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품수수 검사 휴대폰 압수하고도
경찰, 20일 넘게 암호 해제 못해
검사 비밀번호 함구해 수사 난항?
임의로 잠금 해제 땐 저장 정보 삭제
경찰, 계속 거부 땐 구속영장 신청 검토
경찰이 '가짜 수산업자' 김모(43)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현직 검사의 휴대폰을 압수하고도 20일 넘게 잠금을 풀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A검사 휴대폰은 삼성 갤럭시S21 모델로 임의로 잠금해제를 시도할 경우 초기화돼 저장된 정보가 모두 삭제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A검사 휴대폰에 김씨와 A검사 사이의 커넥션을 보여줄 증거가 다수 담겨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A검사가 잠금해제 협조를 계속 거부할 경우, 사전 구속영장 신청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13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지난달 23일 A검사의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A검사의 검찰청 사무실과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휴대폰과 컴퓨터 등 디지털기기를 압수했다.
경찰은 A검사 휴대폰을 입수한 뒤 분석을 시도했지만 비밀번호가 설정돼 있어 이날까지 암호를 해제하지 못했다. '스모킹 건'으로 평가받는 핵심 증거물을 확보하고도, 디지털 포렌식을 못 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포렌식은 휴대폰 등 데이터가 담긴 각종 저장매체에 남아있는 정보를 복원하고 분석해 범죄 단서를 찾는 수사 기법이다.
A검사의 휴대폰은 삼성전자 갤럭시S21 모델이다. 지금까지 갤럭시 휴대폰은 아이폰과 달리 수사기관에서 포렌식 기법을 통해 피의자 협조 없이도 잠금해제가 가능했지만, 갤럭시S21 등 최근 삼성전자가 출시한 기종은 아이폰과 비슷한 수준의 보안기술이 장착된 것으로 전해졌다. 사용자 암호나 잠금해제 소프트웨어를 활용하지 않고 임의로 잠금을 해제하려다 실패하면 시스템이 초기화되기 때문에, 경찰은 잠금해제 시도 자체가 조심스런 상황이다.
A검사는 김씨로부터 수산물을 받은 사실은 인정하지만, 금품수수 혐의는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김씨의 휴대폰 포렌식 등으로 수집한 자료들을 토대로 A검사가 김씨로부터 400만 원 상당의 명품시계와 현금 500만 원 등을 수수한 정황을 포착했다. 경찰이 A검사의 휴대폰 기록까지 살펴볼 경우, 증거관계가 좀 더 탄탄해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난항을 겪고 있는 셈이다.
현행법상 피의자에게 휴대폰 암호를 진술하도록 강제하는 조항은 없어 A검사가 협조하지 않으면, 사실상 휴대폰을 열어 볼 방법이 없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헌법이 보장하는 진술거부권이나 사생활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어 압수한 휴대폰의 암호를 풀도록 요구하긴 어렵다"며 "결국 암호를 해독하는 수사기관의 기술적 역량으로 돌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앞서 검찰은 이른바 '검언 유착' 수사와 관련해 지난해 6월 한동훈 검사장의 아이폰11 휴대폰을 확보했지만, 한 검사장이 암호해제에 협조하지 않아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하지 못했다. 휴대폰 포렌식을 못 한 검찰은 아직까지도 한 검사장에 대한 최종 처분을 내리지 않고 있다.
반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수사를 받다가 숨진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소속 검찰 수사관의 아이폰10(X)의 경우, 지난해 3월 대검이 압수 4개월 만에 암호를 풀기도 했다. 지난해 7월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변사 사건 당시 경찰이 발견한 박 전 시장의 업무용 아이폰XS는 피해자 측에서 비밀번호를 제보하면서 실마리가 풀리기도 했다.
경찰 "비밀번호 함구는 증거인멸"
경찰 내부에선 A검사가 끝까지 휴대폰 잠금해제를 거부하며 수사에 비협조적으로 나올 경우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수사기관에 몸담고 있는 A검사가 휴대폰 비밀번호를 함구하는 것은 혐의를 감추기 위한 증거인멸 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경찰이 김씨 휴대폰 등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A검사 혐의와 관련한 증거를 상당 부분 확보한 만큼, A검사의 수사 협조를 마냥 기다릴 수 없다는 계산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찰이 A검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하면 현직 검사에 대한 경찰의 첫 압수수색에 이어,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현직 검사를 상대로 한 최초의 구속영장 신청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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