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영 '컬러 필드'(웹진 비유 7월호)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내게 꼭 맞는 짝을 찾는 일은 너무 어렵다. 가치관, 정치적 입장, 패션 스타일, 음식 취향 등 많은 요소가 검증 대상이다. 이 요소들을 속속들이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들여 대화를 나누고 많은 경험을 함께해야 한다. 아주 소수만이 매우 적은 탐색비용을 치르고도 완벽한 인연을 만나는 행운을 누린다.
그런데 만일 이 수고로움을 감수하지 않고도 한눈에 내 짝을 알아볼 수 있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네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할 필요 없이 서로를 단박에 알아볼 수 있는 표지(標識)가 생긴다면? 그건 과연 우리에게 ‘관계의 해방’을 선사할까? 웹진 비유 7월호에 실린 박문영의 단편 ‘컬러 필드’는 그런 상상을 소설로 펼쳐낸 작품이다.
소설의 배경은 언젠가의 근미래, ‘컬러 필드’가 관계를 지배하는 세상이다. 컬러 필드에서는 말 그대로 ‘색깔’로 나 자신을 드러내고 상대방을 판단한다. 귀나 눈썹, 코, 입술, 손목, 팔목에 성적 페로몬에 따라 색이 결정되는 ‘링’을 찬다. 성년이 되면서부터 컬러를 사용할 수 있고, 200여 개의 색깔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링을 확인하고 상대방에게 다가간다. 물론 그때그때 가까이하고 싶은 색도 다르다. 나와의 배색을 시험해볼 수 있는 것이다. 비슷한 계열의 색상끼리는 느긋하고 평화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보색끼리는 격렬하고 전투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러한 ‘페로몬 통신’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라, 외출할 때마다 교제에 여력이 없다는 뜻의 가짜 흰색 링을 차기도 한다.
“나의 색을 보여주고 너의 색을 보겠다는 암묵적인 약속”이 공공연한 세계에서 노골적인 혐오는 애초에 차단된다. 외모 평가를 입 밖으로 내는 것은 ‘야만적인 구태’가 된 지 오래고 장애에 관한 문제 발언을 할 경우 ‘공생 저해법 3조 1항’에 위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평가’하고 그것으로 판단을 내리려는 사람들의 속내까지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 당신의 색깔로 세상을 만나세요”라는 광고 문구는 오히려 공허하게 울린다.
소설은 이런 세계에서 서로의 색깔을 확인하지 않고도 4년째 동거 중인 한 커플이 주인공이다. 컬러 필드 분석에 따르면 둘의 예상 만족도는 12.1%. 우리가 서로에게 최적의 상대가 아니라는 수치와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에서 한 사람만 고집하는 건 고리타분하다는 자책을 피해가기 어렵다. 둘은 각자에게 더 잘 어울리는 상대를 만나보기로 한다. 하지만 남는 의문은 이런 것이다. ‘완벽한 짝’이라는 게 대체 뭔데? 작가는 이렇게 덧붙인다. “어떤 단념은 구원이 되기도 한다.”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는 멀리 있지 않다. 지금 당장 휴대폰을 들어 데이팅 앱 중 하나를 실행한다. 나와 잘 맞을 것 같은 상대의 정보가 쏟아진다. 잘하면 그중 하나와 연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후에는 흔한 갈등과 의심과 지루한 시간이 찾아올 것이다. 물론 그걸 견딜 필요는 없다. 언제든 ‘더 나은 가능성’이 내 손안에 있으니까. 그런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에서 완벽한 상대는 영원히 나타날 수 없다. 이 지루함을, 조금 더 견뎌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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