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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수어로는 부족한데… 국가 장애사전에 '시청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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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수어로는 부족한데… 국가 장애사전에 '시청각'이 없다

입력
2021.07.0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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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각장애인 조원석씨의 하루]
시력·청력 모두 잃어 촉수어·문자로 소통
소통하려면 접촉 필수인데 코로나로 막혀
'법정 장애' 아니라서 지원 논의 제대로 안돼
"제3의 장애로 인정하고 지원 대책 마련해야"

시청각 장애인 조원석(29)씨가 7일 오전 서울 관악구 자택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조씨는 키보드와 점자정보단말기를 동시에 이용해, 화면을 보지 않아도 문자 입력을 할 수 있다. 최은서 기자

시청각 장애인 조원석(29)씨가 7일 오전 서울 관악구 자택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조씨는 키보드와 점자정보단말기를 동시에 이용해, 화면을 보지 않아도 문자 입력을 할 수 있다. 최은서 기자

조원석(29)씨는 '시청각 장애인'이다. 일곱 살 때 고열을 동반한 감기를 앓으면서 시력과 청력을 잃었다. 왼쪽 귀에 미약한 청력이 남았을 뿐이다.

지난 7일 이른 아침 조씨가 가족과 사는 서울 관악구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 거실에 놓인 책상이 눈에 띄었다. 책상 복판엔 조씨가 세상과 소통하는 도구인 노트북과 키보드 2개가 배치돼 있었다. 키보드 중 하나는 모양이 생소했는데, 점자를 문자로 호환해주는 기능이 있는 점자정보단말기였다. 책상 한편엔 화장품, 물티슈 등 생활용품이 정해진 위치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조씨가 기억하는 위치로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장애인 단체에서 일하는 조씨는 두 키보드를 번갈아 다루며 카카오톡 대화를 하고 업무 메일을 발송했다. 조씨는 그나마 청력이 남아 있어 조용한 곳에선 대화가 가능하지만, 대부분의 시청각 장애인은 대면 소통이 힘들다. 조씨는 "내가 알고 지내는 시청각 장애인들은 상대방이 수어를 하지 못하면 대화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출장이 있는 날이다. 집을 나선 조씨는 엘리베이터를 지나쳐 계단으로 향했다. 날씨도 덥고 오르내리기도 위험하지 않느냐고 묻자 "엘리베이터를 타면 원하는 층수 버튼을 찾기 힘들고, 제대로 누른다 해도 누군가 중간에 타고 내리면 어느 층인지 알 수 없게 된다"며 "매번 도움을 청하기도 어려워 계단이 편하다"고 답했다. 조씨는 서울 시각 장애인 생활이동지원차량을 타고 출장지가 있는 동작구로 향했다.

조씨가 점자정보단말기인 '한소네'를 사용하고 있다. 점자를 문자로 호환해주는 역할을 하는 점자정보단말기는 시청각 장애인에게 필수적인 의사소통 수단이다. 그러나 일반화가 안 된 탓에 500만 원을 훌쩍 넘어 대부분의 장애인이 이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최은서 기자

조씨가 점자정보단말기인 '한소네'를 사용하고 있다. 점자를 문자로 호환해주는 역할을 하는 점자정보단말기는 시청각 장애인에게 필수적인 의사소통 수단이다. 그러나 일반화가 안 된 탓에 500만 원을 훌쩍 넘어 대부분의 장애인이 이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최은서 기자


시각·청각 장애와 엄연히 달라

시청각 장애라고 하면 시각과 청각의 중복 장애쯤으로 여기겠지만, 당사자 입장에서 현실은 천지 차이다. 생활의 기초 조건인 의사소통만 해도 시각 장애인은 점자 기반, 청각 장애인은 수어 기반의 복지 서비스를 받고 있지만, 시청각 장애인이 필요로 하는 촉수어(수화를 손으로 만져 인지하는 언어) 기반의 서비스는 찾아보기 힘들다.

시청각 장애인이 복지망에서 철저히 소외된 데엔 현행 장애등록제의 편협성 탓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현행법에 장애 유형을 15가지로 규정하고 이 틀 안에서 장애인으로 등록해 복지 혜택을 받게 하고 있는데, 시청각 장애는 이런 '법정 장애'에 포함되지 않아 논의 대상에도 오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 장애계에선 2007년에 이미 '시청각 장애' 개념을 제시하고 다른 장애와 구분해야 한다고 제언했지만, 국내 학계 논문에서 시청각 장애가 다뤄지기 시작한 건 불과 4년 전이다.

국내 시청각 장애 인구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건 물론이다. 지난해 보건복지부·보건사회연구원·한국시청각장애인협회 공동조사에서 서울에만 1,000명이 넘을 거란 추정이 나왔을 뿐이다.

조씨가 7일 오전 서울 시각장애인 활동지원차량 운전사의 도움을 받아 약속 장소로 들어서고 있다. 최은서 기자

조씨가 7일 오전 서울 시각장애인 활동지원차량 운전사의 도움을 받아 약속 장소로 들어서고 있다. 최은서 기자


접촉 없인 소통 못해… 코로나에 더 막막

비대면이 불가피해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국이라 시청각 장애인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은 더욱 좁아졌다. 소통의 욕구를 채워줄 거의 유일한 기회인 시청각 장애인 모임이 전부 중단됐기 때문이다. 시각 장애인이나 청각 장애인처럼 음성?화상 통화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으니 고립감은 한층 심하다. 조씨는 "접촉해야만 소통할 수 있어 고립에 취약한 이들인데, 외출이 제한되면서 서로의 안부를 묻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설상가상으로 방역 정책 대부분은 시청각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은 채 시행됐다. 조씨는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을 당시 정부에서 약국별 잔여량을 안내하고 대리구매를 허용하는 대책을 내놨지만 시청각 장애인은 그저 막막했다"며 "곳곳에 항균 필름이 붙으면서 그나마 점자에 의존했던 엘리베이터?화장실 등 공공장소 이용도 불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국내에 처음으로 시청각 장애라는 개념을 제시한 조승현 서울시각장애인연합회 동작지회장이 지난 1일 오후 사무실에서 키보드를 이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조 지회장은 "시청각 장애인이야말로 당사자 교육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최은서 기자

국내에 처음으로 시청각 장애라는 개념을 제시한 조승현 서울시각장애인연합회 동작지회장이 지난 1일 오후 사무실에서 키보드를 이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조 지회장은 "시청각 장애인이야말로 당사자 교육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최은서 기자


"당사자 위한 소통교육?지원 시급"

장애계 안팎에선 시청각 장애를 시각 또는 청각 장애와는 다른 '제3의 장애'로 정의하고, 그 특성을 감안한 맞춤형 복지 제도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제안한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청각 장애 개념을 제시한 조승현 서울시각장애인연합회 동작지회장은 "시청각 장애인을 돕겠다는 명분으로 비장애인 일자리 확대에 치중하는 편의적 발상으로는 장애인들의 실질적 사회 참여를 실현할 수 없다"며 "시청각 장애인 당사자 중심의 정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체적 방안으로 시청각 장애인에게 촉수어 및 점자, 손바닥에 쓰는 글씨, 점자정보단말기 사용법 등 의사소통에 필요한 기술부터 교육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씨 역시 당사자 중심 정책의 중요성에 동의했다. 조씨는 "복지 재원을 차라리 시청각 장애인 모임을 활성화하거나, 장애인 대상 해외 유학·파견 사업으로 당사자 주도 정책 개발을 지원하는 데 쓰는 게 효과적일 것"이라고 제안했다.

최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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