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선발부터 전략 부재?
“프로의식 망각한 자기관리 실패 탓”
7일 열린 도쿄올림픽 야구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국이 8회초 5실점 하며 역전을 허용하자 중계화면이 한국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더그아웃 난간에 몸을 기댄 채 멍한 표정으로 껌을 질겅질겅 씹는 강백호(KT)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박찬호 KBS 해설위원마저 “이러면 안 된다. 더그아웃에서 계속 파이팅하는 모습, 질지언정 우리가 보여줘선 안 되는 모습을 보여줘선 안 된다. 끝까지 가야 한다”고 이례적으로 쓴소리를 쏟아냈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국민 영웅'이었던 한국 야구 대표팀은 13년 만에 '국민 역적'으로 추락했다. 올림픽 첫 메달을 획득한 2000년 시드니 대회 동메달 이후 21년 만의 노메달 수모로 디펜딩챔피언의 자존심을 구겼다. “메달이 아닌 납득이 가는 경기를 하러 왔다”는 김경문 대표팀 감독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철저한 '우물 안 개구리'였다. KBO리그 최고의 포수라 칭송받던 연봉 15억 원의 양의지(NC)는 타율 0.136으로 마쳤고, 최대 50억 원에 삼성 유니폼을 입은 오재일 역시 타율 0.211에 그쳐 '국제용'과는 거리가 멀었다. 4번 타자 임무를 맡은 강백호는 지난 5일 미국과 패자 준결승에서 패한 뒤 "많이 망설였던 게 아쉽다"고 했다. 한국 타자들은 답답할 정도로 지켜보기만 하다 삼진을 당하거나 불리한 볼카운트에 몰려 자기 스윙을 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선수 선발에 아쉬움이 남는다. 선발투수 위주로 구성한 투수진으로 '벌떼 야구'를 펼치겠다는 전략을 폈는데, 결국 끊어줘야 할 시점에 대량실점(4일 일본전 8회말 3실점, 5일 미국전 6회말 5실점, 7일 도미니카공화국전 8회초 5실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올 시즌 KBO리그는 선발보단 불펜투수들이 기록적으로 우위에 있는 만큼 불펜투수들을 뽑았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타선도 이정후 김혜성(이상 키움) 허경민(두산) 박해민 등 컨택트 능력이 좋은 타자들이 국제대회에서도 통한다는 걸 다시 입증했다. 과거 이승엽 이대호처럼 '한 방'조차 없는 무기력한 중심타선은 ‘약속의 8회’를 만들지 못했다.
반면 일본은 간판타자 야마다 데스토가 희생번트를 댈 정도로 충실한 플레이를 펼쳤고, 야쿠르트의 4번타자인 무라카미 무네타카는 8번에 배치되는 등 철저한 역할 분담이 이뤄졌다. 미국도 과감한 시프트 수비를 적용하는 등 세밀한 야구를 구사해 준우승 성과를 냈다.
'국대 선수' 발굴과 육성도 실패했다. 류현진(토론토) 김광현(세인트루이스) 양현종(텍사스) '좌완 트로이카' 이후 씨가 말랐다. 약 4,000개의 고교야구팀을 보유한 일본과 직접적인 비교는 난망하지만 국가대표팀만 보면 떨어지지 않는다는 평을 들었던 한국 야구다. 리그 성적에만 목마른 구단들의 이기주의, KBO의 허술한 시스템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설상가상 유창식(전 한화) 최충연(삼성) 안우진(키움) 등 기대를 모았던 일부 선수들은 승부조작, 불법도박, 음주운전 등 자기관리 실패로 꽃을 피우지 못했다.
이순철 SBS 해설위원은 “많은 응원을 받았던 과거와 달리 대표팀을 향해 박수는커녕 조롱하는 듯한 상황이 발생한다는 게 더 큰 문제”라며 “후배들이 자초한 부분이다. 팬들의 마음을 돌려세우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대오각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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