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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던 메달 색이 아니라고요?!

입력
2021.08.01 11:35
수정
2021.08.0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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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정신 되새기는 '독수리 에디'

편집자주

주말 짬 내서 영화 한 편 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이왕이면 세상사를 좀 더 넓은 눈으로 보게 해주거나 사회 흐름을 콕 집어주는 영화 말이에요. ‘라제기의 영화로운’은 의미 있는 영화 관람을 원하시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을 드리려고 합니다.

영국 스키 선수 에디는 올림픽 출전을 위해 스키 점프로 종목을 전환하나 난관이 한둘이 아닙니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피아 제공

영국 스키 선수 에디는 올림픽 출전을 위해 스키 점프로 종목을 전환하나 난관이 한둘이 아닙니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피아 제공


“금메달은 참 좋은 거야. 하지만 그게 없어서 부족함을 느낀다면 있어도 마찬가지지.”

영화 ‘쿨 러닝’(1992) 속 커트 헴필의 대사

“스포츠 영화는 흥행이 잘 안 된다.” 한국 영화계에서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말입니다. 물론 절대불변의 속설은 아닙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과 ‘국가대표’(2009)가 많은 관객과 만났으니까요.

야구나 축구 등 인기 종목을 소재로 한 영화가 특히 흥행과 거리가 멉니다. 야구나 축구는 평소 국민 스포츠라 불릴 정도로 사람들이 관심이 많고, 아는 것이 많으니 영화가 조금만 허점을 보여도 고개를 돌리게 된다고 영화인들은 말합니다. 정치, 영화, 야구, 축구에 대해 섣불리 식견을 자랑했다간 사람들에게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핀잔을 듣는 일상을 생각하면 그럴듯한 해석입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과 ‘국가대표’는 비인기종목인 핸드볼과 스키 점프를 소재로 했습니다. 세상이 관심을 두지 않는 곳에서 인간 승리의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대중의 눈길을 잡을 만합니다.

비인기종목은 올림픽 등 큰 스포츠 이벤트 때나마 관심을 받곤 합니다. 수십 년 동안 세계 최강 자리를 이어온 양궁은 물론이고 펜싱 등이 지금 열리고 있는 도쿄올림픽에서 오랜만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습니다. 큰 성과를 올릴 수 있을 때나 눈길을 두는 듯해 씁쓸한 기분이 듭니다.

한국만의 현상은 아닙니다. 비인기종목의 설움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 ‘독수리 에디’(2016)는 영국에서 아예 무시당했던 스키 점프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올림픽의 의미가 승리가 전부가 아니라는, 당연해서 쉽게 잊곤 하는 교훈을 전합니다. 설경이 줄곧 나오기에 무더위를 날리기에도 좋은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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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올림픽 출전이 꿈이었던 소년

영화 '독수리 에디'.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독수리 에디'.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에디(테런 에저튼)는 어려서부터 올림픽 출전이 꿈입니다. 올림픽에 나가겠다고 갑자기 밤에 나가 버스를 기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올림픽과는 멀고도 멉니다. 소년 에디는 다리 장애가 있는데다 운동신경이 딱히 좋지도 않습니다. 운동을 할 때마다 놀라운 성취를 이루기보다 깨진 안경만 쌓이곤 합니다. 우연하게 스키에 입문해 올림픽에 나가고자 합니다. 하계올림픽보다 동계올림픽 출전 경쟁이 약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하지만 그는 스키로 올림픽에 나갈 만한 실력이 되지 못합니다. 아버지는 22세가 됐으니 이제 꿈만 좇지 말고 자신을 따라 미장 자격증을 취득하라고 권고합니다. 높은 벽을 느낀 에디 역시 생업전선에 나서려다 스키 점프라는 틈새를 발견합니다.

영국에는 1929년 이후 스키 점프 선수가 부재했습니다. 올림픽 출전 관련 규정 역시 낡았습니다. 에디는 착지만 할 수 있으면 출전권을 따낼 수 있다는 점을 파악하고, 바로 도전에 나섭니다. 때는 1987년. 캐나다 캘거리 동계올림픽을 1년 남짓 남겨놓은 시점입니다. 아무리 스키를 탔다지만 스키 점프를 제대로 배우기엔 아무래도 무리로 보입니다.

②엘리트 체육이 부른 1등 지상주의

영화 '독수리 에디'.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독수리 에디'.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에디의 꿈 앞에 장애물은 없습니다. 에디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도 않은데 바로 독일 스키 점프 훈련장으로 달려갑니다. 식당 창고에서 자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혼자 스키 점프대에 올라 몸을 던집니다. 15m 점프는 아주 쉽게 착지할 수 있었으나 40m 점프부터는 나가떨어지기 일쑤입니다. 70m와 90m 점프만 올림픽 정식 종목이니 출전은 꿈도 못 꿀 상황입니다.

에디는 노르웨이 선수들을 찾아가 점프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가 비웃음만 삽니다. “노르웨이에선 스키 점프를 여섯 살에 시작한다”며 너무 늦었다고 놀림당하기도 합니다. 에디는 40m 점프를 계속하나 느는 건 실력이 아니라 멍뿐입니다. 점프대 관리자인 브론슨(휴 잭맨)은 그런 에디를 보고 “차라리 발레에 도전하라”고 이죽거립니다. 브론슨은 스키 점프 세계 주니어 1위였으나 술과 여자에 빠져 팀에서 쫓겨난 아픈 과거를 지녔습니다. 브론슨의 이력을 알아챈 에디는 도움을 요청합니다.

영화 '독수리 에디'.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독수리 에디'.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에디는 고군분투하는데, 스포츠 엘리트들은 비웃고 무시하기만 합니다. 에디가 천신만고 끝에 70m 점프 착지에 성공하자 영국올림픽위원회는 규정을 재빨리 바꿔 비행거리 미달이라며 에디의 대표팀 발탁을 거부합니다. 올림픽 출전을 위해 스폰서들의 도움이 필요한데, 에디 같은 선수가 경기에 나가면 이미지만 나빠져 돈줄이 끊긴다는 식의 생각이 영국올림픽위원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아마추어를 올림픽에 내보낼 수 없어”라고 에디에게 직설적으로 말합니다. 에디는 “올림픽은 원래 아마추어를 위한 대회가 아닌가요”라고 맞받아치지만 공허하기만 합니다.

③정말 승리가 중요한가

영화 '독수리 에디'.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독수리 에디'.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스키 점프계를 호령했던 브론슨도 처음엔 에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는 “40m는 실패하면 피멍이 들고, 70m는 실패하면 걸어 다니는 게 다행일 정도가 되지만 90m는 괴물”이라고 말하며 초보자 에디에게 손사래를 칩니다. 그는 에디를 조련하면서도 어설픈 실력으로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올림픽 출전을 반대합니다. 에디가 어렵사리 스키 점프 대표가 되자 엘리트 선수들은 그를 따돌리며 가학적 재미를 즐깁니다. 승리만이 목표인 엘리트주의의 단면을 볼 수 있습니다.

영화 '독수리 에디'.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독수리 에디'.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에디가 괴짜인 건 분명하지만, 그를 통해 잊어버렸던 올림픽 정신을 새삼 되돌아 볼 수 있습니다. 브론슨의 스승은 책에서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불굴의 의지가 올림픽 정신이라는 걸 몰랐다”며 브론슨의 실패 이유를 지적합니다. 그는 “비록 실패한다 하더라도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고 강조하기도 합니다. 에디는 브론슨처럼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지 못했지만 올림픽 정신에 부합할 만한 자세와 생각을 지니고 있었던 거죠.

에디는 대표팀 동료들 비웃음 속에도 경기에 출전합니다. 메달권과는 거리가 먼 기록을 세우지만 영국의 올림픽 신기록을 만들어냅니다. 에디라는 무모한 도전자가 없었으면 영국 스키 점프는 1929년에 시간이 멈춰있었을 텐데, 그가 나서면서 조금이나마 전진할 수 있었던 겁니다.

④올림픽 정신을 다시 돌아본다

영화 '독수리 에디'.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독수리 에디'.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속에선 생각지도 않았던 인물이 에디의 도전을 호평합니다. 스키 점프 세계 1인자인 마티(애드빈 앤드레)입니다. 그는 점프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에디를 만나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너랑 난 1시와 11시 같은 사이야. 다른 숫자들보다 서로한테 가깝지. 패배자들이나 이기고 지는 것에 목매. 우리 같은 승자들은 영혼의 자유를 위해 뛰지… 전 세계가 지켜보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로 남을 거야.”

1시와 11시는 바늘시계에서 서로 대칭을 이루는 지점입니다. 마티는 최선을 다하면 꼴찌나 1인자나 차이가 없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던 듯합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강조한 말이기도 하고요. 스포츠의 정신, 올림픽 정신을 이토록 상징적이면서도 명징하게 표현한 대사는 없었던 듯합니다.

영화 '독수리 에디'.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독수리 에디'.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도쿄올림픽 기간에 우리는 국내 방송사의 경기 중계 때문에 황당하면서도 민망한 상황을 마주했습니다. 한국 축구 대표팀과의 경기에서 자책골을 넣은 루마니아 선수에게 자막으로 ‘고마워요’라고 표현하거나, 한국 유도 대표 선수가 동메달을 따자 “우리가 원했던 색의 메달은 아니다”라고 평가해 시청자들을 당혹스럽게 했습니다. 저 표현들은 결국 엘리트 체육을 바탕으로 한 승리 지상주의가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근대 올림픽 창시자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의 말로 끝을 맺습니다. 오래전에 들었던, 익히 알고 있는 말이지만 울림이 여전히 적지 않습니다.

“올림픽 대회의 의의는 승리가 아닌 참가하는 데 있다.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성공이 아닌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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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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