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독일 노르트 스트림2 사업
메르켈 총리, 美제재 불구 성사 뚝심
남북통신선 복원... 철도 연결 타이밍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한국일보>
“독일은 러시아의 손아귀에 완전히 놀아나고 있다.”
발트해를 통해 러시아와 독일을 직접 연결하는 천연가스 송유관 노르트 스트림2 사업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독설이다. 트럼프는 성에 차지 않은 듯 “독일은 러시아의 포로나 다름없는 신세”라며 조롱했다. 하지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게르만 철의 여인’ 이라는 언론의 헌사는 오히려 부족한 감이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로 정권이 교체됐지만 노르트 스트림2 사업 무산을 위한 미국의 제재카드는 전혀 녹슬지 않았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올해 1월, 바이든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자마자 “이 공사를 중단시킬 수 있다면 어떤 일이든 하겠다”고 각을 세웠다.
러시아 우스트루가에서 독일 그라이프스발트까지 총 연장 1,230km에 달하는 노르트 스트림2 사업은 2015년 착공됐지만 미국의 훼방으로 개통이 불투명한 상태였다. 오바마, 트럼프는 물론이고, 바이든 행정부까지 동맹국 독일에 노골적으로 공사 중단을 압박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가 독일을 교두보 삼아 유럽시장을 장악하면 셰일가스 혁명으로 남아 도는 자국의 LNG(액화천연가스) 수출길이 막힌다는 이유에서다. 겉으로야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로 유럽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둘러댔지만 미국의 속내는 이미 들통이 난 터다.
기세등등하던 미국이 꼬리를 내렸다. 메르켈의 퇴임을 불과 한 달여 앞둔 지난 22일, 미국과 독일이 노르트 스트림2 사업 완공에 합의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메르켈이 미 대통령 3명을 상대로 거둔 완벽한 한판승이라고 표현해도 전혀 지나침이 없다. 슈퍼 파워 미국을 주저앉힌 메르켈의 승리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적당한 타협이 아니라 원칙 앞에 흔들리지 않는 뚝심을 꼽을 수 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 참사를 지켜본 메르켈은 2022년까지 자국 내 원전을 모두 폐기하겠다고 공언해왔다. 대체에너지는 천연가스가 유일했다. 탈원전 대원칙 앞에 미국이 튀기는 주판알은 처음부터 메르켈의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사실 메르켈의 뚝심은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지 않는 데서 진가를 발휘했다. 2015년 시리아 내전으로 오갈 데 없는 100만 명이 넘는 난민들을 받아들인 것이 대표적이다. 한마디로 미국은 상대를 잘못 본 것이다.
불통, 자해행위로 곪아가던 남북한이 다시 손을 맞잡았다. 서해와 동해의 남북 통신선 전원에 불이 켜졌다. 북한이 지난해 6월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빌미로 일방적으로 통신선을 끊은 지 400여 일 만이다. 통신선 복원 날짜를 지난 27일로 정한 것은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 68주년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모든 것을 ‘쇼’로 일축하는 보수 야당의 갑론을박은 논외로 하더라도 미국 측 반응도 나쁘지 않다. 청와대는 남북관계 회복을 위해 양 정상이 10여 차례 친서를 교환했다고 후일담도 전했다. 고위급회담에 이어 남북정상회담, 나아가 북미정상회담 가능성까지 흘러나오고 있지만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만남은 화려한 말잔치에 그칠 뿐이다.
임기를 8개월 남겨 둔 문재인 대통령이 할 일은 남북관계 진전이 아니라 복원이다. 복원의 첫걸음은 상대와의 합의를 실천하는 행동이다. 대북전단 살포 금지도 그런 차원이다. 남북한은 2018년 4ㆍ27 판문점 선언에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해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좌고우면하지 않는 지도자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면 바로 지금이 아닐까. 문 대통령의 승부수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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