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디지털 기술과 금융의 결합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특히 디지털 자산은 금융의 개념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있다. 기반이 되는 블록체인 기술도 빠르게 발전 중이다. 기승전비트코인은 기술, 금융, 투자, 정책 등 디지털 자산 시장을 입체적으로 스캐닝한다
"들키지 않고 살인을 부탁하고, 섹스 파트너를 돈으로 살 수 있어. 마약 구입도 가능하고 돈만 주면 못 구하는 물건이 없지. 아무나 들어올 수는 없어. 특수한 경로를 통해 들어오면 당신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자유롭게 구할 수 있는 곳. 감 놔라 대추 놔라 우리의 자유를 침해하는 정부는 절대 당신의 뒤를 밟지 못해. 내 이름은 실크로드. 결제는 비트코인만 가능해."
실크로드는 비트코인을 이용한 다크웹 사이트로 악명을 떨쳤다. 다크웹은 인터넷에 있는 어둠의 경로라고 할 수 있다. 결제수단으로 비트코인을 채택해 비트코인을 유명하게 만들었다. 범죄에 사용하는 돈으로 악명을 떨치게 했으며 이를 통해 많은 사람이 비트코인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게 됐다.
비트코인의 시작은 '자유'
비트코인의 출발은 '자유'를 향한 갈구다. 비트코인의 창시자로 알려진 나카모토 사토시는 익명의 최종 논문 작성자일 뿐이다. 중앙집권화된 정부와 거대 기업의 검열과 규제를 피하기 위한 사이퍼펑크(cypherpunk)들의 노력이 비트코인을 만들었다.
사이퍼펑크는 암호(cipher)라는 영어 단어에서 'i'를 'y'로 바꾸고, 저항을 상징하는 펑크(punk)를 결합해 만든 합성어다. 1990년대에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사이버 공간에서 권력에 의한 검열을 거부하고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암호화 기술을 활용했다.
"아니 범죄가 자유냐. 자유와 방종도 구분 못 하냐?"
당연한 얘기다. 범죄와 자유는 구별돼야 한다. 그러면 이런 경우는 어떤가 보자.
다음은 LA타임스가 보도한 내용 일부다.
지난해 홍콩 민주화 시위 때 홍콩 당국은 시위 참가자들과 주동자들의 계좌를 동결했다. 목사 찬(Chan·39)은 돈세탁과 자금 유용 혐의로 개인과 교회 계좌가 동결됐다. 그를 지원한 사람들의 계좌도 동결됐고 압류됐다. 홍콩 당국은 은행 계좌 동결이란 효율적인 방법으로 민주화 운동가들을 제압했다.
나이지리아 중앙은행도 반경찰시위대 참가자의 은행 계좌를 동결했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정적인 야당 리더 나발니의 금융 접근을 봉쇄했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다. 국가는 그들을 체제 전복자 또는 범죄자로 부르면서 중앙집중화된 금융시스템을 통제해 그들의 경제적 활동을 봉쇄한다. 이러한 사례는 부지기수로 많다.
그들은 민주화 운동가인가 범법자인가. 어느 방향에서 볼 것인가? 이때 쓰는 단어가 양심이다.
비트코인은 프라이버시와 양심의 문제
국가 권력은 범법자로 부르지만 파렴치범이 아닌 양심과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이들은 설령 실정법을 위반하더라도 양심범인 것이다. 양심에 따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인간이 존엄한 이유이고 존중받는 이유다.
비트코인은 국가의 봉쇄로부터 이들의 경제적 활동을 보호할 수 있다. 이들의 활동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사람들은 비트코인을 통해 이들과 이들의 양심을 지원한다.
러시아의 야당지도자 나발니는 비트코인을 통해 300만 달러를 기부받았다. 나이지리아 여성단체, 홍콩의 민주화 운동세력도 비트코인을 활용했다. 언론자유신봉자 어산지도 비트코인으로 지원받은 돈으로 위키리크스를 운영했다.
중국, 러시아, 미안마, 홍콩, 벨라루시, 나이지리아 등 많은 국가가 금융을 반체제 인사에 대한 통제수단으로 활용한다. 이란 팔레스타인과 쿠바 북한의 지도자들은 미국이 주도한 경제 금융 제재를 받고 있다. 이들과 거래한 은행들은 문을 닫아야 한다. 정치적 목적으로 금융 시스템이 활용된다. 금융은 권력인 것이다.
비트코인은 양심의 자유, 프라이버시의 자유를 지켜주는 수단이다. 개인암호키만 있으면, 인터넷에 연결만 되면 비트코인으로 자금을 모으고 쓸 수 있다.
비트코인을 선택하는 문제는 범죄자냐 선량한 시민이냐를 선택하는 게 아니다. 나의 프라이버시와 양심을 선택할 것인지 나의 모든 것을 들여다보는 빅브러더를 선택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다.
경제적 자유
미국 법원은 비트코인이 연관된 사건에서 "비트코인은 죄가 없다. 행위를 한 사람이 죄가 있다"고 판결했다. 범죄자들이 가장 좋아하고 많이 사용하는 화폐는 미국 달러화다.
범죄를 단속하고 처벌하는 것은 국가의 몫이다. 비트코인 핑계대지 마라. 비트코인은 개인의 양심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비트코인이 주는 두 번째 자유는 경제적 자유다.
월급 노예, 영끌, 은행에 월세 살기, 조기 은퇴, 재테크. 요즘 언론에 등장하는 단어중 몇 개를 나열해 봤다. 이런 단어와 비유들이 경제적 자유가 없음을 상징한다. 사람들은 경제적 자유를 박탈당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월급 노예'는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노예로 생각한다는 표현이다. 월급에 목맨 인생! 심한 표현이고 성실한 근로의욕을 갈아먹는다고 얘기할 사람도 있다. 과장된 얘기인가. 취직을 못 해 서러운데 배부른 얘기인가. 그러나 진실이다. 월급이 없으면 생존의 기반이 무너지고, 살아가기 힘들다면 월급 노예가 아니고 무엇인가?
월급 노예와 영끌, 은행에 월세 살기는 서로 연결돼 있다. A는 올해 모 금융기관에 취직한 대졸직원이다. 청약예금도 넣고 주식도 한다. 아무리 해도 집을 살 엄두는 나지 않는다. 결혼 생각도 쉽게 할 수 없다.
A는 선배들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결혼하고 집 사면 다른 꿈은 꿀 수가 없어. 대출 원리금 갚으려면 회사 그만둘 생각은 꿈도 꾸지 마.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아파트 가격이 터무니없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이 몰려살고 있는데 몇 년 동안 집값이 두 배가량 치솟았다.
자산가격 상승이 자유를 억압한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자산가격이 너무 올랐기 때문이다. 소득 대비 집값 비율이 17.8에 달한다. 중간소득자가 한 푼도 쓰지 않고 17.8년을 저축해야 서울에서 집 한 채를 살 수 있다. 영끌(대출)해서 집을 사고 원리금을 갚으면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젊은이들이 결혼도 안 하고 자식도 낳기 힘든 세상이 됐다. 부동산뿐 아니라 주식 원자재값 물가 등 뭐든지 치솟고 있다. 열심히 일해서 돈 버는 월급쟁이 생활로는 희망이 없는 세상이 온 게 사실이다.
금융의 실패, 정부 화폐의 실패가 주택가격 등 자산가격 상승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주택정책이 잘됐는데 금융 때문에 주택가격이 올랐다는 얘기는 아니다. 부동산 가격 등 모든 자산가격의 상승은 세계적인 현상이고 그 중심에는 무지막지한 정부의 화폐 발행이 있다는 얘기다. 기축통화인 달러의 발행 규모가 무지막지하게 증가하고 있다.
비트코인과 무슨 관계냐고? 이게 비트코인이 필요한 이유이고 비트코인이 혁명인 이유다. 무분별한 화폐 발행이 국민의 재산과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일부 가난한 제3세계 국가에서 일어나던 일이 전 세계적 현상으로 발생하고 있다. 미국 달러화도 마찬가지다. 영원한 제국은 없었고 정부가 마구 발행하는 피아트머니는 역사적 경험으로 모두 소멸했다.
무분별한 통화 팽창
국가는 국민의 재산과 자유와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이를 위해 화폐발행권을 가지고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일시적인 실패인가, 치유 가능한 실패인가.
젊은이들이 집 한 채 마련하려면 월급 노예가 돼야 하고 결혼과 출산마저 포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보다는 돈을 좇아 재테크에 열중하고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가난한 사람들은 돈이 없어 아우성이고 중산층도 어려워졌다.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어떻게 돈을 지킬지 파티가 언제 끝날지 걱정하는 상황이다. 이 모든 질문의 중심에는 정부의 무분별한 통화팽창이라는 화폐시스템이 있다.
국가는 이 같은 상황에서 많은 이익을 얻는다. 물가 상승과 자산가격 상승은 항상 빚쟁이인 국가에 최소한 두 가지 이익을 가져다 준다. 세수 증대와 채무 부담 감소다.
자산가격 상승은 재산세, 소득세 등의 세수 증대로 이어진다. 또 실제로 갚아야 하는 부채 규모가 축소된다. 남미국가의 은퇴 공무원들은 중산층에서 가난뱅이로 전락한 지 오래다.
연금은 그대로인데 물가가 올라 기초생활도 어려운 형편이다. 연금도 나라가 국민에게 갚아야 할 빚이다. 펑펑 쏟아부은 돈잔치의 설거지 비용은 누군가가 내야 한다. 그 부담을 걸머진 게 급여생활자와 중산층이고 영끌, 월급 노예 등의 단어로 표현된 것이다.
비트코인, 국가와 돈을 분리시키다
혁명은 새로운 세상과 희망을 얘기한다. 구체제의 억압에서 풀어주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준다고 약속한다. 구체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바꾼다는 것인지, 바뀐 세상은 어떻게 변하는지 얘기해야 한다.
비트코인은 국가와 돈을 분리시킨다. 발행량이 한정돼 있고 누구도 임의로 변경할 수 없다. 국가 없이도 작동하는 돈을 만든 게 비트코인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노력을 저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비트코인을 선택하면 국가의 무분별한 통화팽창을 견제할 수 있다. 국가 특히 권위주의 국가가 비트코인을 미워하는 이유다. 화폐발행권은 국가의 가장 큰 권력이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발전해 왔다. 범죄자들의 거래 수단에서 투기꾼들의 투기 수단으로. 또 월가나 세계 금융기관들의 대체투자 수단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엘살바도르가 법정통화로 채택했다. 디지털 금으로 불린다. 다음은 무엇일까? 11년이란 짧은 기간에 차곡차곡 영역을 확대해 온 비트코인 혁명의 여정은 어디까지 진행될까. 양심과 경제의 자유에 무엇을 더 가져다 줄 것인지 궁금하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