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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환 증명해야” “신체상태가 중요” 복지부-연금공단 ‘장애인정 기준’ 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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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환 증명해야” “신체상태가 중요” 복지부-연금공단 ‘장애인정 기준’ 딴소리

입력
2021.07.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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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보도 근감소증 앓는 이기형씨
장애등급 탈락에 당국 입장 서로 달라
"진작 환자 상태 확인했더라면" 분통

노모 권복순(93)씨가 어린이날인 5월 5일 서울 동작구 거처에서 근감소증을 앓고 있는 60대 아들 이기형씨를 돌보고 있다. 고영권 기자

노모 권복순(93)씨가 어린이날인 5월 5일 서울 동작구 거처에서 근감소증을 앓고 있는 60대 아들 이기형씨를 돌보고 있다. 고영권 기자

2018년부터 온몸의 근육이 바싹 마르는 '근감소증'을 진단받은 이기형(61)씨는 여전히 장애 인정을 받지 못한 채 투병 중이다.(관련기사: ["하루만…" 힘겨운 장애 가족] "나 죽으면 우리 아들 어떡해" 눈 못 감는 부모들) 장애인 복지 당국인 국민연금공단이 제시한 기준에 따라, 자신의 질병이 법에 정해진 장애 유형과 연관 있다는 점을 입증하려고 100여 차례 병원 진단을 받았지만 번번이 실패한 탓이다.

그런데 이씨 측은 최근 국민연금공단의 상급기관인 보건복지부가 공단과는 다른 기준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장애인 인정 여부는 질병 유형이 아닌 신체 상태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씨 측은 공단이 이씨의 상황을 직접 확인했다면 진작 장애인으로 등록돼 장애등급에 맞는 공적 지원을 받을 수 있었을 거라고 성토하고 있다.

3년 전 근감소증 진단을 받고 전신을 쓸 수 없는 상태로 투병 중인 이기형씨는 지난달에도 장애 등급을 받기 위해 심사를 받았지만 미해당 판정을 받았다. 이기형씨 제공

3년 전 근감소증 진단을 받고 전신을 쓸 수 없는 상태로 투병 중인 이기형씨는 지난달에도 장애 등급을 받기 위해 심사를 받았지만 미해당 판정을 받았다. 이기형씨 제공


"질환-증상 연관성 증명해야" 공단 거듭 퇴짜

25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씨는 근감소증이 법정 장애 유형과 직접 연관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장애 등록 대상에서 제외돼 왔다. 현행법은 장애로 인정하는 유형을 총 15종(지체 시각 청각 언어 지적 뇌병변 정신 자폐성 신장 심장 호흡기 간 안면 장루요루 뇌전증)으로 규정하고, 여기에 해당하면 장애등급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이씨가 지난 3년 동안 장애 등록을 위한 진단?검사를 위해 병원을 찾은 횟수는 100번을 넘지만 의사들은 매번 고개를 내저었다. 근감소증이 희귀 질환이라 발병 원인이 특정되지 않다 보니, 지체 장애와의 상관관계를 증명하기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눈꺼풀과 입술을 제외한 모든 신체를 움직일 수 없어, 모친 권복순(93)씨의 도움 없인 생활이 불가능한 이씨로서는 납득하기 힘든 판정이었다.

이씨 측은 결국 지체 장애 대신 뇌병변 장애 인정을 받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노력 끝에 최근 신경외과에서 '다발성 소뇌 위축증'이라는 진단을 새로 받았지만 곧바로 장애등급을 받기엔 역부족이었다.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뇌병변 질환 진단을 받는다고 해도 지난 증상과의 연속성이 증명돼야 하고, 6개월간의 치료 이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이씨는 건강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자택 인근 병원에 입원했다. 노모마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등을 거치며 건강이 악화돼 더는 아들을 돌보기 어려워졌다. 이들 모자 입장에선 속히 이씨가 장애 인정을 받아 활동 도우미 인력을 지원받는 게 절실한 상황이다.

서울 송파구 국민연금관리공단.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송파구 국민연금관리공단. 한국일보 자료사진


복지부는 "질환은 장애등급과 무관"

그런데 복지부는 이씨 측의 문의에 공단과는 다른 설명을 내놨다.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복지부 장애인정책과에 장애등급 산정 기준을 묻자 "장애등급은 질병이 무엇이냐와는 상관없이 근육 위축, 관절 강직 등 신체 상태로 판단하는 것"이라고 답한 것이다. 이 부서 관계자는 본보에도 "이씨가 계속 장애등급을 못 받은 건 질환 종류 때문이 아니라 장애로 인정할 정도의 신체 상태가 아니어서인 걸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씨 측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투병을 시작한 이래 3년 내내 법정 장애 유형과 관련된 질환을 인정받고자 고군분투해왔는데, 만약 공단 등에서 일찍 이씨의 상태를 직접 확인했더라면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에서다. 이씨 측은 "관계자가 한번이라도 나와서 상태를 살펴보고 '질환 자체는 장애등급과 상관없다' '신체 상태가 심각하니 장애등급을 받을 수 있다'고 알려줬다면 여러 해를 헛되게 보내지 않았을 일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복지부와 공단은 이씨 측 항의에 "신체 상태에 따라 장애등급을 판정한다는 기준엔 이견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들 기관은 "이씨 모자와 협의해 다음 달 이씨에 대한 재심사를 진행할 예정이고, 필요하면 조만간 이씨의 장애등급 판정을 위한 심사위원회 개최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장애 복지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장애등급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관련 부처와 기관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내에서는 주로 의학적 차원에서만 장애 판단 기준을 세우는데, 앞으로는 생활이 가능한지 등을 실질적으로 따져 장애 기준을 확대하고 관련 기관들이 긴밀히 이를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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