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을 보다 보니 ‘이녁을 볼 낯이 없소’란 말이 나온다. 이녁이란 시나 노랫말의 ‘그대’와 비슷하다. 눈앞에 있는 사람을 왜 이름으로 못 부르는가? 한국말은 자신보다 지위가 높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 또는 존중의 대상인 이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하는 언어이다. 그리하여 한국말에는 이름을 대신하여 부를 다양한 방법이 있다.
이름을 먼저 부르는 유럽 문화권과 달리, 동아시아권에서는 직함이 곧 그 사람에 대한 높임말이 되기도 한다. 직함이란 직급이나 벼슬의 이름, 또는 조직에서 개인이 맡은 직책에 대한 호칭이다. 직장에서는 ‘이름’ 뒤에 ‘직함’을 붙여 말한다. 윗사람에게는 ‘홍길동 과장님’, 아랫사람에게는 ‘홍 과장’과 같이 부르고, 직책이나 직급명이 없는 사람에게는 ‘홍길동씨’처럼 성과 이름에 ‘씨’를 붙인다. 그런데 집 밖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을 ‘힘’이나 ‘친분’ 등 원칙 하나로 정리해서 부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 과장님’과 ‘김 과장’의 예시처럼, 나와 친한 과장과 친하지 않은 과장을 달리 부르고,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서 안 친한 사람에게 일부러 친한 관계로 말할 때도 있다.
관계 중심적인 한국말에서 ‘나를 남 앞에서 소개하는 것’도 참 어렵다. 심지어 자기소개를 하면서 머뭇머뭇 얼버무리듯 인사를 하는 사람도 많다. 그렇지만 아무리 멋쩍은 순간이더라도, 자신을 스스로 높이는 인사를 하는 것은 곤란하다. 가장 흔한 실수가, “안녕하십니까? 저는 홍길동 교수입니다.” “홍길동 과장입니다”와 같이 이름 뒤에 자신의 직함을 붙이는 것이다. 그간 남들이 불러준 호칭을 들어오며 그 호칭에 익숙해진 탓이다.
그러면 남들 앞에서 자신을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 우선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회사 영업팀장 홍길동입니다.” “한국대학교 교수 홍길동입니다”처럼 이름 앞에 직함을 붙여 말하면 무난하다. 그리고 자기 신분을 자랑하는 것이거나 오만한 자세로 보일 수 있으므로 소속과 이름만으로 말하기도 한다. 오히려 직함 없이 ‘모모회사 아무개입니다’라 한 사람이 알고 보니 정작 그 회사 사장이더라는 경험담도 있다. 우리는 자신에 대한 겸손과 남에 대한 존중이 중요한 ‘관계 중심 사회’에서 살고 있다. ‘남이 나를 부르는 방식’은 나를 존중해 주는 표현이지 내가 써도 되는 방식은 아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쓰는 말일지라도 그것이 맞는지, 왜 맞는지 등을 한 번 돌아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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