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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행위서 지워주세요" 타투의 하소연...합법화 목소리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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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행위서 지워주세요" 타투의 하소연...합법화 목소리 확산

입력
2021.07.10 04:30
수정
2021.07.10 08:1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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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 “타투=의술”… 현실은 의료인 시술 1.2%
문신사들, 범죄 당해도 신고 못하고 속앓이
세금 내고 싶어도… ‘영리 추구’로 가중처벌
법원도 “의료인 수준의 위험성?” 기류 변해

서울 소재 미대를 졸업하고 4년째 타투이스트(문신사)로 활동 중인 B(28)씨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타투 업계에 발을 들였다. 그는 "다른 직장인들처럼 세금을 내고, 법적으로 '직업인'임을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꽃, 나비, 새 같은 자연 속 소재부터 반짝임, 파편 등 추상 도안도 고객들의 몸에 새긴다. B씨 제공

서울 소재 미대를 졸업하고 4년째 타투이스트(문신사)로 활동 중인 B(28)씨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타투 업계에 발을 들였다. 그는 "다른 직장인들처럼 세금을 내고, 법적으로 '직업인'임을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꽃, 나비, 새 같은 자연 속 소재부터 반짝임, 파편 등 추상 도안도 고객들의 몸에 새긴다. B씨 제공

타투(문신) 시술은 예술일까, 의술(醫術)일까.

타투는 수십 년간 논란의 대상이었다. '개인의 취향' '예술적 표현'이란 인식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위화감 조성' '조폭의 상징' 등 부정적 시선이 적잖다.

사법부는 현재, 타투 시술을 '의료 행위'로 보고 있다. 1992년 눈썹 문신을 의술로 판단한 대법원 첫 판결 이후 30년 가까이 판례로 굳혀온 입장이다. 타투는 불법이란 명확한 규정이 없음에도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문신 시술을 할 경우 처벌을 받아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3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르면서 '타투=의료 행위'라는 등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타투 자체를 더 이상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 특이한 행위로 볼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예컨대 문신 염료 제조사 '더스탠다드'는 2018년 문신 경험자가 1,300만 명(반영구화장 1,000만·타투 300만)에 달한다고 밝혔다. 국민 4명 중 1명이 문신을 해본 셈이다. 업계 추정치인 만큼 그대로 믿긴 어렵지만, 문신이 일상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는 뜻으로는 충분히 해석 가능하다. 2015년 고용노동부는 여전히 '불법 시술자'인 타투이스트를 신종 유망직업에도 올리기도 했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지난달 16일 국회에서 타투이스트(문신사)들과 함께 타투업법 입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연 가운데, 유명 타투이스트 밤이 그린 '타투 도안 스티커'를 등에 붙인 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류호정 의원실 제공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지난달 16일 국회에서 타투이스트(문신사)들과 함께 타투업법 입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연 가운데, 유명 타투이스트 밤이 그린 '타투 도안 스티커'를 등에 붙인 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류호정 의원실 제공

여기에 '법에 따라' 의술로서 문신을 받은 이들은 극히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문신 시술 실태조사 및 안전 관리 방안 마련(2019)' 보고서에 따르면 타투 경험자 171명 중 단 2명(1.2%), 즉 100명 중 1명만이 의사, 간호사에게 시술을 받았다고 답한 것이다. 나머지 99명은 불법 의료 행위를 받았다는 뜻이다.

'10만 원' 타투 받고는 "300만 원 내놔라" 협박...음지의 타투

15년 차 타투이스트이자 타투유니온 지회장인 김도윤씨가 올해 5월 28일 서울북부지법 앞에서 '타투이스트의 작업할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이날 법원에서는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씨의 1심 첫 형사재판이 열렸다. 연합뉴스

15년 차 타투이스트이자 타투유니온 지회장인 김도윤씨가 올해 5월 28일 서울북부지법 앞에서 '타투이스트의 작업할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이날 법원에서는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씨의 1심 첫 형사재판이 열렸다. 연합뉴스

이런 현실 속에서, "타투를 더 이상은 법의 테두리 밖에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현실을 반영한 법적 정비를 통해 규제 공백 상태에 놓인 타투업을 법망 안에서 관리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이다.

타투이스트들은 대환영이다. 그들에게 법제화는 곧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활동한 지 3년째인 20대 초반의 여성 타투이스트인 A씨는 지난해 8월 40대 중반 남성으로부터 협박을 받았다. 10만 원짜리 타투를 받은 남성이 "결과가 마음에 안 든다. 돈을 안 주면 신고하겠다"면서 300만 원을 내놓으라고 강짜를 부린 것이다.

타투이스트 노동조합인 타투유니온이 A씨의 도움 요청을 받고 추적해본 결과, 이 남성은 상습범이었다. 한 달 동안 타투 12개를 받고 다른 작업자들에게도 비슷한 수법으로 돈을 뜯어낸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유니온이 파악한 피해액만 500만 원이 넘었다.

타투유니온 지회장이자 15년 차 타투이스트인 김도윤(활동명 도이) 씨가 유명 명화들에서 영감을 받아 고객들에게 새긴 타투들. 세밀화 같은 섬세한 묘사가 그의 특징이다. 도이 제공

타투유니온 지회장이자 15년 차 타투이스트인 김도윤(활동명 도이) 씨가 유명 명화들에서 영감을 받아 고객들에게 새긴 타투들. 세밀화 같은 섬세한 묘사가 그의 특징이다. 도이 제공

그럼에도 타투이스트들은 경찰이나 국가에 도움을 요청할 수가 없었다. 남성을 사기나 공갈협박으로 신고했다가는 피해를 본 타투이스트들 역시 불법 의료 행위로 수사를 받게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김도윤(41) 타투유니온 지회장은 "명백한 범죄임에도 고소조차 어려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여성 타투이스트들이 성희롱, 성추행 피해를 겪는 일도 부지기수다. 서울의 한 미대 출신인 타투이스트 B(28)씨는 "고객의 성희롱, 시술비 미지불 등 불합리한 일을 겪어도 언제든 신고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문제 삼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밀폐된 작업실에서 고객과 신체 접촉을 해야 하는 직업 특성상, 여성 타투이스트들은 항상 불안감을 껴안고 일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1조 원 시장’ 쑥쑥 성장했지만 과세는 깜깜이

타투업 법제화로 세금, 결제 문제도 해결이 가능하다. 한국타투협회가 추산하는 국내 타투 시장 규모는 1조2,000억 원에 달한다. 하지만 과세 면에선 '깜깜이'다.

그나마 국세청이 2년 전 업종분류코드에 문신서비스(930925)를 새로 추가하면서 행정적으로는 사업자 등록과 납세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타투숍은 여전히 현금 결제를 고집하고 있다. 계좌송금 내역 등 영리 목적으로 시술한 증거가 나오면 의료법은 물론 보건범죄단속법까지 적용돼 처벌 수위가 최소 징역 2년으로 가중 처벌되기 때문이다. 2차례 타투를 한 직장인 현모(28)씨는 "다음엔 신용카드 할부 결제도 하고 소득공제도 받고 싶다"고 말했다.

“합법화는 위험” 우려에…위생지침 자체 제작에 교육까지

성형외과 전문의이자 국내에 몇 안 되는 '합법 타투이스트'인 조명신 빈센트의원 원장이 지난 5월 본보 '삶도' 인터뷰 중 병원 선반에 나열돼있는 국산 문신용 잉크를 선보이고 있다. 조 원장은 수입품도 사용하지만 가능한 한 국가에서 안전성을 검증받은 국산 잉크를 사용한다고 한다. 한진탁 인턴기자

성형외과 전문의이자 국내에 몇 안 되는 '합법 타투이스트'인 조명신 빈센트의원 원장이 지난 5월 본보 '삶도' 인터뷰 중 병원 선반에 나열돼있는 국산 문신용 잉크를 선보이고 있다. 조 원장은 수입품도 사용하지만 가능한 한 국가에서 안전성을 검증받은 국산 잉크를 사용한다고 한다. 한진탁 인턴기자

물론 "문신 시술을 일반인에게 허용하면 국민 보건에 위해가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 목소리는 여전히 크다. 특히나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의 반대는 강경하다. "문신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염, 잉크로 인한 이물반응 등 부작용 문제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경미한 가려움증까지 포함 통증, 흉터 등 5명 중 1명꼴로 타투 부작용을 경험하고 있다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실태조사 결과도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오히려 안전을 위해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반론도 있다. "법으로 정해 놓은 타투 시술 자격이나 위생 규제가 없다 보니, (초보자가) 쉽게 배우고, 쉽게 시술하면서 문제가 생기는 게 더 위험하다"는 주장이다. 실제 지난달 국회 앞 '타투 퍼포먼스'로 화제를 모은 정의당 류호정 의원의 법안을 비롯,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는 박주민·엄태영 의원 안 등 3개의 관련 법안은 모두 △매년 위생교육 실시 △바늘 재사용 금지 △소독·멸균기구 분리 보관 △감염 우려 폐기물 분리 배출 등을 포함하고 있다.

서울 중구 빈센트의원의 치료실이 성형외과 전문의이자 국내의 몇 안 되는 합법 타투이스트인 조명신 원장의 문신 도안으로 장식되어있다. 한진탁 인턴기자

서울 중구 빈센트의원의 치료실이 성형외과 전문의이자 국내의 몇 안 되는 합법 타투이스트인 조명신 원장의 문신 도안으로 장식되어있다. 한진탁 인턴기자

의료인들 중에도 이 같은 주장에 공감하는 이들이 있다. '33년 차 의사'이자 '22년 경력의 문신사'인 조명신(57) 빈센트의원 원장은 "바늘을 이용하고 출혈이 동반되는 시술인 만큼 위험성은 당연히 있지만, 시술 자격을 의사로 제한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본인 경험에 따르면, 통상 간호사나 간호조무사가 놓는 '엉덩이 주사'보다도 '타투 시술'의 위험성이 낮다는 것이다.

타투 단체들 역시 이를 의식해 자발적인 보건 지침 등으로 교육을 하고 있다. 임보란 대한문신사중앙회 회장은 "보건학 박사를 초빙해 위생 교육을 실시하고, 감염예방·위생관리 체크리스트도 공유 중"이라고 설명했다. 체크리스트엔 인증색소 사용부터 폐기물 처리법까지 83개 항목이 담겼다.

사법부에 이는 변화의 바람 “일반인 시각 변하고 양성화 여론도"

대법원은 1992년 눈썹 문신 시술을 했다가 의료법 위반으로 기소된 한 피고인 사건에서 "문신 시술은 의사의 고도의 전문 지식과 경험을 통해 시행되지 않으면 사람의 생명, 신체, 일반 공중위생에 밀접하고 중대한 위험을 발생시킬 염려가 있다"며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이 같은 판례는 29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연합뉴스

대법원은 1992년 눈썹 문신 시술을 했다가 의료법 위반으로 기소된 한 피고인 사건에서 "문신 시술은 의사의 고도의 전문 지식과 경험을 통해 시행되지 않으면 사람의 생명, 신체, 일반 공중위생에 밀접하고 중대한 위험을 발생시킬 염려가 있다"며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이 같은 판례는 29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연합뉴스

결국 관심은 사법부의 변화다. 30년 가까이 '타투는 의술'이라는 입장을 고집하고 있는 사법부를 향한 기대인 셈이다. 법조계에선 이에 대해 비의료인 타투 시술자에게 전향적으로 무죄를 선고한 사례는 아직 확인되지 않지만, 양형 사유 등에서 변화 조짐이 조용히 움트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실제로 부산고법의 한 항소심 재판부는 2019년 9월 반영구 문신사에게 유죄를 선고하면서도, 이례적으로 주심 판사의 소수의견을 소개하는데 판결문 3분의 2를 할애했다. 시술 당시 △멸균된 1회용 바늘 △의료기기 제조품목허가를 받은 기구 △유해 성분·무균시험 적합 판정 염료를 쓴 점 등을 언급하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의료인 수준의 위험성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한 것이다.

'변화한 시대상'을 언급하는 판결도 등장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9부는 올해 1월 "문신이 세계적으로 널리 행해지고 있고, 일반인 시각이 변하고 있어 적정한 교육과정이나 위생 등 규제로 양성화해 관리할 필요성이 있다는 견해도 있다"는 점을 문신사 피고인에게 '유리한 사정'으로 언급했다.

여기에 타투유니온, 대한문신사중앙회 등 관련 단체들은 헌법재판소의 문도 두드리고 있다. 벌써 여섯 번째 도전이다. 앞선 다섯 차례 헌법소원은 모두 기각 또는 각하 판결을 받았지만, 이들 단체가 헌재에 거는 기대는 어느 때보다 높다.

일반 직업인으로서의 타투이스트, 가능할까

김도윤 타투유니온 지회장이 올해 5월 28일 서울북부지법에서 열린 자신의 '무면허 의료 행위' 혐의 1심 첫 재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당초 이달 7일로 예정돼 있었던 그의 선고 일자는 재판부의 변론재개 결정으로 미뤄지게 됐다. 뉴스1

김도윤 타투유니온 지회장이 올해 5월 28일 서울북부지법에서 열린 자신의 '무면허 의료 행위' 혐의 1심 첫 재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당초 이달 7일로 예정돼 있었던 그의 선고 일자는 재판부의 변론재개 결정으로 미뤄지게 됐다. 뉴스1

김도윤 타투유니온 지회장은 "한국만의 타투 스타일이 'K타투' '파인(fine, 순수·섬세한) 타투'로 불리며 글로벌 트렌드 중심에 선 지 오래지만, 불법의 굴레 탓에 제대로 된 산업으로 키우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엔 지회장으로 불릴 때가 많지만 사실 그 역시 ‘15년 차 타투이스트 도이’다. 인스타그램 팔로워만 45만 명에, 브래드 피트, 스티브 연 등 할리우드 배우들도 그의 세심한 손길을 거쳤다.

그런 그가 올해 5월엔 '피고인 김도윤'으로 법정에 섰다. 한 배우가 그에게 시술받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는데, 신고를 당한 것이다. 김 지회장은 첫 재판에서 "정말 국민의 보건과 안전이 염려된다면 이젠 합법적 제도 안에서 관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타투이스트의 일반 직업화'를 꿈꾸는 그의 호소가 사법부에도 닿을지 지켜볼 일이다.


타투업 법제화 찬반

타투업 법제화 찬반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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