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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조용한 존재들을 위해

입력
2021.08.03 04:30
수정
2021.08.04 10:05
22면
0 0

이주란 ‘위해’(문장웹진 7월호)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 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모든 목소리가 같은 크기로 들리진 않는다. 어떤 웅얼거림은 세상이 먼저 나서서 확성기를 가져다 대주지만, 어떤 절규는 목이 터져라 외쳐도 귀를 막아 버린다. 데시벨의 문제가 아니다.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에 따라 선택적으로 귀 기울이기 때문이다. 가진 것, 성별, 교육 수준, 사는 동네의 다름이 그런 차이를 만들 것이다.

언론이 인용한 ‘청년’의 70%가 서울 거주라고 한다. 인터뷰한 청년의 평균 나이는 26.5세, 절반 이상이 대학생이거나 직장인이라고 했다. ‘서울 명문대 대학생’이 ‘평범한 청년’의 목소리가 되어 널리 널리 퍼져 나가는 동안, 또 다른 청년들의 목소리는 소거되었을 것이다. 문장 웹진 7월호에 실린 이주란 작가의 단편소설 ‘위해’ 속 수현의 목소리를 세상은 그렇게 놓쳤을지 모른다.

수현은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비닐하우스에서 살았고, 그곳이 철거되면서 반지하로 옮겼다. 수현은 박스 공장에서 일하고 수현의 할머니는 폐지를 줍는다. 수현의 부모는 살아 있긴 하지만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른다. 수현은 불행에 죄책감을 느낀다. 그래서 남들이 하는 것(예를 들면 행복해지는 것)은 잘 하지 않으면서 되도록 조용하게 산다.

세상이 입을 틀어막기도 전에 수현과 가족들은 스스로 그렇게 했다. 수현이 어릴 적 할머니는 “조용히 살거라. 아무래도 그게 좋지 않겠니”라고 했다. 수현 역시 '그 말이 아니었더라도 아무래도 난 조용히 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조용해야만 하기 때문에, 연인의 좋아한다는 말 앞에서도 '그 사람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이 정도로만 살아야 해. 너무 행복하면 안 돼'라며 마음을 단속한다. 불행도 행복도, 발설하지 않으려 한다.

“수현은 조용히 살아야 했다. 불행해지는 것은 괜찮다. 그러나 동정이나 도움을 받을 만큼 불행해져서는 안 된다. 너 같은 애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그 정도를 지키며 살도록 노력하라고 사람들에게 배웠다.”

이주란 작가. 문장웹진 제공

이주란 작가. 문장웹진 제공

하지만 내 존재가 내는 소리가 작아질수록, 또 다른 존재가 내는 작은 소리는 잘 들을 수 있게 되는지 모른다. 수현은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아 그대로 둔다면 차 바퀴에 깔려 뭉개질 게 뻔한 토마토를 주워 담고, 누구도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리지 않는 잡초도 '이름을 꼭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인터넷에 검색해 본다. 느리고 어색한 종종거림으로 절뚝거리며 걷는 작은 새를 보면서 '지금 새가 아프다는 걸 아는 사람은 나뿐'이라며 걱정한다.

수현은 옆 방 유리의 조용함도 알아차린다. 올해 열 살이 된 유리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수현은 벽 너머 유리가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 마음이 쓰인다. 유리에게 맛있는 걸 사주고 싶고, 좋은 델 보여주고 싶다. 수현 자신은 한없이 조용해질지라도, 마찬가지로 조용해질 수밖에 없는 다른 존재에게는 귀 기울인다. 소설은 이 작은 존재들의 목소리에도 확성기를 가져다 대 준다.

오늘도 바깥 세상에는 큰 존재들이 내는 소리들이 우렁차다. 그들이 부디 조용할 수밖에 없는 다른 청년 존재들의 소리에도 귀 기울이길, 수현의 조용함을 알아차려 주길, 나라도 외쳐본다.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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