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갈 곳 없는 열차라면 대량으로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난 6일 밤 8시 30분쯤 일본 오다큐선 열차 안에서 승객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중경상을 입힌 남성이 경찰에 진술했다는 말이다. 실제로 용의자가 열차의 네 번째 칸에서 두 번째 칸으로 이동하며 칼부림을 할 당시 도망갈 곳 없는 열차 안에서 승객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현재까지 파악된 피해자는 10명. 대부분 경상이었으나 여대생 한 명은 7곳이나 찔려 중상을 입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용의자는 낮에 절도 혐의로 자신을 신고한 식료품점의 여성을 습격하려고 열차에 탔으나, 밤이라 가게가 문을 닫았을 것이라 생각해 타고 있던 열차 안에서 범행하기로 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처음 범행 대상으로 삼았던 것도 여성이고 실제 범행 당시 가장 치명적인 부상을 입힌 대상도 여성이었다. 그는 피해 여대생이 “승자 같아 보여” 타깃으로 골랐다고 진술했다.
무엇보다 “6년 전부터 행복한 여성을 죽이고 싶었다”는 용의자의 진술 내용이 보도되자 트위터를 중심으로 이 범죄의 성격을 ‘페미사이드’, 즉 여성 증오 범죄로 규정하고 젠더 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제고 및 확실한 처벌·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 트위터에서는 7일 페미사이드(フェミサイド)가 트렌딩(인기 키워드) 순위에 올랐다. 젊은 여성을 상대로 한 남성의 흉기 살상 사건은 드문 일은 아니지만, 이번엔 특히 범행 동기에 성별을 직접적으로 언급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행복해 보인다는 이유로 우리들을 죽이지 말라(#幸せそうという理由で私たちを殺さないで)’는 해시태그 운동도 벌어졌다.
진보 정당인 일본공산당의 야마시타 요시키 참의원은 대학을 중퇴하고 이런 저런 직업을 전전했던 것으로 알려진 용의자의 불안정한 고용 상태와 관련 "비슷한 사건의 범인들이 모두 파견사원"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페미사이드 사건에 대해 젠더 관점을 결여한 채 가해자인 남성 측의 배경만 말하는 것은 문제”라는 취지의 반론이 나오자, “나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내면화한 인권 의식의 왜곡과 마주하고 자기 개혁을 위한 노력을 강화하겠다”고 사과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나우 사무총장인 이토 가즈코 변호사는 야후재팬 기고를 통해 이번 사건이 “여성을 겨냥한 증오 범죄 성격이 짙다”면서 “여성을 노린 살인은 장애인이나 외국인을 겨냥한 증오 범죄와 마찬가지로 사회에 대한 위험 신호”라고 우려했다. 그는 전 세계적인 감염 확산 속에 다른 나라에서도 여성과 소녀에 대한 폭력·살인 등이 증가하고 있다는 기사를 제시하며 “여성의 지위가 세계적으로 낮은 일본도 페미사이드의 토양이 있다”고 진단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