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 20년 만에 합법적 지위 얻은 교수노조?
'비정규직 증가→ 교수 서열화→생계 위협'에
"대학 눈치 보느라 침묵하는 지식인 많아져"
"노조가 '평등한 대학' 만들어야…약자 연대 중요"
"교수라고 전부 강자가 아니에요. 비정규직 교수들은 생계 위협을 받는 노동자입니다. 대학 내 차별을 없애려면 청소노동자, 시간 강사, 비정규직 교수 등 약자끼리 손을 잡아야 합니다."
전국교수노동조합이 지난달 16일 긴 투쟁 끝에 설립한 지 20년 만에 법내 노조란 합법적 지위를 얻게 됐다. 2018년 8월 헌법재판소가 교수노조 설립은 합헌이라고 인정했고, 2년 뒤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한 설립 신고 반려 행정소송에서 승소했다. 교수노조는 이에 14일 다시 노조 설립을 신고했고, 이틀 뒤 필증을 받았다.
그러나 합법적 노조란 첫발을 뗐지만, 의문을 품는 시선은 적지 않다. 고액의 연봉과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는 기득권으로 여겨지는 교수들에게 노조가 필요하느냐는 말이 나온다. 최악의 근무 여건 속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넘쳐나는 상황이라 '배부른 소리'로 비칠 수 있다. 최근 발생한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만 봐도 그렇다.
교수노조에서 활동하는 김일규 강원대 교수(이하 김)와 위대현 이화여대 교수(이하 위)는 지난달 14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일보 본사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교수가 지식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서로 연대해야 하고, 그러려면 노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교수가 정년을 보장받는 '철밥통'인 시대는 옛말이라고 했다. 대학이 온갖 편법으로 비정규직 일자리를 양산해 교수들도 생계를 위협받게 됐다고 토로했다.
비정규직 교수는 단순히 일자리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지식인으로 활동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든다. 교수들이 사회적 문제에 침묵하게 된 것도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란 게 이들의 설명이다.
사회적 활동으로 교육부와 대학 재단에 찍히기라도 하면 강단에 서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공포가 교수 사회에 뿌리내리게 됐다. 결국 교육부와 재단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에서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건 언감생심이다.
그러나 이들은 교수노조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건 물론, 노조가 울타리가 돼 준다면 교수들이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노조와 협력한다면 교육을 넘어 더 큰 역할도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다음은 김 교수, 위 교수와의 일문일답.
"교수도 노동자다" 20년 만에 인정한 국가
-교수노조에 어떻게 가입하게 됐나.
김 "2014년 정교수가 된 해에 바로 교수노조에 가입했다. 노동자로서 노조 활동을 하고 교육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 노력하는 게 교수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위 "2015년 말 이화여대를 떠들썩하게 만든 정유라(최서원의 딸) 입시 특혜 논란과 이로 촉발된 최서원(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며 대학이 갈 방향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이화여대가 시련을 겪던 시절 대학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함께 연대해 싸워야 대학도 바꿀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주변에서 '교수가 왠 노조냐'란 얘기를 들을 것 같다. 이런 오해를 접할 땐 어떻게 대처하나.
김 "노동을 통해 임금을 받기 때문에 '교수도 노동자'라고 얘기하겠다. 노조는 노동자의 권리다.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가 만들어질 때도 '교사가 무슨 노동자냐'란 논란이 있었다. 우리 사회에선 몸으로 고생하는 육체노동자만 노동자란 인식이 있는데 잘못됐다."
위 "'살 만한데 왜 노조를 만드냐, 이런 소리를 많이 들었다. 모두가 잘 사는 사회를 만들려면 함께 싸워야 한다. 살기 어렵다면 더욱 노조를 만들고 가입해야 한다."
-20년 만에 법내 노조 설립 인가를 받게 됐다.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는가.
김 "국가가 교수도 노동자라는 걸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정식으로 사용자 측인 교육부나 대학 재단에 당당하게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
위 "오랜 투쟁이 드디어 결실을 이루게 됐다. 여러 방해로 노조 결성을 못하는 노동자가 많은데, 언젠가 분명 결실을 이룬다는 걸 보여줬다. 더 많은 사람이 노조를 할 수 있게 됐다."
비정규직 꼼수 채용으로 교수들 대립하게 만든 대학들
이들은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 교수들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했다. 교수는 크게 '정년 계열 교원'과 '비정년 계열 교원'으로 나뉜다. 교수들 사이에선 '정년 트랙'과 '비정년 트랙'으로 불리는데, 정년 트랙을 통해 채용된 교수만 정년을 보장받는다. 비정년 트랙으로 뽑힌 교수들은 '교수' 직함을 달아도 비정규직인 탓에 언제 학교에서 쫓겨날지 알 수 없다.
10년간 조교수(부교수 전 단계)만 한 뒤 계약이 종료되는 비정년 트랙 채용도 비일비재하다. 고용 안정성이 흔들리면서 교수들 간 '밥그릇 싸움'이 벌어지면서 정년·비정년 교수 사이 편 가르기가 일어나고 있다.
-교수는 '철밥통'이란 이미지가 있어 교수들의 노조 활동을 안 좋게 보는 여론도 있을 것 같다. 실제 요즘 교수 생활은 어떤가.
위 "이대는 사립대 중에서도 안정적이고 준수한 학교인데도 '외국어 강의 전담 교원'이란 이름의 비정년 트랙까지 뽑는다. 저보다 교수 생활을 먼저 하신 분 중에는 14년간 조교수만 하시다가 나간 분도 있다. 보통 5, 6년 조교수를 하면 부교수로 올라가는데 말이다.
대학이 교수 사회를 계층화하고 차별해 대립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문제는 이런 압박이 다른 이에게도 들이닥칠 수 있다. (정교수들도) 안전한지 의문이다."
김 "이런 비정규직 교수가 계속 늘고 있다. 상위 10위권 사립대와 국공립대를 빼면 비정년 교원이 엄청 늘었다. 비수도권 사립대는 말도 못할 정도다."
-교수 사회가 보수적이고 위계질서가 강한 것으로 아는데, 노조 가입을 안 좋게 보는 시선이 있을 것 같다.
김 "보수적인 건 맞지만 정년 트랙 교수들의 위계는 심하지 않다. 오히려 정년 트랙과 비정년 트랙, 강사 사이에 철저한 위계가 존재한다. 가장 위에 있는 정년 트랙 교수는 기득권을 누리기 때문에 노조를 적대시하거나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위 "오히려 대학에 불어닥친 위기로 노조가 필요하다는 걸 느끼는 교수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
-교수노조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어떤가.
위 "많은 대학의 총학생회가 와해된 상태라 학생들의 목소리는 알 수 없다. 다만 최근 대학원생들이 대학원생노조를 만들어 '우리가 진짜 노동자'라는 얘기를 한다. 이들과 함께 싸운다면 그들도 교수노조를 좋게 볼 것이다."
"다른 노동자 배척하면 필패…대학 내 약자끼리 손잡아야"
교수들은 교수노조를 통해 연대의 힘을 증명하겠다고 약속했다. 대학 내 차별 철폐란 목표를 이루겠다는 다짐이다. 하지만 최근 사망한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건으로 교내 일반 비정규직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교수들은 이에 대해 "그럴수록 약자들끼리 서로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으로 교내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가 재조명되고 있다. 자칫 교수노조가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 수 있다.
위 "교수노조는 대학 사회를 조금 더 평등하고 차별 없는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만든 단체다. 교수는 사회적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교수들, 이번 사태에 분노하는 분들이 많다."
-교수노조가 대중에게 환영받기 위해선 '교수=기득권'이란 이미지를 지우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김 "그런 불신을 해소하려면 이익 집단으로서의 모습이 아닌 더 나은 가치, 교육 공공성과 대학 내 민주화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런 노력을 안 한다면 대중은 외면할 것이다.
국공립대 교수노조의 활동을 보면 우려스러운 측면이 있다. 다른 교육 공무원처럼 교육·연구 수당을 달라고 요구한다. 당연히 요구할 수 있고 요구해야 한다. 하지만 그게 최우선 요구 사항이 되면 일반인들은 '교수들이 더 가지려고만 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위 "다른 노동자에게 배타적으로 대하면 필패한다. 교수노조가 교수들의 이권만 지키려는 단체가 아니라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대학 내 모든 차별을 없애고 격차를 해소해 대학을 평등하게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정규직 교수들이 이권을 내려놓는 것까지 고민해야 한다."
"대학 교육은 공공재…모두가 누리는 '무상교육'이 맞다"
-노조 설립 신고 기자회견문을 보면 '대학 무상교육' 화두를 던졌다.
위 "고등교육을 통해 얻는 가치가 있다. 우리나라 경제력이면 이런 가치는 국가가 보장해 줘야 한다. 대학 교육 자체가 특권이 되지 않으려면 무상화에 준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몇 년 전 프랑스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의 학비를 150% 인상했는데, 이화여대 학비가 더 비싸다. 우리나라의 대학 등록금 부담은 굉장히 크다."
김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고등교육도 교육의 일부임은 자명하며 그런 의미에서 고등교육기관은 모두에게 열려있는 공공재다. 따라서 돈이 있든 없든 실력만 있다면 원하는 누구든 누릴 수 있는 인간의 기본권으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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