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식 정상회담마저 회피한 스가 총리
낮은 지지율 소수파 세력 정치적 한계
바이든 주도 한미일 정상회담에 기대
한일관계는 10년 이상 구조적이고 장기적 악화 상태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작년 가을부터 문재인 정부는 대일관계를 개선하고 정상화하려고 무척 애쓰고 있다. 이 움직임은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호응하는 맥락에서 추동되고 있다. 즉, 미국은 동맹국 간의 연대를 구축하여 중국을 견제하고 북한의 위협에 공동 대처하기 위해 한미일 삼각 안보체제의 공고화를 강력하게 주문하고 있다. 또한 하노이 노딜 이후 정체해 있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재가동하기 위해 일본 찬스를 활용하려는 전략적 계산도 한몫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도 일본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스가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위안부, 징용 문제의 해법을 내지 않은 채 내미는 손길에는 불응한다는 자세다. 문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2015년 위안부 합의는 정부 간 공식 합의로 인정”하였고 징용 배상 판결의 현금화 조치에 대해서는 “당혹스럽다”고 언명함으로써 사실상 대일 배상을 청구할 뜻이 없음을 밝힌 셈이다. 물론 이 언명에도 불구하고 해결 방안에 대해서는 여전히 구체적인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기대를 모았던 영국 G7 회의 석상에서의 문재인 대통령과 스가 총리의 약식 정상회담은 내 탓 네 탓 공방만 남기고 어이없이 무산되었다. 외교부는 일본이 ‘독도방어 훈련’을 핑계로 일본이 일방적으로 회담 약속을 파기했다고 비판했고 일 외무성은 확약이 아닌 정상 간 대면이 스가 총리의 일정상 성사되지 못한 것이라고 해명하였다. 어찌되었든 이 해프닝은 기본적으로 한일 정부의 수뇌부 간 전략적 소통과 대화 그리고 최소한의 신뢰마저도 존재하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어떻게든 정상회담을 통해 관계 정상화의 모맨텀을 만들어 보려는 우리 정부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일 정부는 팔짱을 낀 채 숙제 제출만을 재촉하는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는 양상이다.
그렇다면 왜 스가 정부는 일견 한국에 대해 협량하고 고집스러운 태도를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사실 바이든 행정부의 한미일 공조 협력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스가 정부도 매한가지다. 스가로서는 심화하는 미중 전략 대결 구도하에서 한국과의 타협을 통해 근린 외교를 안정시킬 필요를 절감하고 있을 터이다. 전통적으로 일본의 전략가들은 ‘한반도를 일본을 향하고 있는 피스톨’로 비유하고 한반도의 대일 적대 세력화를 우려해 왔다. 그럼에도 스가 총리가 당면한 일본 내 정치 현실은 그다지 녹록지 않은 듯하다.
스가 총리는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고 성공리에 도쿄올림픽을 성사시켜 9월 자민당 총재선거와 10월 총선거에서 승리를 거머쥠으로써 1년짜리 잠정 정권 딱지를 떼고 본격 정권으로 재출발하려는 꿈을 꾸고 있다. 자민당 내 소수파로 내각 지지율 하락에 시달리는 스가 총리로서는 한국과의 섣부른 타협이 초래할 역풍을 경계한다. 일본의 정치권과 언론은 문 정부를 ‘친북 반일 정권’이라고 딱지를 붙이고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한일관계 악화의 뇌관인 위안부-징용 문제야말로 진보 정부의 어젠다라는 점에서 문 정부 임기 내 해결을 꾀하는 것은 매우 현실적인 요구이다. 열흘 남짓 후에 열리는 올림픽은 한일 정상이 대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지만 현재로선 기대 난망인 듯하다. 그렇다면 향후 남은 기회는 한중일 정상회담, G20, ASEAN+3, ARF 등 다자회담의 무대로 넘겨질 듯하다. 바이든 대통령이 나서 한미일 정상회담을 마련한다면 획기적으로 탄력이 붙겠지만, 만약 이도 어렵다면 문 대통령 임기 내 관계 개선은 요원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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