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철의 관찰]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정책대학원 교수
역대 최대급인 33조 원 규모로 편성된 올해 2차 추경안을 두고 재정정책의 적정성 논의가 새삼 재연되고 있다. 정부ㆍ여당은 코로나19 극복 국민위로금 지원, 소상공인 등 코로나19 집중 피해계층에 대한 실효적 지원, 소비 진작 등의 필요에 따라 과감한 추경 집행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마침 경기회복세를 타고 연중 약 31조5,000억 원의 추가 세수가 기대되는데다, 8개월 앞으로 다가온 차기 대선 등을 의식해 야권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시각은 좀 다르다. 코로나19 완화 조짐으로 글로벌 경기가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변이종의 심각한 재확산이 없다면 우리 경제도 수출, 투자, 소비 등 경제 전 부문에서 강한 ‘V자 반등’을 타는 추세인데 굳이 또 한 번 역대급 ‘나랏돈 풀기’에 나서는 게 맞느냐는 얘기다. 그런 이유로 다수의 전문가들은 소상공인 등에 대한 지원은 두껍게 하되, 다른 방만한 지출을 줄여 추가 세수분을 최근 급증한 국가부채를 갚는데 더 많이 쓰자는 주장을 펴왔다.
국가재정 논의는 향후 대선 국면이 본격화하면서 더욱 가열될 수밖에 없다. ‘큰 정부’를 지향하며 지금까지 적극적 재정확대책을 펴 온 현 정부의 정책기조를 앞으로 어느 쪽으로 이끌어 갈지가 대선주자들의 공약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1대 국회 미래연구원장을 역임한 뒤 최근 저서 ‘대한민국 어떻게 바꿀 것인가’(이학사 발행)에서 재정개혁론을 심도 있게 개진한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로부터 국가재정의 현황과 문제, 바람직한 향후 정책방향 등을 점검한다.
"소비 진작 차원의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옳지 않다"
-정부ㆍ여당이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역대 최대 수준인 33조 원의 2차 추경예산을 편성했다. 아직 코로나19 우려가 해소된 건 아니지만, 경기가 ‘V자 반등’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는 상황이라 적정성 논란이 적지 않은데 어떻게 보는가.
“2차 추경 목표로 네 가지가 제시되고 있다. 코로나 피해 지원, 백신과 방역, 고용과 민생, 지역경제 등이다. 하지만 이번 추경에서 소비 진작 목표를 내세우는데 대해 동의할 수 없다. 지금 내수가 수출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살아나는 건 사실이지만, 쓸 돈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코로나19로 인한 제약조건 때문이다. 급여생활자는 되레 저축이 늘고 있다. 따라서 소비는 백신 접종을 조속히 추진하고 제약조건이 완화되면 자연스럽게 살아날 수 있는데, 이걸 굳이 국민 대다수에게 소비자금을 나눠주고 온누리상품권을 풀어주는 식으로 풀려는 건 잘못된 정책방향이라고 본다. 이런 식으로 불필요한 지출이 편성돼 추가 세수 31조5,000억 원을 거의 다 뿌리는 식이 됐다. 지금 급하고 절실한 지원 대상은 장사 망친 자영업자나 일자리 잃은 특수고용직 근로자 등이다. 이런 분들의 소득 감소나 사업 유지를 위한 지원에 집중할 필요가 크다. 국회 심의과정에서 코로나19 집중 피해계층에 실효적 지원이 될 수 있도록 더 적극적인 대책이 강구되길 바란다. 아울러 지금 2조 원만 국채 상환에 쓴다고 하는데, 집중 피해계층 지원에 쓰고 남는 예산을 더 많이 국채 상환에 투입하는 게 옳다고 본다. 2017년에 4조 원 상환했으니, 이번엔 그걸 넘는 규모로 상환하는 게 맞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80% 재난지원금 지급도 부족하다며 사실상 전 국민 지급을 추진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왜 그런다고 생각하나.
“비단 여당뿐만 아니다. 야권도 재난지원금 지급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다들 짐작하다시피 차기 대선을 앞두고 있으니, 여당은 선심책을 펴고 싶은 것이고, 야권은 코로나19 지원에 섣불리 시비 걸다가 욕먹는 것 아닌가 하며 눈치를 보는 상황인 것 같다. 경제학자로서 인정하기 어려운 씁쓸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각국의 재정 투입 상황을 비교할 때 우리나라 투입량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주장이 2차 추경 대규모 편성의 논리로 작용했다. 주요국 경제 상황과 경제 규모 등 변수 전반을 감안할 때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우리의 재정 투입이 미흡했나.
“우리가 상대적으로 GDP(국내총생산) 비중으로 볼 때 지원 규모가 작았던 건 사실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조사에 의하면 한국의 재정 확장은 코로나 이후 GDP의 4.5%였던데 비해, 선진국은 평균 9.6%였다. 다만 미국 같은 기축통화국이나 그에 준하는 선진국에 비해 기본적으로 우리 재정 운용은 콤팩트하게 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재정지출을 덜한 이유다. 또 우리는 주요국들에 비해 코로나19 확산이 덜 심각했다. 방역을 잘한 결과다. 올 6월 말 기준으로 볼 때 10만 명당 미국은 1만 명 이상이고, 영국은 6,900명쯤 되고, 일본은 625명이다. 그런데 한국은 300명이다. 미국의 1만 명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인 거다. 그만큼 재정지출을 적게 해도 될 상황이 된 거다. 또 하나, 우리는 경기회복 속도가 빨랐다. 2019년도 4분기 코로나19 발생 직전 성장률을 우리는 올해 1분기에 회복했다. GDP 톱10 국가 중에서 중국과 인도 빼고, 선진 8개국 중에 아직 코로나19 이전 성장률을 회복한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수출 회복 등에 따른 결과다. 따라서 우리가 덜 쓴 건 맞지만, 그래서 더 써야 한다는 주장은 맞지 않다고 본다.”
"일본식 국가채무 급증 우려 커, 지금부터 재정 정상화 방안 가동해야"
-문재인 정부 들어 재정건전성에 관한 인식과 기준이 바뀐 것 같다. 문 대통령이 지난 2019년 홍남기 경제부총리에게 “국가채무비율을 GDP의 40% 선으로 관리해야 하는 근거가 뭐냐?”고 따진 게 40% 마지노선이 무너진 분수령이었다. 이후 팽창예산과 추경이 잇따르면서 현 정부 출범 전 GDP의 36%였던 국가채무비율은 불과 4년여 만에 11%포인트 이상 급등해 48%에 육박하게 됐다. 같은 기간 순증한 국가채무액만 300조 원이 넘는다. 괜찮은 건가.
“국가채무 수준을 보는 기준은 세 가지다. 첫째, GDP 대비 국가채무 수준이다. OECD에서는 60% 정도를 안정성장협약이라고 해서 재정건전성의 기준으로 삼는다. 우리나라는 작년에 만든 중기재정계획에 따르면 2024년에 58.3%가 되는 것으로 예상됐고, 최근 경기회복세 등을 감안한 수정치에 따르면 54.7%까지 내려갈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건 전혀 아니다. OECD 권고치인 60%는 늘 그렇게 유지돼야 한다는 거다. 하지만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우리는 현재 복지제도를 추가 확충하지 않는 걸 전제해도 2070년 가면 국가채무비율이 186%가 된다. 여기에 구조적 저성장과 코로나19 재정지출 급증 등을 감안하면 그 전에 일본처럼 200%를 넘길 가능성이 높다.
둘째, 국가채무 수준을 평가하는 두 번째 기준은 매년 재정적자를 GDP로 나눈 재정적자의 GDP 비중인데, EU에서는 3%가 건전성 기준이다. 그런데 우리는 작년에 5.8%였고 중기재정계획에 따르면 24년까지 관리재정수지가 5%대 이상 계속 적자가 이어지게 돼 있다. 5년 연속 5%대 이상 재정적자가 이어지는 건 전례 없는 일이다.
셋째, 국가채무 적정성을 평가하는 또 다른 기준은 경제성장률과 국공채 이자율을 비교하는 거다. 돈을 꿔와서 이자 보상하고 수익 내는 거면 괜찮다. 지금 장기국공채 이자율이 1.9% 정도다. 올해 4% 이상 성장하고 내년에 2.8% 성장한다니 당장은 문제가 없는 셈이다. 하지만 우리 잠재성장률이 2.3~2.5% 정도인 상황인데 비해 장기국공채 이자율은 사상 최저치 수준이어서 향후 금리 인상 등에 따라 이자율이 올라갈 경우 성장률과 역전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기업으로 치면 이자보상배율이 1이 안 되는 상황이 국가적으로 벌어지는 거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지금은 코로나19 상황을 보면서 재정을 정상화하는 정책에 착수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도 2024년에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54.7%(수정치)라면 지난해 중기재정계획 범위 안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괜찮은 것 아닌가.
“거듭 말하지만, OECD 안정성장협약에서 국가채무비율 60%를 권장하는 건 계속 그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 중기재정계획상 2024년 국가채무비율 54.7%라는 건 그 시점의 관리목표이지 그 이후에도 계속 그렇게 유지하겠다는 게 아닌 게 문제다. 더욱이 중기재정계획은 2024년까지 우리나라가 연평균 4% 성장하는 매우 낙관적인 기대와, 다음 정부는 굉장히 엄격한 재정정책을 시행한다는 난망한 전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니 재정상황이 중기재정계획대로 가기조차 어렵다는 얘기다. 따라서 2024년 상한선 60%를 내세울 게 아니라 가능할 때 수시로 국가채무를 줄이고 재정을 최대한 엄정하게 관리하는 게 절실하다는 거다.”
-전문가들 다수는 당장의 재정지출 증가폭 자체보다도 증가 속도에 더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당연하다. 지적했다시피 현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말 GDP 대비 36%였던 국가채무가 불과 4년여 만에 48%에 육박하게 됐다. 순증액만도 300조 원이 넘는다. 여기에 더해 중기재정계획에 따르더라도 2024년까지 관리재정수지에서 매년 평균 120조 원, GDP 대비 5.5% 내외의 적자가 이어져 국가채무가 60%에 육박하게 된다. 이건 너무 빠른 속도다. 가계나 기업이 빚을 내도 벌어서 원금, 이자 갚을 수 있는 수준에서 늘어나야 되는 것이고 나라라고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2.5%가 안 되는 상황에서 5.5% 내외의 재정적자를 연속적으로 내겠다는 건 납득하기 어려운 무리다. 더 걱정스러운 건 앞으로 재정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도록 증가 요인이 이미 구조화했다는 점이다.”
"재정적자 증가 속도 못지않게 재정지출 증가 고착구조도 큰 문제"
-재정지출 증가 요인이 구조화했다는 건 구체적으로 무슨 얘기인가.
“재정지출이 앞으로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게 고정적인 씀씀이가 크게 늘어났다는 얘기다. 사회보장제도 확대가 대표적인 사례다. 재정 총지출 중에서 의무지출비율이란 게 있다. 주로 복지분야 지출과 공무원 인건비, 건강ㆍ고용보험을 비롯한 사회보험지출 등 법적으로 반드시 지출해야 하는 예산의 비율인데 이 비율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지금은 50% 정도지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50년에 60%에 이른다고 하는데, 이건 코로나19 전에 추계한 거고, 지금 속도라면 그때 65~70%에 이를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예산의 30% 남짓만 재량지출 하고, 나머지는 몽땅 고정비 지출에 써야 한다는 얘기다. 그 의무지출비율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지출구조가 짜였다는 얘기다.”
-차기정부와 그 이후 중·장기적 재정 부담이 예상되는데도 이번 3차 추경은 물론, 문 대통령은 내년에도 확장적 재정기조를 유지하겠다고 한다. 현 정부의 입장을 어떻게 평가하나.
“그게 옳든 그르든, 현 정부는 애초에 의도한 정책 실현을 위해 원 없이 돈을 써보겠다는 입장인 것 같다. 마침 국회에서도 압도적 다수를 점했기 때문에 거칠 게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권은 5년간 국정을 맡은 역전마라톤 선수다. 코스를 너무 벗어난 상태로 바통을 넘겨주면 코스 이탈의 부담은 고스란히 다음 주자가 짊어질 수밖에 없다. 당장 누가 되든 차기 정부는 증세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닌가. 적극적 재정정책이 필요해도 나름의 절제와 책임이 필요한 건데, 마구 달리기만 하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
"현 정부 원 없이 쓴 나랏돈, 차기 정부와 중·장기 재정 부담으로 이전"
-장기적 관점에서 현 정부 재정정책에서 고칠 필요가 있는 부분이 있다면.
“불요불급한 재정지출부터 줄여야 한다. 각종 보조금 지출을 줄여야 한다. 각종 조세감면제도도 과도하다. 지출을 효율화해야 한다. 그래서 이번 정부가 다 바꿀 수 없다면 차기 정부라도 구조조정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본다. 그게 바통을 넘겨주는 자세 아닌가. 가급적 내년도 예산 편성에 이런 방향이 반영돼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되레 더 많이 풀어주는 쪽으로 가는 것 같아 걱정이다. 건강보험 지출도 구조조정이 절실하다. 일선 공무원은 몰라도 무분별한 공공기관 고용 확대는 안 된다. 수입면에서는 사회보험이 필요하더라도, 차제에 소득기준 부담체계로 바꿔 국세청이 보험료를 책정하는 시스템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가재정과 관련해 가장 뜨거운 논란을 빚은 차기 대선주자 정책 이슈가 기본소득제와 기본주택 등 이재명 경기지사의 기본시리즈인 것 같다. 지속 가능한 재정 차원에서 어떻게 평가하나.
“복지제도 개편을 전제한다고는 하지만 매우 어렵고,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고 본다. 성인 1인당 월 50만 원, 18세 이하에게 30만 원을 준다고 할 때 연간 290조 원의 예산이 들어가게 된다. 지금 우리나라 예산이 550조 원 정도라고 할 때 반이 넘는 규모다. 누가 봐도 무리다. 물론 최근 이 지사 얘기대로 단계적으로 시행하거나 지급 규모를 줄여 적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 경우 기본소득 의미가 없어지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차라리 지금 약 55만 원 지급되는 기초생활보장제 체제를 필요에 따라 합리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현실적이지 않나 생각한다. 기본주택제 역시 나중엔 주거복지를 위한 다른 아이디어들과 수렴돼야 한다고 본다.”
"국회가 예산 편성 전 증액 상한선 정하는 시스템 도입 필요"
-정부 교체기를 앞둔 상황에서 당장 증세론이 나오고 있지만, 그걸 넘어 앞으로 지속 가능한 재정을 구축하는 방안을 제안한다면.
“대선주자 중에서 유승민 의원이 부가가치세 인상을 거론했지만, 지금의 가파른 재정적자 추세를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라도 증세는 불가피하다고 본다. 부가세 인상이 소득역진성 등 결점이 있기는 하지만 신속한 시행의 편의나 국제적 수준을 감안할 때 비교적 현실적인 안이라고 본다. 문제는 지속 가능한 재정 시스템을 만드는 건데, 나는 먼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있는 재정준칙을 조속히 확립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재정준칙은 법적 구속력의 정도와 관계없이 재정건전성 관리의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할 것이다. 아울러 국회의 예산 관련 기능을 보강해 예산 편성에 앞서 국회에서 예산총액 증가율을 정하는 시스템을 도입해 예산 증액이 정권의 편의에 따라 이루어지는 걸 견제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고 본다. 이미 짜인 예산안을 재단할 땐 정략적 이해가 작용할 수밖에 없지만, 3월 국회에서 성장 전망과 세수 기대치 등을 감안해 증가율만 정하도록 하면 비교적 객관적으로 합리적인 결정이 가능하리라고 본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