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 여제’ 김연경(33)은 1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2020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대표팀 캐리커처와 사진을 게시하면서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였다”고 적었다. 2020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학폭 논란이 불거져 빠진 쌍둥이 자매 이재영과 이다영(25)의 빈 자리가 컸음에도, 전날 일본을 꺾고 8강 진출을 확정한 후 쓴 글이다. 전력 공백에도, 우리나라보다 한 수 위로 평가된 일본을, 그것도 상대 홈 그라운드인 도쿄에서 마지막 드라마 같은 역전극을 펼치며 당당히 일군 성과라 더 값졌다.
더위를 날린 짜릿한 드라마였다. 스테파노 라바리니(42) 감독이 이끄는 세계랭킹 14위 한국 여자 배구대표팀은 전날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조별리그 A조 4차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2(25-19 19-25 25-22 15-25 16-14)로 승리했다. 대표팀은 이로써 예선 전적 3승 1패를 기록, 2일 예정된 세르비아와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A조 상위 4개 팀에 주어지는 8강 진출권을 얻게 됐다.
세트스코어 2-2로 맞선 5세트가 백미였다. 9-9까지 치열한 일진일퇴 공방이 이어졌지만 이후 일본의 왼쪽 공격을 막지 못하면서 12-14까지 밀렸다. 패색이 짙던 상황, 클러치 능력이 뛰어난 박정아(28)의 원맨 쇼가 시작됐다. 박정아의 오픈 공격으로 13-14로 숨을 돌린 한국은, 유효 블로킹으로 찾아온 공격 기회를 박정아가 다시 한번 성공시키며 승부를 듀스로 끌고 갔다. 이 과정에서 선수 교체에 실수가 생기면서 세터 염혜선(30)과 안혜진(23)이 한번에 코트에 서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결국 승부를 원점으로 끌고 갔다.
일본 왼쪽 공격수의 공격 실책으로 15-14로 역전에 성공한 한국은, 유효블로킹으로 얻어낸 공격 기회를 다시 박정아가 상대 블로킹을 보고 옆으로 밀어 내면서 16-14로 극적인 승리를 따냈다. 선수들은 우승한 것처럼 기뻐했다. 어깨동무를 하고 큰 원을 그려 코트 위를 수놓았고, 무릎 꿇고 기도하던 라바리니 감독도 선수들 사이로 뛰어들어 함께 어깨동무를 하며 기쁨을 만끽했다. 경기 후 박정아는 “감독님이 코트 세리머니에 들어오신 건 처음”이라고 했다.
이날 주인공이 된 박정아는 2016 리우올림픽 때의 상처를 말끔히 씻어냈다. 당시 주전 레프트였던 박정아는 상대의 타깃이 돼 ‘서프 폭탄’ 속에 리시브 난조를 겪으며 한국의 8강 탈락 빌미가 됐단 비판을 받았지만, 이번엔 한일전에서의 맹활약으로 명승부를 이끌었다. 그는 “한일전은 더 특별하고 긴장된다”며 “도쿄에서,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일본을 이겨 더 좋다”고 했다.
고비 때마다 선수들을 불러 모아 집중력을 불어넣은 김연경은 이날 팀 내 최다인 30점을 쏟아내며 대역전승을 진두지휘했다. 이날 승부를 통해 의미 있는 기록도 썼다. 국제배구연맹(FIVB)은 이날 “역대 올림픽에서 30점 이상 경기를 4차례나 한 선수는 김연경이 처음”이라고 소개했다. 김연경은 “(선수들이) 다들 간절한 것 같다”며 “왜 간절한지는 모르겠는데, 한일전은 많은 국민의 큰 관심을 받기 때문에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것을 선수들이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2일 세르비아와의 예선 마지막 경기를 앞둔 상황에서 A조 3위 이상의 성적을 확보한 한국은 이제 8강 이후를 내다본다. A조에서는 세계랭킹 브라질(2위)이 4승(승점 11)과 세계랭킹 10위 세르비아가 3승 1패(승점 9)를 기록해 1, 2위가 매우 유력하다. A조 최종 순위와 B조 결과에 따라 상대가 갈리는데, 현재까지 B조에선 이탈리아(6위), ROC(러시아올림픽위원회·9위), 미국(1위)까지 8강에 진출할 4팀이 정해졌다. 이들 간 순위 경쟁에 따라 한국의 8강 상대가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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