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으로 본 스포츠 중계 그림자
8일 막을 내린 2020 도쿄올림픽의 중계방송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스포츠의 감동에 찬물을 끼얹는 부적절한 중계방송이 잇달았다. 외교적 결례를 범한 참가국 비하를 비롯해 성차별적 표현, 고질병인 '국뽕' 중계가 거듭되며 질 낮은 국내 스포츠 중계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국격과 결부되는 국제 행사 중계의 저널리즘 회복이 필요하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배경이다. 남성이 대부분인 스포츠 캐스터의 심각한 성비 불균형도 시급히 개선해야 할 문제다.
'밈'에 실종된 저널리즘...MBC 관련 민원 99%
KBS MBC SBS 등은 우정과 연대, 화합이란 올림픽 정신과 배치되는 비하조의 경기 해설로 물의를 빚었다. SBS는 개막식에서 '간호사 복서' 쓰바사 아리사가 러닝머신을 달리는 퍼포먼스를 두고 "홈트레이닝하는 모습인데 홈쇼핑하는 느낌도 나네요"라고 중계해 입길에 올랐다.
MBC는 돌이키기 어려운 '대형사고'를 쳤다. 개막식에서 우크라이나 선수단이 나올 때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로 무너진 건물 사진을 화면에 내보냈다. 남자 축구 예선 대한민국과 루마니아 전반전 경기가 끝난 뒤 중간광고에선 상대팀 자책골 조롱으로 비칠 수 있는 '고마워요 마린'이란 자막을 띄웠다. 각국 소개 자막에 올림픽과 전혀 상관 없는 백신접종률을 넣어 시청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했다. MBC의 방송 사고는 해외에도 알려지며 국제적으로 망신을 샀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해당 이미지는 시청자를 불쾌하게 하는 한편 고정관념을 고착화시킨다"고 비판했다.
방송사들이 선거 개표 방송이나 스포츠 중계를 예능의 관점으로 접근하다 생긴, 예견된 사고였다는 게 언론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올림픽 중계는 저널리즘의 영역인데 그걸 인터넷 '밈(memeㆍ인터넷상의 재미있는 이미지나 영상)'으로 표현하려 하고 예능처럼 시청자를 잡기 위해 관심을 끌려다 문제가 터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본보 취재 결과,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6일까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접수된 지상파 3사 올림픽 중계 관련 민원은 총 185건으로, 이중 MBC가 184건을 차지했다.
여성 캐스터 단 2명... 성평등 올림픽 대비의 실체
도쿄올림픽은 성평등 올림픽을 지향했지만, 국내 중계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KBS는 한국 여자 탁구 국가대표 신유빈과 룩셈부르크의 니시아리안의 경기를 중계하며 상대 선수의 경기 운영에 대해 "여우 같다"고 표현했다. 이에 성차별적이라는 지적이 빗발쳤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KBS 펜싱 중계 때 남성 아나운서가 여자 선수 외모 관련 이야기를 해 불편했다"(sideulcoll*****, oxJx0O7GfD*****)는 항의도 올라왔다. SBS는 여자 양궁 선수를 "얼음공주" 등으로 불러 잡음을 빚었다.
이런 성차별적 해설은 스포츠 캐스터를 대부분 남성으로 꾸린 지상파의 제작 인력 구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지상파 3사가 이번 올림픽에 투입한 여성 캐스터는 단 두 명뿐이었다. SBS는 총 8명 중 한 명도 없었고, KBS(15명)와 MBC(10명)가 각 1명에 그쳤다. 성상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기획팀장은 "시대와 시청자의 시선이 변하고 있는데 그걸 제작하는 구조는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으니 문제"라며 "시대의 화두가 된 공정이나 다양성 등을 더욱 끌어낼 수 있도록 다양한 특성을 지닌 사람들이 제작 현장에서 적극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미디어 환경이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고했어, 형" 동네 경기 중계?
저널리즘을 갖춘 스포츠 중계 전문 인력 양성도 시급하다. KBS의 한 캐스터는 4일 한국과 스웨덴 여자 핸드볼 경기에서 선수들에게 "한국 핸드볼이 이렇게 창피하다"라고 폭언을 한 강재원 감독을 향해 중계 말미에 "형, 수고했다"고 말했다. 공과 사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중계란 비판이 쏟아졌다. MBC 해설위원은 허벅지 통증으로 이날 경기를 중도 포기한 오주한 선수에 대해 "완전히 찬물을 끼얹네요"라고 말해 선수를 배려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샀다.
한석현 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팀장은 "그간 스포츠 중계가 유명 선수에 의존해 방송의 질이 일정 수준으로 담보되지 못했다"며 "스포츠계 밖에서 중립적이고 균형잡힌 해설을 할 수 있는 중계자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기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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