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왓챠 '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
편집자주
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칼럼니스트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 에 연재됩니다. 한국일보>
나의 스마트폰 사진첩에는 인터넷에서 저장한 수많은 이미지만 따로 모아두는 폴더가 있다. 트위터에서 저장한 영화나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의 장면 캡처, 인터넷 게시판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떠돌아다니는 우스운 사진이 가득하다. SNS에 한마디를 남기고 이미지를 첨부할 때나, 친구들과 메신저로 대화할 때 이 이미지들을 주로 사용한다. 기쁜 소식을 전하면서 "기쁨 최고조"라는 자막을 달고 있지만 전혀 어울리지 않는 표정의 예능인 박나래의 사진을 첨부하는 식이다.
이 사진들로부터 '밈'이라는 쉽지 않은 개념을 설명해보려고 한다. 영국의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인 '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 소개된 이 용어는, 간단하게는 '복제가 가능한 비유전적 문화 요소'로 정의된다. 대부분의 문화 현상이 밈의 범위에 들어가는데, 유전자가 전달되는 방식으로 유전되지는 않지만 복제되고 전달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진화하면서 인류의 문화에 함께하며 영향을 미친다. 물론 이런 설명으로는 이해가 어려울 수 있으니 다시 폴더 속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밈은 언어와 종교, 음악, 건축, 사상, 패션 등 모든 문화 영역을 포함하며 문명의 많은 부분에 적용해 설명할 수 있지만, 인터넷 용어로 사용되는 경우에는 의미가 좁아진다. 내 사진첩 폴더 속 이미지들은 밈이 되었다고 하기에는 널리 퍼지지 않았거나 몇몇 SNS에서만 돌며 대부분 수명을 다한 것들이다. 하지만 그중 인터넷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이 보면 바로 그 의미를 인식하고 변형할 수 있는 이미지도 있다. 그게 바로 밈이다. 무려 20년이 넘은 TV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에서 박미선이 딸의 방학 숙제를 도우며 "스토리는 내가 짤게, 글씨는 누가 쓸래?"라는 대사를 남긴 한 컷의 이미지를 기억할 것이다. 이 이미지는 짧은 기간에 셀 수 없을 정도로 패러디되었다. '순풍 산부인과'가 방영될 때 태어나지 않았던 사람들부터, 원본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그 이미지를 알고 사용한다. 예시는 이미지로 들었지만 비단 이미지나 영상에만 해당되지 않고 유행어나 표현 역시 모두 밈이 될 수 있다. 더 많이 복제되고 변형되며, 현재에 적응하고 진화한 밈은 살아남는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않고, 할 수 없는 방식으로.
'밈 전쟁: 개구리 페페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해져서 이제는 밈의 의미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제일 앞에 등장하게 된 캐릭터, 개구리 페페의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페페라는 이름이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페페를 본다면 그 누구라도 커다랗고 튀어나온 눈알에 겹쌍커풀을 가졌고 튜브 형태의 두꺼운 입술 꼬리를 슬쩍 내리고 있는 미묘한 표정의 개구리와 어디선가 마주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SNS가 됐든 인터넷 게시판이나 커뮤니티가 됐든, 페페는 어디에나 있었다. 슬퍼하는 모습일 때도 있었고, 우쭐대는 모습일 때도 있었다. 조금 조악한 화질이나 그림체로 변해 있을 때도 있었고, 슬픈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기도 했다.
페페는 원래 '보이즈 클럽'이라는 만화의 주인공이다. 작가 맷 퓨리는 페페를 먹고 마시는 걸 좋아하고 친구들과 함께라면 늘 즐거운 "작고 행복한 개구리"라고 말한다. 페페와 친구들의 이야기는 미국의 싸이월드라고 할 수 있는 마이스페이스에 업로드되었고, 그중 한 컷만 잘려 인터넷 세상 속으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2009년, 미국의 익명 커뮤니티인 4챈(4chan)에서 페페가 "슬픈 개구리" 이미지로 떠오르면서 페페의 운명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페페의 미묘한 표정에서 삶의 페이소스를 읽어낸 일군의 익명 유저들은 흔히 '니트족'이라고 표현되는 젊은 세대였다.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으며, 따라서 직업 교육이나 훈련도 받지 않는 이들은 직장뿐 아니라 인생에서 밀려났다고 느꼈고, 페페에게서 자신들의 얼굴을 보았다. 이건 원작자의 의도와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다. 게다가 하필이면 페페가 누구나 따라 그릴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그림체로 그려진 캐릭터였기 때문에 페페는 수도 없이 복제되었다. 인터넷이 자신이 사는 세계이고, 그 안에서의 실존을 믿는 인물들은 페페에 자신을 투영했다.
그들이 커뮤니티 밖에서 특히 젊은 여성들이 페페 이미지를 사용하는 일에 반발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4챈의 유저인 한 인터뷰이는 커뮤니티 밖의 "제정신이 있는, 사회적으로 적응한" 사람들에게서 페페를 사수해야 했다고 말한다. '베타 메일'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무능하고 여성을 혐오하는 남자들은 이를 위해 페페 위에 모욕적인 이미지들을 덧씌우기 시작한다. 나치와 테러리스트, 모욕과 혐오와 폭력의 상징들로 덧씌운 페페는 화면 밖으로 총을 겨누고 이렇게 말한다. "왜 다들 그렇게 심각해? 모두 농담일 뿐이야."
이 문장에서 '배트맨' 시리즈의 악당 조커를 떠올렸다면, 또 하나의 밈을 연결 지은 것이다. 세상이 전부 자신을 무시하고 업신여긴다는 망상 속에서 억지로 웃는 얼굴을 하곤 세상에 복수하기를 기다리던 조커와 원래는 그저 행복한 개구리였던 페페는 여기서 만난다. 조커와 페페에 자신을 투영하고 절망과 허무함 속에 언제든 세상에 복수할 날만 기다려온 남자들은 현실에서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 모두 농담일 뿐이라고 말했던 이들 중 누군가는 총기 사고를 일으켰다. 이뿐만이 아니다. 4챈을 중심으로 한 극우 성향 커뮤니티 유저들의 백인 중심의 민족주의, 반유대주의, 여성 혐오는 2016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였던 트럼프를 통해 대폭발했다. 우쭐거리는 페페의 이미지는 이를 이용하기도 한 트럼프와 강력하게 결합했다. 이들이 일으킨 밈 전쟁과 밈을 통한 홍보는 트럼프 대선 캠프에서 전략 및 데이터 총괄을 맡았던 인터뷰이가 "영향력도 돈도 연줄도 없는 사람들"이 "반항적 거사"를 일으켰다고 표현할 만큼, 현실 정치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때로는 무력하게, 때로는 그래도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원작자 맷 퓨리의 심정은 과연 어땠을까? 자신을 닮았다는 말을 들었던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가 백인 우월주의자와 네오 나치의 상징이 되고, 혐오 상징으로까지 지정되자 #페페구하기(#SavePepe)라는 해시태그를 통한 구명운동까지 벌였던 맷 퓨리는 결국 다시 만화를 그려 페페를 죽인다. 하지만 페페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현실 세계의 기록으로서, 만들어내지 않은 이야기로서 다큐멘터리의 놀라움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후의 이야기는 꼭 작품을 통해 확인하는 게 좋겠다.
'밈 전쟁: 개구리 페페 이야기'는 그 자체로서도 충분히 의미 있고 생각할 지점을 많이 던져준다. 창작자와 저작권, 캐릭터나 창작물을 둘러싼 의무와 권리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수 있다. 무엇보다 2021년 한국 사회에서 이 작품은 또 다른 맥락을 갖게 되었다. 단지 작은 크기를 의미했던 엄지와 검지를 편 손가락 기호가 최근 한국 사회가 갖게 된 또 다른 의미 때문이다. 앞서서 밈이 되기 위해서는 상당수의 사람이 그 의미를 알고, 모방하고 또 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손가락 기호의 의미는 대체로 알고 있다시피 그냥 '작다'이다. '특정 신체 부위가 작다'라는 구체적인 의미로는 매우 소수가, 짧은 기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기호는 대중적인, 적어도 한 집단이 공유하는 밈일까 아닐까? 몇몇 남성은 극우주의자들이 페페를 전유한 것처럼 손가락 기호 역시 소수의 여성주의자들이 전유했다고, 그들의 밈이 사회에 암약하며 은밀히 퍼져나가고 있다고 믿었다. 믿음은 언젠가부터 뭐가 가짜고 진짜인지 구분할 생각이 없는 미디어에 실려 실제인 것처럼 보도되었다. 사기업과 공공기관의 게시물에서 엄지와 검지로 무언가를 집기만 해도 '저 손가락이 우리를 모욕한다'라며 달려가는 사람들이 지금도 존재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페페를 빼앗아간 극우 진영과 더 닮은 쪽은 어느 쪽일까? 별로 어려운 문제는 아닐 것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내 사진첩의 한 폴더를 들여다보니 샌드위치를 들고있는 비욘세 정도만 사진 속에서 비슷한 손 모양을 하고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샌드위치는 심지어 별로 작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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