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열 자연 다큐멘터리 감독 인터뷰
"마지막 지상낙원 세렝게티. 그런데 이 소중한 땅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건기에는 폭우가 내립니다. 우기에는 비 대신 폭염이 찾아옵니다. (2019년 다큐멘터리 영화 '세렝게티' 중)"
20년 넘게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초원, 세렝게티를 누빈 이종열(53) 자연 다큐멘터리 감독의 카메라는 기후변화의 징후를 예민하게 포착한다. 그는 1996년 아프리카에 처음 간 이후 세렝게티에서만 1,200일을 보낸 베테랑 감독. 요즘의 세렝게티는 날씨도, 야생 동물도, 그가 알던 세렝게티와 다르다. 그는 "기후가 바뀌면서 어미로부터, 어미의 어미로부터 내려온 초원 생명의 생존 규칙이 깨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는 북극곰의 생존만 위협하는 게 아니다. 연구자들이 가장 많이 우려하는 동물은 치타와 코끼리. 치타는 표범이나 사자처럼 발톱이 강하지 않아 나무에 잘 오를 수 없다. 이 감독은 "치타는 나무 그늘로 피하지 못해 내리쬐는 햇빛에 그대로 노출된다"며 "그런데 최근에는 폭염을 피해 비스듬히 자란 나무에 올라가거나 (올라가려고) 나무 기둥을 긁는 등 안 하던 행동을 자꾸 한다"고 말했다. 치타는 전 세계 7,100마리만 남은 멸종위기종이다.
갈수록 초원이 건조해지면서, 코끼리가 '진흙 목욕'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사라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코끼리는 진흙 목욕으로 체온을 조절해, 적당한 진흙은 생존에 필수적이다.
기후변화는 온난화만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변동성도 심해지고 있다. 이 감독은 "건기면 사흘 동안 비가 안 와야 하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거나 반대로 우기는 거의 매일 비가 와야 하는데 일주일 동안 비가 안 오는 식"이라며 "시기에 맞게, 지역에 따라, 비가 내리는 게 아니라 뒤죽박죽이 됐다"고 설명했다.
물과 풀을 쫓아 이동하는 초원의 생명은 덩달아 갈피를 못잡고 우왕좌왕한다. 누가 대표적이다. "북쪽 강 건너(케냐)에 있던 100만 마리 누떼가 풀을 찾아 한 방향(세렝게티 쪽)으로 1,600㎞ 이동하는 게 수백만 년 동안 지켜 온 규칙이었어요. 그런데 얘네가 풀을 다 먹고 지나간 자리에 갑자기 국지성 호우가 오면 풀이 다시 자라요. 그러면 전진하던 애들이 풀이 있는 곳으로 방향을 틀면서 수백만 마리 누떼가 수 만 마리씩 뿔뿔이 흩어지는 거죠."
생태계는 얽혀 있다. 누떼 이동 경로의 변화는 사자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제는 누떼가 오는 길목에서 먹이를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다. 이 감독은 "누가 적어지면서 지름 40㎞ 영역 안에서 잘 벗어나지 않던 '프라이드(사자의 무리)'도 먹이를 찾아 이동량이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다"며 "그러면서 몸집이 더 커 걷기 어려운 수사자나 약한 아기 사자들이 무리에서 자주 낙오되고 있다"고 했다. 아기 사자의 경우 무리에서 낙오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그가 2년 반 동안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화 '세렝게티'에는 한 사자 무리가 예년보다 훨씬 부족해진 먹이를 찾아 1년간 240㎞를 이동하는 모습이 담겼다. 갓 사냥한 신선한 고기만 먹는다는 사자의 본성을 버리고 굶다 지쳐 먹다 버린 고기를 먹는 모습도 포착됐다. 이 감독은 "이러다가는 2050년이 되면 야생 사자가 사라질 수 있다는 걱정이 든다"며 "세렝게티가 더 달라지기 전에, 우리가 보는 사자와 치타가 마지막 사자, 마지막 치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기후변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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