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게양하던 모습 가장 인상적"
편집자주
2021년에 열리는 '2020 도쿄올림픽' 현장에 파견되는 취재기자가 재난 상황에서 겪는 생생한 취재기를 전달합니다.
복잡한 입국 절차, 선수들의 식단, 심지어 선수촌 골판지 침대까지 화제가 됐던 도쿄올림픽이 여느 올림픽과 다른 점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자위대다. 올림픽 현장에서 군복을 입은 자위대는 자원봉사자만큼이나 쉽게 눈에 보인다.
일본에 여러 차례 와 봤지만 자위대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성화 봉송로 독도 표기 문제와 욱일기 논란으로 한일 갈등이 극에 달하던 시점이어서인지 한국인으로서 자위대의 존재는 어딘가 불편한 면이 있었다. 평화의 축제 올림픽에서 자위대라니.
입국 수속까진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3박 4일 자가격리를 마치고 도착한 올림픽 미디어프레스센터(MPC)나 모든 경기장에도 자위대가 있었다. 그들은 올림픽 관계자 및 기자들의 신분과 물품 검사를 담당했다. 순찰도 돌았다.
제법 친철했다. “오, 코리안”하며 반가워하는 이도 있었다. 가방을 검사한다거나, 물병을 꺼내 (정말 물인지) 한번 마셔보라고 요구할 때는 연신 “스미마셍”(실례합니다)을 외치며 고개를 숙였다. 대부분 20대 초반인 듯 앳된 얼굴이었다. 얼마나 햇볕에 서 있었는지 마스크를 쓴 입가만 빼고 모두 검게 그을렸다. 쉬는 시간인지 MPC 기념품 가게에 가기 위해 오랫동안 줄 서 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뒤늦게 알게 된 것이지만 자위대의 올림픽 투입은 일본 내에서도 화제였다고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만들어낸 도쿄올림픽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애초에 모집됐던 올림픽 자원봉사자들이 코로나19 확산 등 불안으로 활동 의사를 철회했다. 정부의 강행에 대한 반 정부, 반 올림픽 정서도 한몫했다. 그들이 지급받았던 옷은 야후옥션 등에 기념품 매물로 나왔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올림픽 사상 유례없는 인력난에 허덕였고, 결국 자위대에 지원을 요청했다는 게 일본 현지 언론의 보도 내용이다. 급하게 투입되다 보니 별도의 유니폼도 없이 군복을 입고 행사장을 돌아다니게 됐다. 우리 군대로 치면 농번기 지원 같은 가욋일을 하게 된 셈이다.
자위대는 물품 검사나 순찰 외에도 올림픽에서 여러 활동을 했다. 일본 방위성 자위대 누리집에 따르면 자위대는 경기장 차량 검사를 비롯해 △양궁·사격·근대5종 등 경기 운영 △사격장·요트 경기장의 의료 지원 △사이클 도로 정비 및 구급차 지원 업무를 하고 있다.
그중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모습은 자위대가 우리의 국기를 게양하던 장면이다. 노을이 지려고 하는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흰색 제복을 입은 해상, 검은 제복을 입은 육상, 남색 제복을 입은 항공 자위대가 함께 예의를 갖춰 태극기를 올렸다. 일본에서 자위대가 올리는 태극기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욱일기는 아직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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