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정식 종목 채택 후 12개국에 첫 메달 선물
도쿄서도 우즈벡·튀니지·대만·태국 등 시상대 올라
"놀라운 다양성 지닌 종목… 스포츠 약소국의 희망"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난민촌 한 구석에서도, 흙먼지 자욱한 아프리카 빈민촌 뒷골목에서도, 올림픽 메달의 꿈이 영글고 있다. 회오리 같은 돌려차기 한 방과 호쾌한 주먹 지르기로 현실의 벽을 격파한 주인공들은 2020 도쿄올림픽에서도 쏟아져 나왔다. 최소한 태권도에서만큼은 메달은 국력순이 아니다.
우즈베키스탄과 튀니지, 세르비아, 이스라엘, 태국, 대만, 터키. 24, 25일 태권도 경기 시상대에 올라간 나라들이다. 미국 중국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등 스포츠 강국을 제외하고도 이렇게나 다양한 국가에 메달이 고르게 돌아갔다. “매일 새로운 나라가 메달을 딴다”는 얘기까지 들려온다. 아직 금메달을 못 딴 ‘종주국’ 한국의 부진은 역으로 생각하면 태권도가 전 세계인의 스포츠가 됐다는 방증이다.
특히 중동과 아프리카,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에도 태권도는 올림픽 메달을 안겨주는 ‘희망’으로 자리매김했다. 25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태권도는 올림픽에서 가장 관대한 종목”이라며 “그동안 메달을 따지 못했던 스포츠 약소국에게 시상대로 향하는 길을 열어줬다”고 평가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태권도에서 첫 올림픽 메달을 수확한 나라는 최소 12곳이다. 요르단과 코트디부아르는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대만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각각 사상 첫 금메달을 태권도로 따냈다. 니제르· 베트남·가봉의 첫 번째 은메달도, 아프가니스탄의 유일한 올림픽 메달인 동메달도 모두 태권도에서 나왔다. 파급효과도 엄청나다. 요르단에선 금메달을 딴 이후 3개월간 태권도복이 5만 벌이나 팔렸다.
올해도 의미 있는 기록이 여럿 탄생했다. 24일 여자 49㎏에서 우승한 파니파크 옹파타나키트는 태국 선수론 처음으로 태권도 금메달을 거머쥐었고, 25일 남자 68㎏급 16강에서 한국의 이대훈을 꺾은 파란의 주인공 울루그벡 라시토프도 고국 우즈벡에 첫 번째 태권도 금메달을 선물했다. 이란에서 독일로 망명한 뒤 난민 신분으로 출전해 화제가 된 키미아 알리자데도 태권도 선수다. 알리자데는 리우에서 여자 57㎏급 동메달을 차지한, 이란 최초의 여성 메달리스트였다.
태권도엔 체급별로 남녀 각각 4개씩, 총 8개 금메달이 걸려 있다. 도쿄올림픽 태권도 경기 출전 국가는 무려 61곳에 이른다. 난민팀 선수도 3명 참가했다. NYT는 “올림픽 무대에 오른 지 5회밖에 안 된 종목임에도 놀라운 다양성을 지녔다”고 짚었다. 개막식 기수 중 태권도 선수는 10명 이상인데, “약소국에 태권도가 얼마나 중요한 스포츠인지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라는 평이다.
태권도가 세계 곳곳에 뿌리내린 이유로는 값비싼 장비나 경기장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 꼽힌다. 이사카 이데 니제르 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은 “가난한 나라에 태권도는 최고의 스포츠”라며 “장비 없이도 훈련하기가 쉬워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난민촌에서도 태권도 꿈나무들이 구슬땀을 흘린다. 세계태권도연맹은 2015년부터 요르단, 터키, 르완다, 지부티 난민촌에 태권도를 보급했다.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 총재는 “태권도는 격투 스포츠지만 올림픽에 평화롭게 기여하고 싶다”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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