제 때문이라고 항변했다. 검찰은 이어 누구도 법 위에 서 있을 수 없다며 부자든, 유명인이든, 권력이 있든 간에 끝까지 증거를 찾겠다고 밝혔다.
일단 코스비가 법적으로 무죄 판단을 받아 법적 처벌을 피하게 되면서 미투 운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990년대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진 캐롤은 트위터에 "바로 이런 이유로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고 썼다.
코스비 피해자 측 변호를 맡았던 리사블룸 변호사는 CNN에서 "완전히 역겹고 충격적"이라고 말하며 사법시스템을 성토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성범죄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범죄에 맞서는 그들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도록 오랫동안 싸워왔다"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밝혔다.
코스비는 1980년대 인기 시트콤 '코스비 가족'에서 푸근하고 모범적인 아버지상을 연기하며 '미국의 아버지'라는 별칭을 얻으며 미국인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미투 운동을 통해 수십 명의 여성이 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하면서 '국민아빠'의 명성은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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