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우리 사회의 출생아 수 감소와 고령자 수 증가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빠릅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인구쇼크’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미래가 예상되고 대응 전략은 무엇인지, 경제학자이자 인구 전문가의 눈으로 살펴보려 합니다. 전영수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가 <한국일보> 에 3주 단위로 토요일 연재합니다. 한국일보>
<23> 거세지는 혁신기술 ‘로봇이 인구문제 해결할까’
인구는 생산·소비의 핵심주체다. 때문에 인구감소는 국부훼손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인구감소(출생자-사망자=자연감소)가 시작된 한국은 꽤 불리해진다. 이때 유력한 대안이 기술혁신이다. 혁신모델로 총요소생산성을 높이는 식이다. 출산폭락·인구변화에 맞서 로봇활용에 주목받는 이유다.
편의상 로봇이라 쓰나 혁신기술 모두가 해당된다. 실제 로봇화는 단기간에 포진·확장돼 생산·소비의 신풍경을 연출한다. 노동투입이 전제된 제조공장이 무인화로 돌아서고, 매장주문조차 키오스크가 받는다.
손길체온이 로봇회로로 대체된 셈이다. 신격차도 ‘자본 vs. 기술’의 경합논리로 압축된다. 예전엔 돈이 돈을 벌었다면 이제는 기술이 혁신을 만나 대박을 친다. 때문에 로봇을 바라보는 세평은 이율배반적이다. 인간의 힘든 일을 맡는 노동대체면 좋으나, 일자리를 뺏으면 나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로봇은 대세다. 온도 차이는 있으나, 생활을 뒤바꿀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한국처럼 인구변화가 급격한 곳에서 로봇활용은 그만큼 중요한 화두일 수밖에 없다.
인구문제 풀어줄 대안적 혁신기술로서 로봇
존재감도 잠재력도 완비한 로봇활용의 기대는 높다. 인구감소발 일손부족에도 실체적으로 대응한다. 장점은 많다. 사람보다 정확하고 생산성이 높다. 24시간 전기만으로 일하니 논쟁적인 노사대결도 없다.
산업재해·복리비용도 이론적으로는 제로다. 회사입장에선 로봇확대를 반길 수밖에 없다. 반면 사람은 자유롭고 편해진다. 최소한 3D업종을 맡기는 것만으로 과도한 노동 부하에서 벗어난다.
시간·공간뿐 아니라 선택의 자유까지 안겨준다. 일하는 로봇과 즐기는 인간의 아름다운 공생이다. 제이슨 솅커는 이를 ‘로보토피아’로 칭했다. 정반대의 재앙적인 ‘로보칼립스’와 비교하며 축복스런 로봇형 유토피아를 일컫는다. 주목되는 건 로봇발 확장적인 영향력이다. 혁신기술의 첨단영역을 넘어 실체적 파급력은 전체산업 모두에 걸친다. 전에 없던 독자영역의 새로운 산업출현도 얼마든 기대된다.
로봇은 일하고 인간은 즐기는 로보토피아는 실현될까. 그러자면 로봇발 실업 우려의 허들을 넘는 게 먼저다. 로봇이 사람의 일을 뺏어간다는 논제는 장기간 회자됐다.
의견은 엇갈린다. 지지파는 거센 기계화의 물결에도 불구, 일자리가 계속 늘었다는 경험증거를 댄다. 2020년 발표된 보고서(‘미래의 일’)는 로봇·AI 덕분에 향후 20년간 더 많은 일자리가 생겨날 것으로 봤다.
2018년 일자리 중 63%는 1940년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덧붙인다(MIT). ‘로봇투입→생산향상→소비증가→신규욕구→추가고용’의 구조다. 창조적이거나 협업·대면직종이 그렇다. 사라진 일보다 새로운 일에 힘입어 총합은 플러스란 얘기다. 직업종류(1만6,891개) 중 2012년 이후 생겨난 게 5,200개란 분석도 있다(한국고용정보원). 취업통계를 봐도 취업자가 전년 대비 감소한 때는 일시적인 돌발사건일 때뿐이다. 외환위기·카드대란·금융위기 등의 발생 이후 일자리는 줄었다. 평상시면 일자리 총량은 계속해 늘었다는 의미다. 기술에 따른 노동대체보다 생산량의 증가속도가 빨라 필요노동은 반복해 증가했다. 산업혁명 이후 기술혁신 과정에서도 고용은 늘 늘었다.
로봇화가 불편한 인구집단도 상존
로보토피아처럼 아름다운 낙관론만 통용되지는 않는다. 고용급감의 우울한 미래를 경고한 학자도 많다. 더 많은 로봇이 더 많은 사람을 일하도록 해도 수혜에서 빠질 소외그룹은 많다. 극명하게 갈라질 로봇발 고용온도의 격차문제다. 2016년 세계경제포럼은 2020년까지 4차 산업혁명으로 71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210만 개가 새로 창출된다고 전망했다.
체감인식도 비슷하다. 2021년 설문조사를 보면 2030세대의 83%는 기술혁신으로 일자리가 줄거나 없어질 걸로 봤다(전경련). 또 미국경제는 로봇 1대 추가 때마다 고용이 5.6명 줄어든다. 로봇 1대는 1,000명의 인간임금을 0.25~0.5% 떨어뜨린다(『일자리혁명 2030』). ‘로봇도입→비용절감→저가공급→매출증대→추가고용→생활향상’의 선순환은 아마존 등 일부기업의 한정이슈다. 일본은 2035년 노동인구의 49%를 로봇·AI가 대체할 전망이다. 2,500만 명의 일자리 실종이다. 일본직업 601종 중 235종이 대체후보다(노무라종합연구소). 기술개발에 따른 고용감소는 실체적이다. 고용계수(10억 부가가치 산출 시 필요노동자 수)를 보면 제조업은 1995년 9.77에서 2017년 1.88로 급감했다. 70~80%대의 고용을 맡는 서비스업도 18.63에서 6.68로 떨어졌다. 로봇발 고용 없는 성장이다. ‘로봇 vs. 인간’의 일자리 쟁탈이 기우(杞憂)가 아니란 뜻이다.
정리하면 로봇발 노동대체는 확실히 존재한다. 단 양상은 차별적이다. 로봇이 대신할 일자리는 단순노동의 경합직무에 제한된다. 혹은 애초부터 사람이 하기 힘든 부적절·불가능한 일에 투입된다. 업계도 로봇과 사람의 일은 구분해서 본다. 그럼에도 로봇대체는 확대될 수밖에 없다. 동시에 일을 뺏겨도 그만큼 혹은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긴다는 분석은 현 단계에선 설득적이다.
단 마찰적 실업발생은 불가피하다. 하단직종 종사자가 갑작스런 전환배치로 중간·상단직종으로 넘어갈 수는 없어 충격을 줄여낼 사다리가 요구된다. 또 감정노동이 인공지능으로 실현될지도 미지수다. 로봇이 인간을 흉내 내도 인간적일 수는 없다. 사용자로선 어색함·불쾌감이 자연스럽다. 인간과 닮은 로봇을 사람이 불편하게 느끼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를 기술혁신이 넘어서자면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로봇과 인간이 각자 잘하는 일을 분담하는 협업구도가 현실적이다. 어차피 소통·설득이 필요하며 비정형적·포괄적·유연적인 창의성은 인간 특유의 장점일 수밖에 없다. 이 수준에 닿는 로봇개발은 생각보다 쉽잖다. 결국 ‘대체 vs. 보완 vs. 협업’의 삼각모델이 예상된다. 일자리별로 뺏기는 쪽(대체), 도움받는 쪽(보완), 나눠하는 쪽(협업)이 엇갈린다는 얘기다. 즉 로봇발 일자리 변화·품질의 격차확대는 계속해 커질 수밖에 없다.
로봇이 펼쳐낼 달라진 인구미래의 고려사항
한국은 인구 대비 로봇수가 세계 1위다. 제조업직원 1만 명당 로봇수를 뜻하는 로봇밀집도로 한국(531)은 세계평균(69)을 압도한다(산업용로봇). 로봇대국인 일본(305)보다 높다(한국은행).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우려에도 불구, 현장에선 로봇 역할이 상당하다.
부지불식간 삶 속에 녹여든 첨단기술의 면면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대세란 얘기다. 향후 단순노동을 넘어 지식노동의 로봇대체도 확대될 여지는 충분하다. 경영계로선 고임금일수록 비용절감을 위한 대체의지가 높아 로봇도입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급격한 인구변화를 로봇활용으로 풀어내자는 기대감도 높아진다. 인구력을 가름하는 생산가능인구·경제활동인구의 악화된 통계수치를 벌충해줄 수 있다. 그만큼 로봇으로 통칭되는 기술혁신은 총요소생산성의 향상을 통해 한국 사회의 지속 가능성과 접하는 중요변수다.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 대체는 노동이지 직업은 아니라는 평가(국제로봇연맹)처럼 로봇은 일을 덜어주지 도맡기는 어렵다. 시간도 꽤 걸린다. 로봇이 사람보다 싸져야 채산성이 있는데 그러자면 수십년은 필요하다. 로봇이 아니라도 일은 늘 변한다. 사라지는 일만큼 생겨나는 일도 많다. 시대변화별로 최적화된 일로 재배분되는 것뿐이다. 로봇을 수단으로 보고 장점에 올라타 행복을 높이는 식으로 활용하는 게 관건이다. 중요한 건 ‘인구감소→노동부족→로봇활용→행복증진’을 위한 연결고리의 실현이다.
로봇활용으로 인구문제를 풀자면 정치한 사전작업이 필수다. 기존제도와의 정합성을 점검·수정하는 작업이 선행될 때 빛을 발한다. 로보토피아적인 사회보장은 이상향으로 현행대로면 유지되기 어렵다. 복지혜택을 받을 사람은 늘어나는데 보험료 등 재원을 갹출할 노동그룹이 줄면 당연하다. 로봇 확산에 맞물린 복지시스템의 개혁이 선결과제다. 로봇에 세금을 매겨 복지를 맡긴다는 로봇세는 이때 제안된다.
다만 복지구조·인구유지에 유리할지는 미지수다. 선진국의 인구병(출산감소)처럼 고복지가 인간성을 훼손할 수 있다. 로봇세가 있어도 소득세가 줄면 재정확충에 별무효과다. 상충되면 효과는 적다. 사다리를 못 오를 경우 고용감소를 막아낼 인간쿼터제도 그렇다. 마찰적 실업은 줄어도 고용품질·자활의지를 보장하기 어렵다. 로봇이 ‘자본→기술’로 부의 무게중심을 바꾼다는 점에서 소득재분배도 검토대상이다. 로봇자산을 보유·운용하는 쪽과 아닌 쪽의 자본소득 쏠림은 당연지사다. 건강한 사회 유지를 위한 가치중립적인 조세정책이 당면과제인 이유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