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저서 '대한민국 금기 깨기'를 출간하고 내년 3월 대선 출마 의사를 내비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고맙고, 안타깝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로 임명됐지만 소득주도성장 등 정부의 핵심정책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갈등을 벌여왔던 복잡한 심경을 드러낸 것이다.
지난 21일 서울 광화문의 사무실에서 만난 김 전 부총리는 "일면식도 없고 부족한 저를 경제정책 총괄 자리에 맡겨주고, 퇴임 날짜를 조율해주고 나중에 총리도 제의해주셨다"며 고마운 감정부터 드러냈다. 하지만 "인사나 결과적으로 효과를 못 낸 여러 정책들을 보면 대단히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다음 대통령은 성공해야 한다"는 말로 자신이 지향하는 정치철학이 현 정부·여당과 다르다는 점을 은연중에 드러냈다.
그러나 인터뷰 내내 향후 거취에 대해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그는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 "기득권을 내려놔야 한다"고 진단하면서 당분간은 여야 어느 쪽과도 손잡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또 "지금의 양당 구조로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만약 기득권을 내려놓자는 자신의 뜻에 함께하는 정당이 나타난다면 "그 세력과 힘을 합쳐 나라를 바꿀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 정부의 사정기관장을 맡다가 중도 사퇴 후 야권 대권주자로 나선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에 대해선 냉철한 평가를 내놨다. 김 전 부총리를 포함해 이들을 범야권 대선주자로 보는 이들이 많은데, 경쟁 주자들의 출마 명분과 정책 역량을 문제 삼았다.
김 전 부총리는 "어느 정부에서든 헌법기관장이나 권력기관장을 하다가 임기를 채우지 않고 나와서 정치판에 뛰어든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이어 "두 분이 하셨던 일은 과거에 대한 재단, 수사나 감사였다"며 "정치의 역할은 미래를 준비하고 사회 갈등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최근 논란이 된 윤 전 총장의 ‘주당 120시간 근로’ 발언에 대해선 "어불성설"이라며 "노동정책과 고용정책에 대전환이 일어나야 할 상황에 전혀 흐름과 맞지 않는 말"이라고 평가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대선 도전의 계기가 무엇인가.
"퇴임하고 2년 반 동안 전국을 다녔다. 전남 여수 안포마을에서 전어 잡이도 하고 간담회를 가졌는데 '전에는 나라가 국민을 걱정했는데, 이제는 국민이 나라를 걱정한다'고 한 주민의 말씀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국민이 걱정하는 나라로 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차기 대선에서 어떤 리더가 나타나야 하나.
"미래를 고민하고 준비하면서도 국민 통합으로 이끌 수 있어야 한다. 견고한 양당 구조나 진영논리에 매몰된 리더가 아니라 국민들의 저력과 잠재력을 끌어올리면서 시민들이 의사 결정을 하게끔 만드는 리더가 필요하다. 특히 앞으로 닥칠 가장 큰 문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경제 상황이다. 누구보다 잘 해결할 수 있는 통찰력과 능력을 가진 리더가 필요하다."
-대선 과정에서 여권 혹은 야권과 합칠 것인가, 아니면 제3지대를 표방할 것인가.
"지금의 정치세력 구조나 양당 구조로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제3지대라는 말도 좋아하지 않는다. 많은 국민이 정치 불신, 정치 혐오증을 겪고 있다. 정치권이 반성하고 환골탈태를 하든, 아예 새로운 세력이 됐든 국민들은 그것을 기다리고 있다. 현재 정치권에선 기득권 내려놓기, 환골탈태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정치가 기득권을 내려놓으려면 무엇부터 해야 하나.
"가장 중요한 건 진영 간 금기를 깨는 것이다. 예를 들면 보수 진영에서도 양극화 현상에 따라 복지에 대한 지출, 기회를 통한 안전망 확충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진보진영에서도 노동 유연성 문제 등 진영 내 금기를 유연하게 풀어야 한다."
-기득권 내려놓기, 환골탈태 모습에 뜻을 같이한다면 어느 쪽과도 함께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그런 세력이 있다면 힘을 합쳐 나라를 바꿔야 한다."
-범야권에서 윤 전 총장과 최 전 원장이 정권 교체를 주장하며 출마했다.
“헌법기관장이나 권력기관장을 하다가 임기를 채우지 않고 나와 정치판에 뛰어드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어느 정부에서든 마찬가지다. 이분들이 하셨던 일이 수사나 감사재판 같은 과거에 대한 재단이었다. 정치의 역할은 미래에 대해 얘기하고 사회 갈등을 해결하는 건데 그 역할에 잘 맞는지 모르겠다. 어떤 비전과 어떤 콘텐츠를 갖고 계신지도 아직 모르겠다.”
-본인의 구체적인 콘텐츠는 뭔가.
"한 마디로 금기를 깨자는 것이다. 우선 선진국을 답습하는 '추격 경제' 금기를 깨겠다. 스타트업을 늘리고 중소기업의 디지털·글로벌화하고, 남북경협 영토 확장하는 식이다. '세습 경제' 금기도 깨야 한다. 우리 사회의 부와 지위의 대물림 문제, 카르텔과 철밥통을 깨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거품 경제’ 금기 깨기인데, 부동산과 사교육 거품을 제거하자는 취지다. 이런 구상을 앞으로 자세히 제시할 것이다.”
-최저임금, 소득주도성장 등 재임 시절 정책들이 비판 소재가 되고 있다.
"최저임금은 인상해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속도와 방법에 문제가 있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속도가 빨랐고, 그러다 보니 자영업·소상공인에게 부담이 컸다. 임금이 오르니 노동 수요가 줄어 고용 악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속도 조절을 강하게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안타깝다.”
-소득주도성장은 어떻게 보나.
"인사청문회 당시부터 난 '사람 중심 투자'라는 용어를 썼다. 성장은 소득 올리는 것으로 달성되는 게 아니다. 공급과 혁신, 창조적 파괴에서 부가가치가 나와야 성장이 이뤄지는 것이다. 그런데 용어를 '소득주도성장'으로 해버리니 소득을 올리면 다 되는 것처럼 잘못 읽혔다. 또 내용과 본질에 대한 논쟁보단 정쟁으로 변질됐다. 어떻게 보면 선의를 가진 정책이 효과를 보지 못하면서 원래 추구하려던 가치가 훼손된 사례다.”
-현 정부에서 주 52시간 근무제 실시로 논란이 있었다. 최근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주120시간 근무’ 발언을 했다.
"근무시간 단축은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다. 하지만 의사 등 집중적으로 일을 해 성과를 내야 할 일부 직종들은 신축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최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나 국제통화기금(IMF) 총회의 대표적인 토론 주제가 '일과 미래'다. 노동의 형태가 과거와 다른 모습으로 전개돼야 하는 상황에서 '주 120시간' 얘기가 나온 것은 어불성설이다. 노동정책과 고용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한데, 이런 흐름에 전혀 맞지 않는 말이다.”
-재난지원금을 두고도 여야가 대립 중이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선별 지급을 주장하는 기재부에 ‘기재부 나라냐’고 비판했다.
"모든 사람에게 획일적으로 주는 게 아니라 위험에 처한 사람들에게 빠짐없이 주는 게 보편 복지의 철학이 돼야 한다. 피해를 본 국민에게 두껍고 촘촘하게 지원하는 게 맞다. 이 나라는 기재부의 나라가 아니고 정치인의 나라도 아니다. 국민의 나라일 뿐이다. 정치인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전형적인 편 가르기 행태다."
-현 정부의 초대 경제부총리로서 문 대통령에 대한 감정이 남다를 거 같다.
"한마디로 고맙고, 안타깝다. 일면식도 없었다. 부족한 내게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총수를 맡겨주셨고, 국무총리 제의도 해주셨다. 퇴임 때는 퇴임 날짜도 배려해주셨다. 당연히 고맙다. 하지만 안타까운 건 인사의 문제와 효과를 못 낸 정책들이다. 나라를 위해 어느 대통령이든 성공해야 한다. 다음 대통령은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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