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야권 대권주자 경쟁에서 '독주 체제'를 구축해오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흔들리고 있다. '반(反)문재인' 외에 자신만의 메시지와 지향점을 제시하지 못하는 가운데 '전문가와 국민의 얘기를 먼저 듣겠다'는 취지의 '회동 정치'도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사퇴 17일 만에 전격 국민의힘에 입당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향한 기대가 커지는 배경에는 윤 전 총장에 대한 실망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윤 전 총장은 15일 서울 종로구 반기문재단에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예방해 비공개 회동을 했다. 반 전 총장은 윤 전 총장에게 "앞으로 많은 어려움과 난관이 있을 것"이라며 "예비후보로 등록하셨고, 국가를 위해서 헌신하겠다는 뜻을 발표하셨으니까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로 열심히 하시면 유종의 미를 거두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덕담을 건넸다.
반 전 총장을 만난 것은 외교·안보·국제문제에 대한 조언을 듣기 위해서다. 그러나 윤 전 총장의 의도와 달리 이목은 반 전 총장의 '대권 실패 이력'에 집중됐다. 반 전 총장은 2017년 대권 도전을 선언했으나 네거티브 공세와 정치적 오판으로 3주 만에 도중하차했다.
공교롭게 두 사람의 회동은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시점에 성사됐다. 일천한 정치 경험과 제3지대라는 공통점만으로 두 사람의 행보는 대중에게 겹쳐 보일 수밖에 없었다. 반 전 총장은 "(자신이 도중하차했던) 그때 정치 상황과 지금 상황은 너무나 다르다"고 했지만, 이번 회동이 "윤석열이 '제2의 반기문'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뒷말만 남긴 셈이 됐다.
이는 윤 전 총장의 대권 행보에 전략과 정무적 판단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윤 전 총장 캠프 관계자는 "일정 조율이 잘 이뤄진 분들부터 만난 것"이라고 했다. 대권주자가 언제 누구를 만나는지가 일종의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음에도 "약속이 잡히는 대로" 일정을 소화하고 있음을 자인한 셈이다.
윤 전 총장은 17일에는 광주를 방문해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유족들과 대화를 갖는다. 당초 중도·민주당 이탈층을 아우르겠다는 입장과 달리 반문·보수 일변도의 행보를 하고 있다는 지적을 감안한 일정으로 읽힌다.
전문가와 국민을 직접 만나고 있는 '윤석열이 듣습니다' 행보도 실망스럽다는 평가가 많다. 이른바 '민생 행보'인데, 이를 언론에 공개하기보다 자영업자, 부동산 중개사, 시민단체 활동가 등을 비공개로 만난 뒤 주요 발언만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한 야권 관계자는 "국민과 직접 소통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모두가 다 아는 자영업자의 어려움, 부동산 문제 등에 대한 내용이 딱히 의미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며 "자신만의 메시지를 고민해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윤 전 총장 측의 아마추어 행보는 최 전 원장에 대한 기대를 키우게 하는 요인이다. 국민의힘 입당에는 거리를 둔 채, 자신만의 비전과 정책을 보여주지 않다 보니 보수 유권자들의 피로감만 쌓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윤 전 총장이 당장 전략을 수정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지지율이라는 게 하락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정치적 손해, 유불리를 떠나 손해가 있더라도 제가 한 번 정한 방향으로 일관되게 걸어가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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