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합당에 대해서 Yes(예스)냐 No(노)냐가 중요하고, 만나는 것에 대해서 Yes냐 No냐 답하시면 됩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3일 페이스북)
"(합당을) 마치 장난하는 것처럼 대하고 있는데 맞장구쳐줄 필요가 있나. 안철수 대표도 이준석 대표와의 만남의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다."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 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국민의힘이냐, 국민의당이냐. 단어 한 끗 차이로, 이름마저 비슷한 두 당의 합당 협상이 벼랑 끝으로 치닫고 있다. 날 선 신경전에 감정은 상할 대로 상한 듯 보인다.
과연 합칠 수나 있는 건지, 이대로 합쳐봤자 의미가 있는 것인지 양측 공히 서로를 흘겨보며 의심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두 당의 합당 문제는 정치권에서 '핫'한 이슈가 아녔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취임 이후 벌써 두 달 가까이 실무 협상을 이어갔지만, 지리멸렬. 성과는 없었다. 그 사이 국민의힘엔 바깥에 있던 야권 대선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나란히 입당했다.
그러자 이 대표가 국민의당과의 합당 문제에 속도를 높였다. 야권 빅텐트의 한 조각인 국민의당만 들어오면 반문(반문재인) 전선은 완성되니 빨리 결단하라는 거다.
하지만 갑질 협상에 굴복하며 들어갈 수 없다는 국민의당의 최후 저항도 만만치 않다. 이미 시너지 넘치는 아름다운 합당 그림은 물 건너간 상황. 지난 주말부터 벌어진 양측의 공방을 정리해봤다.
①1라운드 : 휴가냐, 합당이냐... '갑질' 논란
더 이상 간보기는 없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7일 합당 실무협상이 결렬되자, 대표끼리 담판을 짓자며 안철수 대표에게 회동을 제안했다. 하지만 무응답. 그러자 "안 대표가 만남을 제안한다면 버선발로 맞을 것"(지난달 31일 페이스북)이라며 자신의 휴가일정을 이유로 들어 합당 협상 시한을 "다음 주(8월 1~8일)"로 못 박았다. 최후통첩이었다.
국민의당은 "일방적 통보와 겁박에 가까운 독촉이자, 고압적 갑질"이라며 불쾌감에 몸서리쳤다. "제1야당 진정성 무게가 깃털처럼 가볍고, 포용성이 벼룩 간만큼 작아 보인다"(지난달 31일 안혜진 대변인 논평), "휴가 일정이 정권 교체를 위한 대선보다 그렇게 우선한 일정이냐"(권은희 원내대표 1일 페이스북) 등등 격앙된 반응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이 대표는 즉각 "그럼 휴가 안 가면 합당하나"라고 되받아쳤다. 이 대표는 "의지가 있으면 만나자는 제안부터 받으면 되지, 개인택시 기사분들과 몇 년 전부터 했던 약속을 버리고 합당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국민의당에 대기 타고 있어야 하나"라며 "휴가 기간 동안 굳이 협상해야 한다면 교육 마치고 저녁에 서울 올라오겠다. 국민의당이 다음에는 어떤 핑계를 만들지 궁금하다"고 갑질 논란을 반박했다.
②2라운드 : 이준석 VS 안철수, 노원병의 악연은 계속
양측의 공방이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진 데는 두 대표의 어긋난 정치적 궁합도 한몫하는 듯하다.
두 사람은 서로가 인정하듯 '악연'이다. 2016년 치러진 20대 총선에서 안 대표는 서울 노원병에 출마해 이 대표를 꺾고 당선됐고, 이 대표는 노원병에만 세 차례 출마해 낙선했다. 이 대표는 "안 대표와 껄끄러운 관계이자 악연이 맞다"며 "2018년 보궐선거에서 (안 대표가) 노원병 공천에 태클을 건 이유가 크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두 사람은 맞대결을 피해 왔지만, 이제는 직접 싸우기 시작했다.
포문은 이 대표가 먼저 열었다. 지난달 31일 페이스북에서 안 대표의 '흑역사'를 소환하며 직격한 것. 과거 바른미래당 시절 안 대표가 독일·미국 등지에 체류하며 당내 혼란 와중에도 특별한 메시지를 내지 않았던 점을 들며 "대선을 앞두고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면서다.
그러자 한동안 잠자코 있던 안철수 대표가 직접 나섰다.
안 대표는 2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드루킹 몸통 배후 수사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마친 뒤 "단순히 중도 정당 하나를 없애버리는 마이너스 통합으로는 정권 교체가 불가능하다는 문제 의식을 갖고 있다"며 이 대표의 합당 방식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 대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본인이 제안한 통합인데, 이젠 마이너스 통합이라고 저주까지 하느냐"고 맞받았다. 상계동 이웃사촌의 과거 악연이 재연되는 조짐이다.
③3라운드 : 도대체 뭐가 문제? 당명? 지분? 신뢰?
이쯤에서 궁금해지는 건, 무엇 때문에 협상이 틀어졌는지다.
국민의힘은 국민의당이 당명 변경, 과도한 지분을 요구해 협상이 결렬됐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국민의당은 "합당의 기본 정신은 상대에 대한 인정과 신뢰"라며 이를 인정하지 않는 국민의힘이 문제란 입장이다. 또 중도 실용의 지지층을 확보하기 위해선 일방적 흡수 통합은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주장도 폈다.
권은희 원내대표는 "국민의당이라는 정당의 존재를 인정하고 당직자들의 존재를 인정해달라는 요구는 상호 인정하자, 이것이 합당의 기본정신이 아니겠나"라면서 "국민의힘 253명의 당협위원장과 우리당 29명 지역위원장들의 지위를 공동으로 인정해야 야권이 확장할 수 있다는게 우리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이태규 국민의당 사무총장도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우리가 당세로 봐서 돈과 조직이 없지 무슨 가오까지 없는 정당은 아니다"라며 "양당의 진정성과 정치력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인데 국민의힘이 지금 보여주고 있는 태도는 너무 가슴이 없다"고 이 대표를 직격했다.
하지만 이 대표의 반응은 여전히 냉랭하다.
이 대표는 "당명 바꾸면 플러스 통합이고 안 바꾸면 마이너스 통합이냐", "제발 뜬구름 이야기 말고, 실질적 대화를 하자"고 맞받는 상황이다.
이 대표 말대로 "산으로 가고 있는 협상"의 끝이 어디일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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