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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뱀장어에게, 인간 올림

입력
2021.07.08 14:0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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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어렵고 낯선 과학책을 수다 떨 듯 쉽고 재미있게 풀어냅니다. ‘읽어본다, SF’를 썼던 지식큐레이터(YG와 JYP의 책걸상 팟캐스트 진행자) 강양구씨가 <한국일보> 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친애하는 인간에게, 물고기 올림'은 '현대판 자산어보'라는 부제대로 온갖 물고기가 등장한다. 동아시아 제공

'친애하는 인간에게, 물고기 올림'은 '현대판 자산어보'라는 부제대로 온갖 물고기가 등장한다. 동아시아 제공

좋아하는 물고기가 뱀장어다. 오해는 마시라. 장어구이는 입에도 안 대니까. 티 안 나는 뱀장어 사랑이 시작된 것은 책을 한 권 읽고 나서다. 물고기 박사 황선도의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 2019년에는 '친애하는 인간에게, 물고기 올림(동아시아 발행)'이라는 고상한 제목의 개정판도 나왔다.

이 책에는 '현대판 자산어보'라는 부제대로 한반도를 둘러싼 삼면의 바다에서 잡히는 온갖 물고기가 등장한다. 고등어, 명태, 조기, 갈치, 홍어 등. 모두가 책 한 권의 주인공으로 손색이 없지만 그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것은 내 사랑 뱀장어다. 도대체 뱀장어가 왜 대단한지 설명해 보겠다.

교외에 나가서 먹는 장어구이의 주인공 민물장어는 사실 '민물' 뱀장어가 아니다. 평균 5~7년간 강에서 생활한 뱀장어는 자손을 낳을 준비가 되면 가을 무렵 강 하구로 내려간다. 하구에서 두세 달 머물며 바닷물에 적응한 뱀장어는 고향을 찾아 망망대해로 나서는 기나긴 여행을 떠난다. 바다에서 자라다 알을 낳을 때 강물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와 정반대다.

바다로 떠난 뱀장어가 도대체 어디서 산란을 하는지는 오랫동안 미스터리였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서야 한국, 일본, 중국 등의 강에 살던 뱀장어가 북태평양 서쪽 괌 근처에 있는 마리아나 해구(지구에서 가장 깊은 바다) 인근에 알을 낳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반도의 강에서 마리아나 해구까지 찾아간 뱀장어는 알을 낳고서 죽는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 대목에서 흠칫 놀랐을 테다. 그 알에서 깨어난 뱀장어 새끼의 사정은 어떨까. 북태평양에서 태어난 이 뱀장어 새끼는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약 6~12개월간 3,000㎞를 여행한다. 태평양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북적도 해류를 따라서 이동하다가 대만에서 일본으로 흐르는 구로시오 해류로 바꿔 타고 동북아시아까지 온다.

이렇게 동북아시아 대륙붕에 도착한 뱀장어는 그제야 실뱀장어의 모습으로 한국, 일본, 중국의 강 하구로 찾아간다. 이렇게 강을 타고 오르는 실뱀장어를 잡아 기른 것이 바로 우리한테 익숙한 민물장어다. 사실 이 또한 미스터리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어미가 살던 곳을 도대체 뱀장어 새끼는 어떻게 찾아가는 것일까.

사정이 이러니, 우리가 먹는 뱀장어는 예외 없이 수천㎞의 장엄한 여행을 마친 영웅이다. 이런 사연을 알고 나서는 불판에서 꿈틀대는 뱀장어가 불편해졌다. 실제로 뱀장어의 이런 사정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소개했더니, 한 지인이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내가 그 장어보다 더 가치 있는 삶을 살았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 한, 장어구이는 먹지 않기로…" 나도 그랬다.

책꽂이 잘 보이는 곳에 꽂아 두고서 철 따라 식탁에 오르는 물고기가 달라질 때마다 펴보는 '친애하는 인간에게, 물고기 올림'과 뱀장어를 다시 떠올린 계기도 있다. 낙동강 하굿둑의 수문을 한 달간 열었더니 뱀장어가 나타났다는 뉴스 때문이다. 바로 저자가 이 책에서 낙동강, 영산강, 금강 등의 어귀를 막고 있는 하굿둑의 수문 개방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친애하는 인간에게, 물고기 올림·황선도 지음·동아시아 발행·324쪽·2만2,000원

친애하는 인간에게, 물고기 올림·황선도 지음·동아시아 발행·324쪽·2만2,000원

안타깝지만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뱀장어는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뱀장어 씨가 마르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하굿둑이었다. 하굿둑이 가로막고 있으니 실뱀장어는 강 오름으로 수천㎞의 여행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강에서 서식하던 어미 뱀장어는 하굿둑에 막혀 바다로 나갈 수가 없었다. 딱 한 달, 낙동강 하굿둑을 개방했더니 금세 상황이 바뀌었다.

사실 뱀장어뿐만이 아니다. 하굿둑과 오랜 시간의 남획에 더해서 기후 위기까지 겹치면서 한반도 인근 해양 생태계에 심각한 위기가 찾아오고 있다. 정약전이 '자산어보(1814년)'를 쓸 때와는 한참 전에 사정이 달라졌고, 앞으로 '친애하는 인간에게, 물고기 올림'에서 언급한 바다 동물도 자취를 감출 가능성이 크다. 낙동강 하굿둑을 열었듯이 이제는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

과학책 초심자 권유 지수: ★★★★ (별 다섯 개 만점)

강양구 지식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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