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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건물 벽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인 김건희씨를 조롱하는 벽화가 등장했다. 김씨 루머를 소재로 ‘쥴리의 남자들’이란 글귀가 새겨져 ‘쥴리 벽화’로 불린다. 야권은 “저질 비방과 인격살인”이라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 대선 후보 가족에 대한 검증이 불가피한 면이 있지만 탈?불법 행위와 무관한 사생활을 검증 영역이라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윤 전 총장 처가 의혹을 제기해온 친여 유튜브 매체들은 갈수록 김건희씨의 과거 남자 캐기에 혈안이다. 한 매체가 90대 노인 인터뷰로 '김씨 동거설'까지 제기하자 윤 전 총장 측이 법적 대응에 나섰다. 여성 사생활 캐기는 도덕성이 아니라 여성 혐오 정서와 맞닿기 십상이다. 정의당은 ‘쥴리 벽화’를 여성 혐오로 규정했고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여성 혐오가 혐오스럽다”고 개탄했다.
□ 여성 혐오 논란은 뜬금없이 체육계에서도 불거졌다. 도쿄올림픽 양궁에서 2관왕에 오른 안산 선수를 ‘페미’라고 비난하는 글들이 양궁협회 홈페이지에 쏟아졌다. 쇼트컷에다 ‘웅앵웅’ ‘오조오억’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는 이유다. 이는 20대 남성들이 남성혐오 표현이라고 주장하는 단어들이다. 이런 안 선수에 대한 비난을 여성 혐오로 규정하며 “안 선수를 지키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 두 사건 모두 여성 혐오 논란을 빚는데, 공교롭게 정치적 진영은 다르다. '쥴리 사생활'을 캐려는 쪽은 주로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인 데 반해 안 선수를 공격하는 20대 남성들은 국민의힘 지지세가 강하다. 진영은 다르지만 이들에겐 공통된 정서가 깔려 있다. 당한 대로 되돌려주겠다는 앙갚음이다. ‘쥴리 캐기’엔 윤 전 총장의 조국 전 장관 일가 수사에 대한 복수심이 반영돼 있고 ‘안산 공격’은 극단적 페미니스트단체인 '메갈'의 남성 혐오에 대한 반동적 성격이 강하다. 상대방의 공격을 거울 비추듯 따라하는 미러링이란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들이 모르는 게 있다. 거울이 비추는 것은 타인의 행동이 아니라, 증오로 가득한 그 자신의 추악한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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