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청바지
편집자주
독창적 문체로 남성 패션지 ‘GQ’를 18년간 이끌어온 이충걸 전 GQ 편집장이 문화 현상의 이면을 새롭게 들춰 봅니다. 현재 서울 필동에 사는 이 전 편집장의 ‘멘션(mentionㆍ촌평)’은 격주 수요일자 <한국일보> 에 실립니다. 한국일보>
어쩌다 옛날 사진을 보면 눈이 저절로 휘둥그레진다. 무슨 생각으로 두 사이즈 큰 재킷을 입은 거지? 얼굴만 한 금테 안경이며 귀를 덮은 머리는 또 뭐야? 세상에, 일수 가방 닮은 저 가죽 백은? 저렇게 하고도 멋진 줄 알았겠지? 그 시절의 향연이 끝난 지가 언젠데 이제 와서 창피하다고 아우성치는 마음은 또 무엇일까?
현실의 나는 무수한 내가 쌓인 세월의 축적일 것이다. 그러나 신체적으로는 분명 아니다. 태어났을 때 2조 개였던 세포는 성인이 되면 50조 개로 늘어나는데, 체세포가 모두 교체되는 7년을 몇 번이나 거친 지금,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동일인일 리 없다. 당연히 얼굴이 변하고, 관심사가 바뀌고, 관계도 달라졌다. 좋아하던 계절도.
전에는 죽자고 겨울이 좋았다. 이제는 봄이 제일 좋아졌다. 광량이 조금 강해지는 4월이면 눈이 부셔 뜰 수도 없는 마음속으로 살아라, 자라라, 꽃 피워라, 꿈꾸어라, 사랑하라, 기쁨을 느껴라, 새로운 충동을 느껴라… 하며 소년소녀를 찬미하는 헤르만 헤세가 꿈틀댄다. 그러다 여름이 오면 나는 녹색 화염이 불타오르는 초목 사이로 걸어가야 할 것이다. 올의 짜임새마다 헤르만 헤세의 약속이 담긴 바지를 입고. 그러나 옷장에 온통 뻣뻣한 데님밖에 없는 나는 새침하게 여름의 미래로 들어갈 수 없다. 영혼을 만들어 주지는 않으나 그 안에서 쉴 수 있는 코튼 바지가 없기 때문에.
한때는 주기적으로 수트를 입었다. 거울을 볼 때마다 물론 광고 페이지를 찢고 나온 것 같았다. 나한테만. 그래도 익숙해지진 않았다. 내가 타이를 벗어던지는 건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록코트를 입지 않은 진지한 남자들의 맥락과는 아무 상관없었다. 빈틈없이 도회적으로 보이는 룩에 대해 내가 갖는 이중적인 태도였을까. 나는 단지 너무 정색한 것 같은 댄디즘이 불편했다. 그런데 옛날 사진에는 지금까지 그대로인 진실 하나가 더 있었다.
작년 가을, 불길한 볼드모트의 구름이 하늘을 까맣게 덮을 때조차 나는 옛날처럼 청바지를 샀다. 몇 벌인지 세기도 미안했다. 돈도 없고, 그거 하나에 얼마인지 남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청바지 수집가도 아니면서. 무슨 세상에서 가장 방대한 청바지 컬렉션을 갖춘 샌프란시스코의 리바이스 기록 보관소라도 만들 작정으로? 아니, 나는 천으로 만든 무언가를 좋아하는데 그게 하필 진이었을 뿐이다.
원고료를 청바지 사는 데 탕진하고서야 나는 내 정확한 허리 사이즈를 알았다. 그 새 살이 빠져서 바지에 다리를 끼워 넣을 때나 신발을 묶을 때 식식거리지 않게 되었다. 꿈의 허리 30인치는 너무 스몰 사이즈였다. 바지를 집으니 확실히 작아 보였다. 그런데도 탈의실에서 지퍼를 올려 버튼을 채울 수 있다는 게 보고도 믿기 어려웠다. 나, 허리가 있긴 있었구나. 그간 눈길도 주지 않던, 몸에 찰싹 붙는 데다 밑 위가 짧고 길이 자체가 긴 바지가 그 순간, 진의 결정판, 흠 없는 모던 팬츠가 되었다.
집에 와 다시 입어보니 아까보다 허리가 조금 조이는데도 여전히 흐뭇했다. 나는 방청객 같은 리액션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우와!" 완벽한 청바지는 일기장과 같았다. 그 상태로 책상 앞에 앉아 밀린 원고를 쓰니 없던 시심(詩心)까지 스멀거렸다. 그 상태는 철학의 문제를 불러왔다. 데카르트가 마음과 몸을 둘로 나눌 때까지 어느 철학자도 죄책감과 체중 문제의 해결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그런데 나는 마법의 청바지를 입은 것이다. 벗어도 입은 기분은 무엇일까. 결의에 찬 걸음으로 활보하다 보면 머리를 빡빡 밀어도 멋질 것 같았다. 내가 바지를 바짝 당겨 입은들 아무도 몰랐지만.
나는 매일 부자의 안방처럼 바삭거리는 바지 대신 진을 입었다. 제대로 작동하는 인간은 말과 행동으로 스스로를 표현한다. 소리 없는 자만이 외모로 자신을 드러낸다. 복식을 다룬 매체에서 오래 일한 직업의 위험은, 사람들이 내가 옷에 대한 모든 질문에 답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청바지만이 세상에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장소, 떠돌다 정착한 곳이었다. 나는 진이라는 생필품에 둘러싸였을 때만 완전체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숨는 재주가 없어서 청바지 속으로 숨었다.
청바지를 좌르륵 늘어놓고 보니 무릎 둘레를 패딩 처리했거나, 밑단이 극단적으로 조여졌거나, 엉덩이가 제 멋대로 구겨지거나, 옆선을 따라 실크 파이핑을 넣거나… 클래식 아이콘이라는 청바지라면서 이게 무슨 소란인가 싶었다. 나는 오직 가죽 모토사이클 진을 사지 않은 것에 가슴을 쓸어 내렸다. 과거의 옷이 지금과 연관성이 있으려면 그것을 강인하게 밀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과거를 돌아보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것도 문제지만, 기능적인 요소가 빠진 채 환상적으로 요란한 진은 차라리 을씨년스러웠다. 진을 두고 젊음이니 제임스 딘이니 하는 소리도 다 무가치해 보였다. 돈 많은 한량이나 대책 없는 술주정뱅이라면 몰라도.
'유행을 타지 않는 것'이란 패션 저널리즘에 가장 많이 쓰이는 말 중 하나이다. 옷감이 달라지고, 기후가 바뀌어도 진은 클래식이라고 불리는 것 중 제일 조금 변하는 줄 알았다. (변하지 않는 아이템으로는 파자마가 당장 떠오르지만 트렌치코트도 못지않은 것을. 무릎 길이에 벨트가 있는 레인 코트는 비가 오지 않아도 원피스보다 작아질 일 없을 것이다. 스무 살 때 누가 나에게 선견지명으로 아쿠아스큐텀 트렌치코트를 선물했다면 아직도 입고 다녔을 텐데. 격식 있는 자리에도 입고, 쌀쌀한 날씨에도 평상복으로 입었을 텐데. 변하지 않는 것은 가치 소비. 소모품이되 함부로 다루기 싫은 것이야말로 지속적인 도피처 아닌가).
그런데 그 많은 청바지 중 제일 좋은 건 망가뜨릴 대로 망가뜨린 (것 같은) 진이었다. 낡은 정도를 5년, 10년, 15년으로 조정하다 못해 100년 전 광산에서 죽은 사람의 청바지와 똑같이 낡게 가공한 진은 또 하나의 위조인지도 몰랐다. 낡은 게 아니라 '낡아 보이게'라니. 그 순간, 왜 내가 청바지 말고 다른 바지를 입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사물의 경계를 관찰하며 사회적 논쟁을 진 안에 끌어온다는 생각도, 진의 저울이 집단적인 순응으로 기울기 전에 빠져나오게 만드는 방향타라는 생각도 없는데. 미니멀리즘과 과장된 패션 사이의 논쟁이야 자주 있는 일이고, 룩을 극단으로 몰고 가는 사람들은 늘 존재할 텐데, 내가 꼭 그런 사람 같았다. 진을 고집하는 것으로 얻는 안정감이야말로 극단주의의 한 예 같았다.
다른 바지를 입으면 뻔한 존재가 새로운 무한대를 접할 수도 있을 텐데, 청바지밖에 모른다는 건 그 순간 너무 침울한 현실 확인이었다. 청바지와 나의 관계는 공생 관계에서 병리학적인 문제로 바뀐 듯했다. 공항이나 법정에서 입은 옷이 증거물이 되듯이 바지 하나에 결부된 죄의식 문제는 내 삶이 아직도 결정되지 않았다는 얘기인지 몰랐다. 어쩌면 한 인간의 통과의례에 관한 이야기일까. 한 사람이 일생의 어느 단계에서 완료해야 하는 특정 역할. 또 다른 시작을 나타내는 기간. 사다리 각각의 칸 사이로 저지르는 이상한 습관. 나를 성인으로 만들어주는 수백만의 보이지 않는 잡동사니. 그리고 그것에 동반되는 시끄러움.
지금처럼 인생의 어두운 시기엔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내가 머무는 청바지의 세계도 변했다. 진은 문화의 막강한 아이콘이란 말도 낡고, 토미 힐피거가 데님의 신으로 떠받들어지던 시대도 지났다. 진에 티셔츠와 스틸레토를 곁들이는 여성도 너무 뒤처져 보이는 판국에 리바이스 501의 시대? 진작에 저물었다.
다가온 비의 계절, 습하게 달라붙는 데님을 걷어내고 파자마 바지를 꺼냈다. 대낮 지하철 안의 파자마는 극장에서 쓰는 선글라스, 너무 헐렁한 운동복, 한증탕의 머플러처럼 부정적인 이목을 집중시켰다. 사람들은 내가 자다 말고 담배 사러 나왔거나 장난 치는 중이라고 생각해주지 않았다. 비위가 상해 결막염처럼 붉어진 눈으로는 신경 배선이 꼬인 부류만 보였을 것이다. 가치가 갈등을 만들고 믿음이 혼란을 주는 때일수록 그 옷이 보기 좋은가 하는 문제는 순식간에 서로 자극하지 않으려는 집단의 룰을 거슬렀다. 나는 나의 청바지를 다시 찾았다. 신경을 어루만지는 도구. 가끔 필요한 휴게소. 애지중지하는 보호막.
현실적으로 삶은 여러 개로 증식할 수 있지만 인생은 투 샷으로 잡는 카메라 같아서 종국에는 내가 보는 나, 남이 보는 나, 두 개로 분리된다. 어떤 이는 타인이 자기를 보는 방식으로 의미를 얻고, 다른 이는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데서 가치를 찾을 것이다.
나는 결론을 내렸다. 입고 싶은 대로 입어라. 모든 것이 다수성이라는 문구에 담긴 세상에는 어차피 뭘 해도 욕 먹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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