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에?
"갑질 없었다" 적극 반박 글 올려
진상규명 전인데 '책임 회피' 논란
유족 측 "고인 두번이나 모욕" 반발
누리꾼들 "진정한 사과부터" 비판
"서울대 명예훼손?" "선민의식" 직격
"한분의 안타까운 죽음을 놓고 산 사람들이 너도나도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 역겹습니다." (구민교 서울대 학생처장(행정대학원 교수)의 페이스북 글)
"해당 관리자를 마녀사냥 식으로 갑질 프레임을 씌우는 불미스러운 일이 진행되고 있어 우려가 크다." (남성현 서울대 기획시설부관장(지구환경과학부 교수)이 서울대 관악학생생활관 홈페이지에 올린 글)
서울대 기숙사 청소노동자 이모씨(59·여)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근무 중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과중한 업무와 갑질로 인한 과로사"라는 비판이 유족과 노조 측에서 제기된 가운데, 서울대 보직 교수들이 거친 표현을 써가며 반박에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교수들은 (갑질 당사자로 지목된) '중간관리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2차 피해를 막겠다며 반박 글을 게시했다는 입장이지만, 진상 규명 작업이 아직 시작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갑질은 없었다"고 '단정'을 짓는 것 자체가 책임 회피를 위한 노림수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장 유족 측은 교수들의 해명에 "진실과 거리가 멀다"고 재반박에 나섰다.
특히 교수들이 반박 글에서 "역겹다", "피해자 코스프레", "마녀사냥" 등 자극적인 언어를 사용한 것에 대해 유족에게 또 한번 상처를 주고, 고인의 죽음을 추모하는 여론마저 폄하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당장 이들은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을 어떻게 개선할지, 대책에 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서울대 교수들 "갑질 아냐" 해명에 유족 측 "또 다른 모욕"
가장 먼저 논란에 불을 지핀 건 서울대 학생처장을 맡고 있는 구민교 행정대학원 교수의 글이다.
구 교수는 9일 "한분의 안타까운 죽음을 놓고 산 사람들이 너도나도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것이 역겹다"며 "언론에 마구잡이로 유통·소비되고 있는 '악독한 특정 관리자' 얘기는 모두 사실과 거리가 멀다"고 주장했다.
유족과 노조 측에서 제기한 여러 갑질 의혹에 대해서도 일일이 "아니다"라고 반박하면서다.
그는 업무와 상관없는 필기시험에 대해선 "직무교육 과정의 일환", 정장 차림 드레스 코드 요구는 "업무 회의 참석 이후 바로 퇴근하라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고인은 업무 필기시험에서도 1등을 했고, 드레스 코드 조치에도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이 같은 갑질 논란이 불거진 건, '노조 탓'이라고 비판했다. 구 교수는 "유족 모두 순수하고 겸손한 분들인데, 노조가 개입하면서 일이 엉뚱하게 흘러가고 있다. 억지로라도 산재 인정을 받아내기 위해, '중간관리자의 갑질' 프레임에 좌표가 찍혔다"며 노조가 무리하게 의혹을 부풀리고 있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유가족은 구 교수의 이 같은 입장에 대해 "또 다른 모욕"이라고 반발했다.
사망한 청소노동자 이모씨의 남편은 9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익명으로 출연, 관리자 측의 고인에 대한 이른바 '갑질'을 두고 "관리자가 사람을 장악하기 위한 일들이 아니었나, '너희들은 우리 말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들이 있지 않았나, 그런 마음이 든다"고 토로했다.
민주노총 민주일반노조연맹에 따르면, 6월 부임한 서울대 청소노동자 관리 담당 안전관리팀장은 노동자들에게 매주 필기시험을 치게 하고 점수를 공개하며 평가했다. 시험 문제는 '건물의 명칭을 영어와 한자로 쓰라' '건물의 준공 연도를 쓰라' 같은 내용이었다.
고인의 남편은 "어려운 형편으로 인해서 글을 모르시는 분들도 있었던 것 같다"며 "그분들이 느꼈을 자괴감을 생각할 때, 동료들도 모두 같이 마음 아파했다"고 말했다.
또 일반 행정직 직원들과 함께 회의하는 자리에는 남성 노동자는 사무직처럼 정장을 입고, 여성 노동자는 최대한 아름답게 입고 오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지만, 직원들은 잘못 보이면 어려운 곳으로 배치되는 두려움 때문에 저항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관리자는 지시 사항이 잘 이뤄지도록 사람들을 훈련시키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역겹다' 공격당한 이재명, 서울대 찾아 "공동조사단 필요" 강조
"피해자 코스프레", "역겹다"는 격한 표현이 논란이 되자, 구 교수는 "유족이나 다른 청소노동자분들이 아닌 정치권을 두고 한 말"이라고 해명하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이번 청소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해 울분을 토했다는 발언을 전한 기사 링크를 공유했다.
구 교수의 '피해자 코스프레' 발언은 "이 지사가 40년 전 공장을 다닐 때도 몇 대 맞았으면 맞았지, 이렇게 모멸감을 주지는 않았다"는 대목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11일 유족을 위로하기 위해 서울대를 찾은 이재명 경기지사는 진상조사 과정에 청소노동자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학교 측에 요구했다.
이 지사는 유족과 여정성 서울대 교육부총장이 배석한 면담 자리에서 당사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진상조사를 학교 측에 당부했다. 특히 진상조사에 동료 청소노동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어떤 결론이 나도 많은 사람이 동의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사는 그러면서 "이번 일로 무엇보다 인간의 존엄, 또 노동하시는 분들의 인격적 대우를 다시 한번 우리 사회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언급했다고 자리에 함께한 윤영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했다. 이 지사는 면담 과정에서 이씨 남편과 얘기를 나누다 손수건으로 두어 차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이 지사는 청소노동자에 대한 직장 갑질이 없었다는 학교 측의 주장에 대해 "주장이 엇갈리고 있으니 충분한 진상규명이 됐으면 좋겠다"며 "책임의 문제는 진상이 충분히 규명된 다음에 판단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학생처장이 본인을 겨냥해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것이 역겹다'고 비판한 것에 대해서는 "그분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다"고 짧은 답변으로 넘겼다.
"모욕감 느껴" "서울대 명예 더럽혀졌다" 억울해하는 교수들
두 서울대 교수는 지금의 상황이 "억울하다"는 입장도 내비쳤다.
구 교수는 "상황이 이런데도, 언론과 정치권과 노조의 눈치만 봐야 한다는 사실에 한 명의 서울대 구성원로서 모욕감을 느낀다"고 적었다.
서울대 기획시설부관장을 맡고 있는 남성현 교수 역시 '서울대의 명예'를 언급했다.
그는 서울대 관악학생생활관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민주노총 일반노조 측에서는 이 안타까운 사건을 악용해 몇몇 다른 위생원 선생님들과 유족을 부추겨 근무환경이 열악하다거나 직장 내 갑질이 있었다는 등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난 7일 기자회견 이후 관련 기사들이 편파적으로 보도되며 생활관은 물론 서울대 전체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의 주장을 "허위" "왜곡"이라고 단정한 남 부관장은 진상규명이 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도 했다.
그는 "대학본부와 생활관은 산재 조사에 성실히 협조하고 그동안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아직 부족한 점이 있다면 개선하겠다는 기본 입장을 밝혔다"며 "이번 안타까운 사건을 악용하는 허위 주장과 왜곡 보도에 현혹되거나 불필요한 오해 없이 진상이 규명될 때를 기다려 주기 바란다"고 적었다.
누리꾼들 "을의 죽음에 추모, 사과부터... 선민의식" 비판
두 교수의 반박글이 알려지면서 누리꾼 사이에선 "진정성 있는 사과가 일단은 먼저 아닐까",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부터 돌아보고 이야기하라"며 두 교수의 대응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누리꾼은 "이번 사건에 대한 분노는, '피해자 코스프레'가 아니라 을의 죽음에 대한 추모와 연대"라고 강조했다. 서울대 구성원으로 모욕감을 느낀다는 발언에 대해서도 이 누리꾼은 "노조 따위가 서울대에 덤빈다니 자존심 상한다는 말로 들린다. 역겨운 건 당신의 세 치 혀와 선민의식"이라고 직격했다.
지난달 2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청소노동자들이 화장실에서 식사하지 않도록 휴게 공간을 보장할 것을 의무화해주세요'란 제목의 청원은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이 전해진 뒤 참여 인원이 급증하고 있다. 11일 오후 현재 19만명을 넘어서며 청와대 측의 답변 요건인 20만 명에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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