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의령 궁류면 한우산·찰비계곡·봉황대
자랑에는 과장이 섞이기 마련이다. ‘산세가 웅장하고 골이 깊어 곳곳에 기암괴석이 연출하는 절승이 즐비하다.' 경남 의령에서 두 번째로 높은 한우산(836m)에 대한 설명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골짜기는 사시사철 맑은 물이 굽이치고 흘러서 곳곳에 폭포를 만들어 일대장관을 이루고 있어 천하의 절경이다.’ 이 정도면 최소 설악산 수준이다. 이렇게 과대포장 하지 않아도 한우산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정상 바로 아래까지 차로 갈 수 있기 때문에 한나절 드라이브 코스로 손색이 없고, 별 준비가 없어도 고산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찬비 맞은 듯 서늘한 한우산
의령 읍내에서 한우산으로 가자면 대의면으로 이어지는 쇠목재를 넘는다. 한우산보다 조금 높아 형님 산으로 불리는 자굴산(897m)과 갈라지는 고갯마루다. 구불구불 연결되는 도로에서는 높은 산줄기에 둘러싸인 가례면 갑을마을이 그림처럼 내려다보인다. 옴폭한 화산 구덩이에 자리 잡은 것처럼 아늑하다. 예를 숭상한다는 의미의 ‘가례(嘉禮)’라는 지명은 퇴계 이황이 마을의 큰 바위에 새긴 ‘가례동천(嘉禮洞天)’에서 유래했다고 보고 있다. 퇴계는 처가인 이곳에 자주 들러 지역 선비들과 교류하고 때때로 낚시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부인 허씨는 혼인 7년 만에 세상을 떴지만 퇴계의 발걸음은 그 후에도 계속 이어졌다고 한다.
자굴산에서 이어지는 주변 산세는 소의 형상에 비유된다. 우람한 덩치의 자굴산은 황소의 머리, 동남으로 뻗은 한우산과 응봉산 줄기는 몸통, 신덕산을 엉덩이 부분으로 해석한다. 쇠목재는 바로 황소의 잘록한 목 부분에 해당된다.
이렇게만 보면 한우산이라는 명칭에서 자연스럽게 소가 연상되는데, 실상은 전혀 관계가 없다. 쇠목재에서 좁아진 도로를 따라 약 2㎞를 올라가면 전망 좋은 자리에 ‘한우정(寒雨亭)’이 세워져 있다. 삼복더위에도 서늘한 찬비가 내리는 곳이라는 의미다. 산 아래와 비교해 기온이 3~4도는 낮아지니 ‘찬비산’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한우정에서 산 정상까지는 400m만 걸으면 된다. 경사가 심하지 않고, 목재 산책로로 마실 가듯 편안하게 오를 수 있다. 길 양쪽은 철쭉이 빼곡하게 덮고 있다. 한우산은 그 자체로 경치가 빼어나다고 하기는 어렵다. 높이가 조금 있을 뿐 산세는 지극히 평범하다. 지리산처럼 품이 넓은 것도 아니요, 가야산처럼 기암괴석을 품고 있지도 못하다. 산꼭대기까지 찻길이 나 있으니 편하기는 하지만, 불가피하게 자연 훼손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지그재그로 산허리를 가르는 도로는 보기에 따라서 상처이자 흉물이다. 바로 앞 응봉산 능선에는 풍력발전용 바람개비가 쉴 새 없이 돌아간다. 산자락의 나무는 말끔히 베어져 급경사의 초지가 조금은 위태로워 보인다.
그럼에도 한우산이 아름다운 건 정상에서 보는 가슴 트이는 전망 때문이다. 누구는 별 보기 좋은 곳이라 하고, 누구는 철쭉이 장관이라 하지만 어디까지나 특정 시간과 계절에 한정된 평가다. 이 산의 미덕은 누가 뭐래도 사방으로 펼쳐지는 산 능선에 있다. 정상에는 철쭉을 비롯한 키 작은 나무가 자라고 있고, 작은 억새 평원이 형성돼 있어 사방으로 전망이 확 트였다. 서편으로 지리산 천왕봉과 합천 황매산, 북측으로 성주 가야산과 달성 비슬산, 동편으로는 창녕 화왕산과 영취산까지 높고 낮은 산줄기가 파도 치듯 이어진다.
야트막한 동네 뒷산부터 이름난 명산까지 첩첩 능선이 한우산을 호위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좁은 골짜기에 터를 잡은 마을이며 들판에서 아침저녁으로 안개라도 피어 오르면 산줄기는 더 선명하면서도 포근해진다. 부드러운 듯 격정적이고 날카로운 듯 유연하다. 위협적이지 않지만 결코 만만하지 않은, 전형적인 한국의 산하가 장관으로 펼쳐진다.
한우정에서 아래쪽으로 연결된 산책로를 따라가면 한우산 철쭉과 의령의 대표 먹거리 망개떡에 도깨비 이야기를 더한 ‘철쭉설화원’ 길이다. 연인 관계인 한우도령과 응봉낭자, 이를 시기한 도깨비 ‘쇠목이’ 사이의 사랑이야기가 산책로를 따라 동화책을 펼치듯 이어진다. 곳곳에 이야기 속 캐릭터를 조형물로 설치해 놓아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설화로 착각할 정도인데, 알고 보니 최근에 창작한 이야기라고 한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 한우산의 전설이 될 수도 있겠다.
한우정 바로 아래에는 의령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솔숲이 있다. 한우산의 강한 바람과 추위에 적응하며 자라는 ‘홍의송’이다. 한 줄기로 곧게 뻗는 일반 소나무와 달리, 홍의송은 바닥에서부터 여러 갈래로 가지를 뻗어 높이가 4~5m에 불과하다. 의령 출신 의병장 곽재우(1552~1617)를 이르는 홍의장군에서 이름을 땄다. 솔숲 산책로는 길지 않지만 홍의송 가지가 오솔길 터널을 이루고 있어 색다른 정취를 선사한다.
한우산 정상 부근 2곳에 주차 공간이 있다. 한우산 생태주차장에 20여 대를 댈 수 있고, 한우정 앞에도 10여 대를 댈 수 있다. 그러나 이곳까지 가는 도로는 폭이 좁고 굴곡이 심해 평일에만 개방한다. 주말과 공휴일에는 쇠목재에 차를 대고 걸어야 한다.
신라 선봉 부대 전설 깃든 봉황대
한우정에서 쇠목재 반대 방향으로 내려가면 찰비계곡이다. ‘찰 한(寒)’에서 훈을 그대로 따왔으니 한우산의 정체가 한결 분명해진다. 계곡으로 내려가는 도로는 쇠목재 방향보다 좁아 일부 구간에서는 차량 두 대가 비켜가기 힘들다.
찰비계곡은 일대에서 이름난 피서지였다. 옛 문헌에는 각시소와 농소, 아소 등 굽이마다 비경을 품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홍수 방지를 위한 사방댐을 설치한 몇몇 구간에서만 계곡에 발을 담글 수 있다. 하류 벽계저수지 부근에 야영장을 조성한 후부터는 인적이 더욱 뜸해졌다.
찰비계곡 초입의 벽계마을은 궁류면에서도 심산유곡이다. 다섯 집 이상은 지을 수 없을 정도로 터가 좁다는 ‘오호땀’, 한가로이 백로가 날갯짓하던 ‘배애골’, 소(沼)에 살던 용이 승천하면서 꼬리에 받혀 생긴 ‘용농굼티(굼턱)’, 약수 우물이 있었다는 ‘집너매새미’ 등의 자연 부락과 옛 지명이 전해오는데, 이제 계곡 주변에 남은 민가는 손에 꼽을 정도다.
벽계저수지에서 조금 내려오면 오른쪽으로 잘생긴 바위 봉우리 아래에 일붕사라는 사찰이 있다. 727년 혜초 스님이 창건한 성덕암을 모태로 최근에 지은 사찰이다. 불교학자인 서경보 박사가 자신의 호를 따서 설립한 일붕선교종 총본산이다.
일붕사는 생소한 종파임에도 인근에 꽤 이름이 알려져 있다. 세계 최대라 자랑하는 2개의 동굴 법당이 있기 때문이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에 무량수전과 대웅전, 두 전각이 입구만 드러내고 있다. 통로를 따라 대웅전 안으로 들어가면 강당처럼 드넓은 법당이 나오고, 정면 벽에 삼존불이 새겨져 있다. 서늘한 바위 동굴이니 더위를 식히기에 그만이다.
사찰 옆 기암괴석 봉우리는 봉황대로 불린다. 백제와 대야성(합천) 전투를 앞둔 신라군의 선봉장 법민(김춘추의 아들)이 진을 쳤다는 곳이다. 봉황대(鳳凰臺)는 경치 좋은 전망대인 동시에 신라 선봉 부대의 이름이기도 하다.
곧장이라도 쏟아질 듯 아슬아슬한 바위봉우리 아래로 산책로가 나 있다. 돌계단을 조금 오르면 봉황루라는 작은 누대가 있고, 바로 앞의 넓은 암반이 쉼터가 돼 준다. 암반 가장자리는 아찔한 절벽이다. 한우산 자락에서 그나마 넓다는 평촌 들녘이 평온하게 내려다보인다. 발길을 조금 옮기면 거친 바위가 세로로 길게 쪼개진 틈으로 길이 나 있다. 사람 한 명 겨우 지날 정도로 좁은 석문이다.
석문을 통과해 올려다보면 처마처럼 허공에 뜬 바위가 아찔하면서도 웅장하다. 좁은 암벽 사이에 약수터가 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현재는 물이 말라 있다. 요즘에는 심심치 않게 박쥐가 출몰해 박쥐바위라고도 부른다. 산책로는 일붕사에서 주차장까지 불과 200m 남짓하지만 웅장함과 섬세함을 두루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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