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없다면 세상이 평화로울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역사에 기록된 많은 전쟁이 종교 때문에 일어났다는 설명도 뒤따른다. 그렇다면 일신교는 특히 책임이 크다. 그들의 만남은 전쟁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중세의 십자군 전쟁부터 현대의 이슬람 국가(IS) 준동까지 역사가 종교의 폭력성을 증언한다. 종교는 본질적으로 잔인하고 폭력적이다.
세계적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은 그러한 주장이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한다. 그는 전쟁이 벌어진 원인에는 다양한 사회적, 물질적, 이념적 요인이 관련돼 있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빈약한 자원을 둘러싼 경쟁이었다고 지적한다. 현대의 중동에서 벌어진 전쟁들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요인들을 무시하고 폭력의 책임을 전적으로 종교에 돌린다면 역사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암스트롱은 현대 사회가 자신들의 잘못을 직시하는 대신 신앙을 희생양으로 만들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기원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례를 넘나들며 주장을 입증한다. 종교 전쟁으로 손꼽히는 십자군 전쟁 역시 원인은 사회적, 경제적 요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세속적 욕구는 종교적 열정만큼이나 강렬했다. 십자군을 처음으로 소집한 교황부터 내심 교회의 권력을 강화하기를 원했다. 귀족들은 동방에서 명성과 재산, 땅을 얻으려고 원정에 뛰어들었다. 유명한 십자군 지도자였던 이탈리아의 보에몽이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기회가 생기자마자 십자군을 이탈해 안티오키아의 군주로 등극했다.
종교를 전범으로 취급하는 경향은 현대에도 이어진다. 암스트롱은 서방에는 9·11 테러를 계기로 이슬람은 본래부터 폭력적 종교라는 확신이 널리 퍼져있다고 지적하면서 테러의 이면에 있는 정치적, 경제적 동기를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미국이 두 거룩한 모스크의 땅에 군인을 수천 명 보냈다’고 비판한 빈 라덴의 선전포고는 종교적인 표현이라기보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지배하다시피 하는 미국에 보내는 항의였다. 비행기 납치범들이 스스로를 종교의 전사로 주장했을지는 몰라도 그들의 소지품에서 발견된 기도문은 규범적 이슬람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종교가 인간이 저지른 폭력의 역사에 전혀 기여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근대 이전의 세계에서는 종교가 국가의 폭력과 떼어낼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 어떤 신앙도 군사적으로 막강한 제국의 후원이 없었다면 세계 종교로 발돋움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종교가 전쟁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용된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암스트롱은 그래서 상황을 정확히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종교의 본질과 역할을 단순화해 비판한다고 세상이 평화로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당장 종교가 정치의 영역에서 떨어져 나간 이후로도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났다. 세속주의는 종교를 대체하기는커녕 또 다른 종교적 열광인 민족주의를 만들어냈을 뿐이다. 민족주의는 종교가 물러난 자리를 물려받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정당화했다. 이런 식으로는 평화를 이룩할 수 없다.
무엇보다 종교의 역사에서 평화를 위한 노력은 거룩한 전쟁만큼 중요했다고 암스트롱은 설명한다. 애초에 폭력을 생존에 필요한 수준으로 제어하려는 문명의 욕구로부터 종교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종교는 삶의 모든 면에 스며들어 있었다. 주사위 놀이에서도 신성을 찾았던 근대 이전의 인류는 종교와 정치를 구분하는 현대인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종교적인 사람들이 폭력을 저지르고 다른 민족을 침략했지만 바로 그들이 삶을 고양하고 예의 바른 공동체를 건설할 온갖 방법을 찾아냈다는 이야기다. 암스트롱은 광고 문구를 인용하면서 현대인이 종교에 품은 오해를 풀어낸다. “날씨는 아주 많은 일을 한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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