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 오만에서 아랍에미리트로 국경 넘기
오만의 무스카트에서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까지 육로로 국경을 넘었다. 출입국 심사의 마지막 관문에서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놈의 약(진통제)이 문제였다.
무스카트에서의 마지막 날. 내일이면 두바이로 넘어갈 것이다. 두바이에 볼 일이 있느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단지, 두바이에서 스리랑카의 콜롬보로 가는 항공편이 예약되어 있었다. 행여 오만에서 시간이 남으면 옆 나라 구경이라도 할까 싶었다. 하지만 여유 시간 따윈 없었다. 비행 날짜를 바꿀 수 없는 티켓이었다. 여러 사정을 고려할 때 육로 이동이 최선이었다.
2개의 버스 회사가 양국의 이동 수단으로 활약 중이었다. 하나는 오만 정부에서 운영하는 엠와살랏(MWASALAT), 다른 하나는 사설 회사인 알칸즈리(Al-Khanjry)다. 424㎞에 달하는 주행, 약 6시간 걸리는 거리다. 출발하기 4일 전, 여유롭게 엠와살랏 회사가 있는 알자이바(Al Zaiba) 터미널로 갔다. 티켓을 사겠다 하니, 양복 입은 사내가 등받이 의자에 앉아 이를 쑤시고 있었다. 그제야 보았다. 한 달간 버스 스케줄이 모두 예약된 상태였다. 두 나라 사이에 무슨 난리가 난 걸까. 버스는 하루 3편이 있었고, 탑승 전날이나 당일에 티켓 구매가 가능하다고 들었는데…. 애걸복걸해봤자 정보는 정보일 뿐 실제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알칸즈리가 마지막 남은 동아줄이었다. 택시를 타고 빛의 속도로 버스가 출발하는 루위(Ruwi) 터미널로 갔다. 분위기가 딱 1980년대 사무실 세트장이다. 등짐 진 여인과 코흘리개가 문지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정녕 이곳에서 두바이로 가는 버스가 있단 말인가? 딱 두 자리만 남아 있다는 말을 듣고서야 의심을 버렸다. 오전 6시 출발이 부담스러웠지만, 오후 5시 비행기를 타려면 다른 선택이 없었다.
드디어 국경을 넘는 날이다. 푸른 새벽녘, 버스에 오르자 마자 졸음이 몰려 왔다. 한 남성에게 옆자리에 앉아도 되겠냐고 물으니,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제야 앞 좌석에 몰려 앉은 여성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슬람교의 남녀유별 습관 때문인 듯했다. 그러나 탕탕과 함께란 걸 눈치챈 ‘당황남’은 스스로 다른 남자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부부에겐 너그럽다. 감사의 고갯짓을 하는 사이 버스는 성급히 출발했다.
별 감흥 없는 창밖 풍경이 펼쳐지고, 버스 기사는 사뭇 독재자 노릇을 했다. 탑승객이 조수라도 되는 듯 뭐든 명령조다. 달리던 버스가 첫 번째로 멈췄다. “도장 받아와! 빨리!” 오만 측 출입국 심사대다. 각자 버스에서 내려 간단히 출국 도장을 받았다.
15분 여 지나 두 번째 정류장인 아랍에미리트 출입국 심사대에 도착했다. 휴대폰은 명석하게도 통신사를 바꿔 국경을 넘었음을 알렸다. 동네 슈퍼만도 못하지만 면세점도 있었다. 이제 다 된건가 싶었는데, 버스가 다시 한 번 멈췄다. 짐 검색대다. 오만과의 완전한 이별을 예고하듯 무시무시한 철창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밤 버스를 타면 모든 짐을 열어 일일이 확인한다는 경험담을 들은 바 있다.
“남자들만 짐 가지고 나와!”라는 괴성이 들렸다. 여성은 이란처럼 몸 검사까지 따로 하나 싶었다. 하염없이 기다리는데 버스가 출발했다. 되돌아온 사람 중 남편(탕탕)이 없는데?! 여성 전용 짐 검사대로 슬쩍 이동하는 줄 알았는데, 버스는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봐요, 남편이 안 탔어요!”
곧 버스에서 내려 탕탕 찾기에 나섰다. 총을 멘 보안요원이 자기가 알아볼 테니 들어가 있으란다. 맘이 편할 리 없었다. 밖에서 우물쭈물 망설이니 다시 탑승을 종용했다. 버스 안에서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짐에 이상한 물건이 있었나? 설마 수다 떨고 있는 건 아니겠지? 납치라도 당한건가? 다른 승객이 안절부절 못하는 날 위로한다. 탕탕의 약(진통제)이 문제가 된 듯했다. 처방전이 있는데 왜 시간이 지체되는 걸까.
누군가 나를 검색대로 인도했다. 탕탕은 울분을 꾹꾹 누르는 듯 보였다. 두 명의 보안 검색요원이 상황을 부드럽게 만들고자 애써 웃어 보였다. 진통제가 문제였다. 다리 수술 이후 관절염까지 온 탕탕에게 절실한 약이었다. “이 약이 불법도 아니고 처방전까지 있는데 왜 문제야?”라고 따졌다. 검색요원은 진통제가 마약 대체용으로 불법 유통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약 없이 하루도 못 견디는 장기 여행자와 나라의 안전을 지키는 검색요원이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여러 곳으로 전화가 오가고 요원들 사이에서도 옥신각신 실랑이가 벌어진 후 결론이 났다. 보유한 약의 5%만 돌려 주겠단다. 비행기 탑승 시각이 다가왔다. 더 따졌다가는 그 약조차 못 건질 분위기다. 기다리는 사람들도 신경이 쓰였다. 그때부터 서류 작성이 시작됐다. 담당자가 넷이나 바뀌며 시간을 끌었다. 신이시여, 이들을 좀 혼내주면 안되겠습니까!
버스로 돌아와 다른 승객들에게 최대한 눈을 맞춰 정중히 양해의 인사를 거듭하며 자리에 앉았다. 묻는 이들에겐 사정을 설명했다. 모두들 아무런 불평이 없었다. 얼굴조차 찡그리지 않는 성인군자들이었다. 약을 빼앗긴 탕탕도 딱하지만 다른 승객에게 염치가 없어 도착할 때까지 쪼그라져 있었다. 국경을 넘을 때마다 예상치 못한 일을 겪지만, 이번 건은 차원이 다른 충격이었다. 두바이는 화창했다. 버스에서 내리던 한 승객이 탕탕의 어깨를 두들겨주어 더욱 그랬다.
“괜찮아. 방법이 생길 거야. 좋은 여행하길!”
이후 탕탕의 요청으로 아랍에미리트 국경에서 금지하는 약품 목록을 공식 문서로 전달받았다. 특정 성분 함유량이 50mg 이상인 진통제는 통관 금지 물품이었다. 탕탕의 약은 그보다 약한 진통제였다. 문서상의 규칙은 현실에서 쉽게 무시된다. 금지 약품이 아니라도 아랍에미리트 국경을 넘는데 고초를 겪었다는 후기를 읽었다. 아랍어로 쓰이지 않은 처방전은 거들떠보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대체 압수한 그 많은 약은 어디로 가는 걸까. 익숙할 법도 한데 국경은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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