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인과 일반인 사이 IQ 지닌 아동·청소년
단체활동 필요하지만 집합금지로 줄줄이 중단
학습력·사회성 퇴행 우려 "공공 교육 제공해야"
"저희 아이들은 단체활동이 중요한데 참 답답합니다."
서울에서 초등학생 두 자녀를 키우는 신모(43)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이 장기화하면서 남모르게 속을 썩고 있다. '느린 학습자'인 두 자녀가 필요한 교육을 받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느린 학습자는 지적 장애까진 아니지만 지능지수(IQ)가 평균보다 낮은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의학계에선 지능지수가 경계선상에 있다는 의미로 이들을 '경계성 지능장애'로 분류한다.
느린 학습자에 속하는 아동이나 청소년은 상황 판단 능력이 부족하고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 서툴기 때문에 사회성 교육이 중요하다. 그러나 학교 수업이 비대면으로 이뤄지고 대면 활동 기반의 교육을 받을 수 있던 시설들도 문을 닫거나 프로그램을 중단하면서 느린 학습자들은 사회적 고립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신씨는 "단체 활동을 반복적으로 해야 아이의 학습능력이나 생활력이 향상될 텐데, 외부 활동이 차단된 데다가 학교 교육은 줄곧 온라인으로 진행돼 따라가기가 버겁다"며 "이대로 방치되면 지능이 더 나빠질 수 있어 걱정된다"고 하소연했다.
22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에서 느린 학습자를 위한 교육 환경을 제공하던 시설들은 대부분 코로나19 방역 차원에서 운영을 중단했다. 신씨의 두 자녀가 다니던 서울 구로구의 복지관은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4단계로 격상된 지난 12일 이후 체육, 연극 등 예정된 단체활동을 잠정 연기했다.
느린 학습자를 위해 책을 소리 내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시끄러운 도서관' 역시 개점 휴업 상태다. 앞서 서울시는 2019년 시내 7개 도서관을 시끄러운 도서관 사업 대상으로 선정하고 느린 학습자를 위한 별도 공간과 책,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하지만 지난해 초부터 코로나19 확산으로 집합금지 조치가 반복되면서 본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재작년 12월 개관한 은평구립도서관 내 시끄러운 도서관은 지난해 2월까지만 운영됐다. 이후 '제한적 이용' 조치를 시행하고 있지만, 방문해도 자리에 앉지 못하는 등 사실상 이용이 어렵다. 평소엔 불도 꺼져 있다.
학부모들은 자구책으로 자녀들의 활동 모임을 만들기도 했지만 이 역시 집합금지 벽에 막혔다. 중학생 느린 학습자 자녀를 둔 송모(51)씨는 "지난해 8월 엄마들끼리 모여 아이들이 예체능 수업을 받거나 함께 놀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는데 10월 이후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달 집합금지가 완화되면 모임을 재개하려 준비하고 있었는데 4단계로 격상돼 다시 취소했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당국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 오미정 느린학습자시민회 이사장은 "느린 학습자들이 필요한 대면 교육을 받지 못해 일반 학생과의 학습 격차가 심화하거나 사회성이 결여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며 "공공도서관, 복지관 등 공적 기관만이라도 느린 학습자를 위한 학습의 장을 열어주는 등 대안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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