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노원구 경춘선 숲길?
월계동에서 태릉골프장까지 5.8㎞ 기찻길 흔적?
SNS에서 볼 법한 가게들로 젊은 느낌 물씬?
철도공원·강가 위 철교 등 다양한 코스
과거 서울서 대성리, 청평, 강촌으로 MT 가는 도시 청춘들을 실어나르던 경춘선. 왁자지껄한 경춘선 열차 안 분위기는 서울 노원구를 지나면서 고조됐다. 수락산과 불암산을 끼고 있는 서울의 변두리, 서울시계(市界)를 통과하면 곧 젊음의 해방구다. 대학생이 아니었더라도, 무작정 일상에서 탈출할 수 있는 통로. 그 덕인지 적지 않은 노래가 경춘선 철길에서 태어났다. 2010년 광운대역~서울시계 구간 운행 중단 소식이 아쉬움을 배가시켰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로부터 10여 년, 그 폐선 구간에 들어선 '공트럴파크'(공릉동+센트럴파크)'가 미약하나마 그 공백을 채우고 있다. 노원구 월계동 녹천중에서 태릉골프장까지 이어지는 길이 5.8㎞의 공릉동 경춘선 숲길이다.
취객과 소음 없는 '제2의 연트럴파크'
공릉동 경춘선 숲길을 걸으면 다양한 장면을 만난다. 다양한 모양의 주택, 젊은 감각의 카페와 음식점, 네온사인이 유혹하는 맥줏집 등 다양한 점포 앞으로 지나는 길이다. 아담한 자리를 얻어 맥주잔을 들이켜는 이들, 벤치에서 책을 읽거나 담소 나누는 이들, 산책하는 이들 등 다양한 연령대의 이웃들을 만난다. 길 가운데에 기찻길 흔적이 있고 양 옆으로 보행로와 자전거길이 나뉘어 있는 모양은 홍대 인근의 연트럴파크(연남동+센트럴파크)를 닮았다. 서울의 서편에 연트럴파크가 있다면 이곳 동편엔 공트럴파크가 있는 셈이다.
경춘선 숲길은 3개 구간으로 나뉘어서 변신했다. 그중에서도 2구간(1.9㎞)은 2013년 10월 착공, 2015년 5월 완공해 시민들에게 처음 개방됐다. 지하철 6·7호선 태릉입구역, 7호선 공릉역과 가깝다. 가장 먼저 문을 연 이유가 있다. 경춘선 숲길의 '앙꼬'다.
마포구 연남동의 경의선 숲길, 연트럴파크를 닮았으되, 이곳을 차별화시키는 것은 여유로움과 차분함이다. 인파, 벤치에 앉아 술을 마시는 야외 음주객 때문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연트럴파크와는 사뭇 다르다. 분위기 좋은 도심 숲길엔 사람들이 몰리게 마련이지만, 연남동보다는 한결 조용하다. 간간이 노천 음주객이 눈에 띄긴 하나, 주로 주민들로 보이는 중노년층이다.
6일 오후 친구들과 이 숲길을 걷던 홍모(28)씨는 "연트럴파크와 비교하면 무엇보다 소음과 쓰레기가 적어 좋다"며 "이 때문인지 최근 1, 2년 전부터 이곳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고 말했다.
붐비지 않는 곳이다 보니 반려동물과 산책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길가 곳곳에 배변봉투 지급기가 설치돼 있다.
서울 주요 상권으로 부상한 연남동처럼 '제2의 연트럴파크'를 꿈꾸며 이곳에 터를 잡은 상인도 적지 않다. 공트럴파크에서 파스타집을 운영하는 연제웅(30)씨는 "이 길 하나에 반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식당을 열었다"며 "가게를 연 지 1년 반밖에 안 됐지만 올해 들어 매출이 10% 이상 늘고 있다"고 말했다.
공트럴파크 인근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여기서 창업하는 이들은 대부분 중랑구 등 주변 강북권에 살던 주민"이라며 "인근에 대학교가 몇 개 있어 원룸에 사는 젊은이들이 이런 카페나 술집들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연트럴파크처럼 임대료 등이 급상승해 기존의 원주민들이 터전을 잃고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생기지 않는 것도 이곳만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세련된 감각의 가게가 즐비한 경춘선 숲길을 걷다 보면 '젊은'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전통시장과도 만난다. 노원구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인 공릉동 도깨비시장으로, 숲길과 시장통이 연결돼 있다. 시장 입구에서 채소를 팔고 있던 한 상인에게 길을 묻자 대뜸 이런 질문이 되돌아왔다. "자네도 여기 가게 차리려고?" 공트럴파크에서 창업하려는 젊은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경춘선의 역사 담긴 '화랑대 철도공원'
사람이 북적이는 공트럴파크를 벗어나 육군사관학교 방향인 경춘선 숲길 3구간(2.5㎞)으로 가면 또 다른 분위기의 길을 만날 수 있다. 옛 화랑대역(화랑대역사관)에서 경기 구리시계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이곳은 2017년 11월, 3개 구간 중 두 번째로 개통된 숲길이다.
이 길에선 화랑대 철도공원이 가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2018년 10월 만들어진 공원으로, 곳곳에 설치된 옛날기차들이 볼거리다. 2017년 5월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에 있던 1950년대 미카열차와 협궤열차가 여기에 자리를 잡았고, 그해 11월 체코 노면전차와 국립민속박물관에 전시 중이던 우리나라 최초 노면전차 모형이 이곳으로 왔다. 이듬해 1월에는 일본에서 기증을 받은 노면전차가 설치됐다.
강북구 미아동에서 일곱 살 아들과 함께 철도공원을 찾은 고모(36)씨는 "아들이 지하철과 기차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멀지 않은 곳에 이런 구경거리가 있어 보는 재미가 좋다"고 말했다. 철도공원은 6호선 화랑대역에서 1㎞가량 떨어져 있다.
철도공원은 해가 지면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3만8,000㎡ 부지 철도공원에 깔린 LED 은하수 조명이 이곳을 찾은 이들의 시선을 강탈한다. 빛 터널, LED 조형물, 3D 매핑 등 조명 구조물과 프로젝터를 활용한 투시장치 등 17종의 야간 경관 조형물로 이루어진 '노원불빛정원'이다. 일몰 후부터 밤 10시까지 불을 밝힌다.
3구간의 또 다른 매력은 능(陵)이다. 조선 중종의 제2계비 문정왕후의 능인 태릉과 명종과 인순왕후의 능인 강릉을 둘러볼 수 있다.
3구간 반대방향으로 지하철 1호선 월계역 방향으로 가면 1구간(1.2㎞)이 나온다. 1구간은 월계동 녹천중에서 공릉동 서울과기대 입구까지 이어진다. 2016년 11월 개통된 경춘철교가 이 구간의 핵심이다. 1939년 설치된 경춘철교는 2010년까지 72년 동안 중랑천을 연결하는 철길로 이용됐다.
1구간은 전체 3개 구간 중 가장 붐비는 곳이었다. 이른 아침 운동나온 사람들로 붐빌 때도 있다. 그러나 경춘철교로 가기 직전 경춘선숲길방문자센터에서부터 시작하는 커다란 소나무 숲을 지나다 보면 이곳이 도심 속 숲길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된다. 폐선 양쪽으로 길게 도열한 미루나무가 한 폭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경춘철교 앞 철길에서 만난 월계동 주민 정인숙(63)씨는 "아침에 이곳에 운동하러 나오면 온 동네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좋다"면서도 "풍광이 아름다워 이곳이 우리 동네가 아닌 것처럼, 서울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걷기 실천율' 1위 자치구 차지
총 5.8㎞의 경춘선 숲길은 이렇게 세 구간으로 나뉘어 입맛에 따라 골라 걷기가 좋다. 대단지 아파트 도심 속 강가를 바라보고 싶다면 1구간을, 젊은 감각의 카페나 식당을 즐기고자 한다면 2구간을, 철길의 낭만과 능의 고즈넉함을 느끼고 싶다면 3구간을 찾으면 된다.
경춘선 숲길 덕분일까. 노원구는 지난해 서울 25개 자치구 중 '걷기 실천율'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걷기 실천율은 최근 1주일 동안 하루 30분 이상 걷기를 주 5일 이상 실천한 비율을 말한다. 지난해 노원구민의 걷기 실천율은 68.4%로, 서울시 전체 실천율(53.2%)을 크게 앞섰다.
지난 5월에는 중랑천, 경춘선 숲길 등 대표 산책로를 걸으면서 코스별 지정 장소에서 미션 스탬프를 획득하면 모바일 문화상품권을 주는 '걷기 챌린지'까지 진행했다. 노원구 관계자는 "즐겁고 안전하게 걷을 수 있는 길이 되도록 다양한 노력과 시도를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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