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고온다습한 무더위, 무관중 경기 등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20 도쿄올림픽. 하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선수들의 스포츠맨십은 유난히 빛났다. 지난 19일간의 여정 중 전 세계인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던 7가지 순간들을 뽑아봤다.
"넌 파이터잖아" 동료 선수 완주하게 만든 한마디
지난달 27일 도쿄 오다이바 해상공원에서 열린 여자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경기는 도쿄의 무더위와 오다이바의 악화된 수질 때문에 참가 선수 55명 중 21명이 중도 포기할 정도였다.
벨기에의 클레르 미셸(32)도 왼쪽 허벅지 통증과 체력적인 한계로 결승선을 얼마 남겨 두지 않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미셸이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라이벌이었던 노르웨이의 로테 밀러(25)였다. 밀러는 2시간2분43초로 결승선을 통과해 24위로 경기를 마쳤던 상황이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밀러는 미셸에게 "당신은 진정한 파이터"라며 그를 꼭 껴안아줬다. 이후 미셸은 다시 일어났다. 미셸은 2시간11분5초의 기록으로 이날 경기를 완주한 34명의 선수 중 34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넘어졌어도... 서로 부축해 '최하위'로 골인
미국의 아이제이아 주윗(24)은 남자 800m에 출전한 '메달 기대주'였다. 보츠와나의 니젤 아모스(27)는 2012 런던 대회에서 자국에 첫 올림픽 메달을 선물한 '스포츠 영웅'이다.
그런 두 선수가 지난 1일 일본 도쿄 올림픽스타디움에서 펼쳐진 800m 준결선 마지막 3조 레이스에서 만났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다. 5번 레인에서 출발한 주윗이 마지막 곡선 주로를 통과하던 중 발이 엉키며 쓰러졌는데, 이 과정에서 주윗의 오른발이 옆 레인의 아모스를 건드렸고, 아모스마저 트랙 위에 나뒹굴고 만 것이었다.
이미 결선 진출은 물 건너간 상황. 다른 6명의 선수 모두가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주윗과 아모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손을 붙잡고 서로 부축하며 함께 일어난 뒤 레이스를 계속했다.
둘은 어깨동무를 했다. 앞서 레이스를 마친 6명의 선수들은 트랙을 떠나지 않고 기다리다 경기를 마친 주윗과 아모스를 격려했다. 주윗은 경기 후 "매우 좌절했고 화가 났지만, 슈퍼히어로 애니메이션을 통해 영웅이 돼야 한다고 배웠다"며 "스포츠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을 때도 품격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4위도 괜찮아" 어깨에 목마 태워 준 동료 선수들
일본의 오카모토 미스구(15)는 지난 4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스포츠파크 스케이트보드장에서 열린 여자 파크 종목에서 2차 시기까지만 해도 3위에 올라 있었다. 마지막 3차 시기에서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메달권 진입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오카모토는 마지막 시기에서 가장 고난도 동작인 인디 플립을 시도하던 중 넘어지고 말았다. 최종 점수 53.58점으로 4위에 머문 오카모토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경기장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때 함께 경기를 했던 선수들이 오카모토에게 다가왔다. 동료 선수들은 오카모토를 그들의 어깨에 올리며 "멋진 연기였다"고 격려했다. 오카모토와 동년배였던 10대 선수들이었다. 방금 전 실수에 눈물까지 고였던 오카모토는 두 손을 번쩍 들며 미소를 지었다. AP에 따르면 오카모토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눈물을 흘리며 "(동료 선수들이) 너무 고마웠다"고 말했다.
러시아 선수들 축하 위해 제일 먼저 달려간 미국 체조 영웅
미국의 체조 영웅 시몬 바일스(24)는 지난달 27일 열린 여자 기계체조 단체전에서 4개 종목 중 도마 한 종목만 뛰고 기권했다. 정신적 압박감으로 경기를 계속할 수 없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바일스는 경기를 포기한 뒤에도 경기장을 찾았다. 함께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단체전에서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는 미국을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는데, 바일스는 미국 선수 중 가장 먼저 ROC 선수들에게 다가가 우승을 축하해줬다.
바일스는 이틀 뒤에도 경기장에 나타나 자국 동료 선수들을 응원했고, 결국 3일 우여곡절을 딛고 복귀해 평균대에서 동메달을 차지했다.
46세 체조 전설 은퇴에 전원 기립 박수
우즈베키스탄의 옥사나 추소비티나(46)는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부터 8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한 '체조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에서 태어난 추소비티나는 1991년 소련 붕괴 후 독립국가연합(CIS) 소속으로 1992 바르셀로나 대회에 참가해 단체전 금메달을 땄다. 1996년 애틀랜타 대회 때 우즈베키스탄 대표로 참가한 추소비티나는 2000년 시드니 대회를 마치고 은퇴를 결정했다. 하지만 아들 알리셰르가 2002년 백혈병 진단을 받으면서 계획이 바뀌었다. 추소비티나는 아들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2008 베이징 대회 때 독일 대표로 뜀틀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아들의 병세가 완화되자 다시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가 세 번 더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도쿄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던 추소비티나에게 선수들과 심판, 자원봉사자 등으로부터 기립 박수가 쏟아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지난달 25일 기계체조 단체전 예선에서 추소비티나는 1, 2차 시기 평균 14.166점으로 결선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여제'다운 은퇴식을 치렀다. 추소비티나는 눈시울을 붉히면서도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동료들의 환호에 답했다.
"세계기록 축하해" 내 일처럼 달려간 선수들
남아공의 타티아나 스쿤마커(24)는 지난달 30일 일본 도쿄 아쿠아틱스 센터에서 열린 여자 평영 200m 결선에서 1분18초95의 세계신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남아공 여자 선수로는 25년 만의 금메달이었다.
경기 후 자신의 기록을 보고 놀랐던 스쿤마커는 자신의 주변에 몰려든 동료 선수들을 보고 한 번 더 놀랐다. 방금 전까지도 치열하게 경쟁했던 선수들이 마치 자기 일인 양 그의 신기록 경신을 축하해준 것이었다.
금메달리스트 통역 도와준 2등 선수
일본의 이가라시 카노아는 지난달 27일 일본 쓰리바사키 서핑 비치에서 열린 남자 부문에서 은메달을 딴 뒤 금메달을 목에 건 브라질의 이탈로 페레라(27)를 위해 통역을 자처해 화제가 됐다.
AP에 따르면 이가라시는 미국계 일본인으로, 포르투갈어에도 능숙해 페레라의 통역을 자진해서 도와준 것으로 전해졌다. 금메달을 뺏겨 속이 쓰릴 만도 했지만,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라이벌의 금메달 소감을 통역해준 것이었다.
관중들은 이가라시의 친절한 모습에 환호했다. 기자회견 후 페레라는 이가라시에게 영어로 "고맙다"고 감사 표시를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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