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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기째 캠퍼스 못 밟는 '코로나 학번'... "고립세대 될라"

입력
2021.08.09 16:00
수정
2021.08.09 16:35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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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이왕구 논설위원이 노동ㆍ건강ㆍ복지ㆍ교육 등 주요한 사회 이슈의 이면을 심도 깊게 취재해 그 쟁점을 분석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코너입니다. 주요 이슈의 주인공과 관련 인물로부터 취재한 이슈에 얽힌 뒷이야기도 소개합니다.


‘영어교과교재 및 연구법’ 강의를 온라인 프로그램 줌(ZOOM)을 통해 듣고 있는 한 대학생. 한국일보 자료사진

‘영어교과교재 및 연구법’ 강의를 온라인 프로그램 줌(ZOOM)을 통해 듣고 있는 한 대학생. 한국일보 자료사진

코로나19 확산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으면서 2학기부터 대면강의 확대를 계획했던 주요 대학들이 속속 비대면 강의로 전환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반전되지 않는다면 4학기 연속으로 ‘온라인 학기’가 진행될 참이다. 입학 이후 대학 캠퍼스가 아닌 방, 카페에서 강의를 들으며 대학생활을 한 ‘코로나 학번’ 20, 21학번들에게는 특히 우울한 소식이다. 2년제 전문대생들은 잘못하면 캠퍼스도 제대로 밟아 보지 못하고 졸업할 처지이고 코로나 확산으로 졸업에 필수적인 실습 수업을 제대로 받지 못한 졸업반 학생들의 얼굴에도 불안감이 번지고 있다.

동기 얼굴도 잘 모르는 코로나 학번, 졸업예정자들 실무능력 하락 걱정도

“당연히 누려야 할 걸 이렇게 발버둥치면서 얻어내야 한다는 게 허탈합니다.”

지난 3일 고려대에서 만난 문과대 20학번 이은미(가명ㆍ20)씨는 지난 1년 반의 대학생활을 이렇게 돌아봤다. 지방 출신으로 지난해 초 입학을 위해 짐까지 싸두었던 이씨의 ‘신입생으로서의 부푼 꿈’은 코로나 사태로 송두리째 날아갔다. 그는 집에서 온라인으로 강의를 듣다가 6월에야 처음으로 서울로 올라왔다. 하지만 고대했던 오리엔테이션이나 MT도 못 가봤고, 로망이었던 고연전 응원도 못 해봤다. 온라인 화상으로 만나는 게 더 익숙한 동기들은 지금도 데면데면하다. 학기 중에는 오후에 일어나 자취방에서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고 온라인 강의는 몰아 듣는 생활의 연속이다. 그나마 동아리 사람들이 대학에서 만들어진 네트워크의 전부. 속 깊은 고민은 아직도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는 고향 친구들을 만나 털어놓는다.

이씨는 2학년을 마치고 교환학생을 신청할 계획이었지만 이 계획도 어그러져 어학자격증 취득도 후일로 미뤘다. 교환학생을 준비하던 선배들의 출국이 코로나로 무산되는 바람에 코로나 사태가 진정된다고 해도 우선순위에서 밀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씨는 “1년 반이 됐지만 학교의 어떤 건물에서 누가 만나자고 하면 아직도 위치를 모르는 건물이 절반”이라며 “휴학이라도 해야 할까 고민 중”이라고 답답해했다.

대학생활의 큰 축은 수업과 대외활동이다. 대학에서의 공부는 자기책임하에 자기주도적으로 이뤄진다 해도 동질성이 강한 중ㆍ고등학교 친구들과는 전혀 다른 이들을 만나 새로운 생각도 접해보면서 지적인 성장을 이루는 건 돈으로 살 수 없는 대학 생활의 선물이다. 하지만 코로나는 20, 21학번들에게 이런 기회를 박탈했다. 코로나 학번 대학생들은 비대면에 의한 수업의 질 하락보다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점이 안타깝다고 입을 모은다.

강의실을 오가며 자연스럽게 관계를 형성하는 일이 어려워지면서 비슷한 목표를 가진 선배들에게 진로 정보를 얻는 일은 언감생심이다. 로스쿨 진학을 생각하고 있는 성균관대 20학번 성유진(20ㆍ글로벌리더학부)씨는 “학교 차원에서 선배와 후배를 짝지은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그 선배와는 사는 곳도 다르고 함께 듣는 강의도 없어 여전히 서먹하다”며 “자연스럽게 진로 관련 고민을 털어놓거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선배들을 만날 수 없는 학번이라는 게 속상하다”고 하소연했다. 선배들도 이런 코로나 학번들의 처지가 안타깝다. 이용재(21ㆍ경영학과 19학번) 고려대 동아리연합회 비대위원장은 최근 가을축제 준비를 도와줄 학생들을 모집하는데 20학번들의 지원이 많다는 사실에 울컥했다. 이씨는 “지원서에 이름과 전화번호만 남기면 되는데 한 20학번 지원자는 ‘행복한 대학생활을 꿈꿨지만 기억에 남을 만한 추억이 없다. 다른 학우들과 기억에 남을 축제를 만드는 일을 열심히 하고 싶다’고 적었더라”며 만남에 갈증을 느끼는 이들 세대의 사정을 전했다.

비대면 수업에 어지간히 익숙해졌지만 확대 여부에 대해선 학년별로 미묘한 차이가 나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교육부가 지난 5월 대학생 9만4,803명에게 조사한 ‘2학기 대면수업 확대’ 관련 설문조사에 따르면 학년이 올라갈수록 비대면 수업을 선호하는 비율이 높았다. 낮은 학년일수록 대면 수업을 원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교수자(敎授者)ㆍ동료와의 사회적 교류 기회가 증가한다는 점(27.7%)이 이들이 비대면 수업을 선호하는 주된 이유였다.

대학 시절 대부분을 비대면으로 보낸 채 사회에 진출할 처지에 놓인 전문대생들의 사정도 안타깝다. 이론보다 실습 위주라 4년제보다 대면수업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긴 했지만 코로나 이전 선배들과 비교해 실무 역량을 제대로 쌓았는지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충청권의 한 전문대 동물보호계열 20학번 김소희(가명ㆍ20)씨는 “강아지 돌보기 훈련을 하는 과목에선 교수님으로부터 개인별로 직접 자세를 교정받아야 정확하게 익힐 수 있는데 비대면 강의로 이론설명만 들었을 때는 답답했다”고 말했다.

간호, 보건, 사회복지, 보육 전공 등 필수적으로 실습을 받아야 면허나 자격증을 딸 수 있는 전공의 졸업예정자들도 조마조마하다. 간호사 면허를 따기 위해선 1,000시간, 사회복지사는 160시간 실습시간을 채워야 하는데 코로나로 실습기관(보건소, 사회복지관 등)들이 실습생들을 받지 않으면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경북 지역 한 전문대 간호학과 졸업반 박미희(가명ㆍ22)씨는 “필요한 실습시간 1,000시간 중 700시간밖에 채우지 못했다”며 “약물 처치, 환자 소독 등은 선배 간호사들이 하는걸 보며 반복적으로 익혀야 하는데 그런 기회가 적었다. 병원들도 내년 졸업생들의 현장 대처 능력을 걱정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로 악화된 취업시장에서 실무능력이 떨어지는 세대라는 낙인이 찍힐지 모른다는 게 이들의 우려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학생처장)은 “20ㆍ21학번들은 공동체 경험을 통한 지적 성장의 기회를 전혀 누리지 못하는 특별한 인구집단이 될 것”이라며 “대학생들 역시 정해진 발달과정을 밟아야 하는데 이 학번들은 1학년 단계에서 나아가지 못하는 고립세대가 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장민석씨가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다. 장민석씨 제공

대학생 장민석씨가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다. 장민석씨 제공


비대면 강의 긍정평가 높아졌지만 우려도 여전

코로나 이전부터 대학에 몰아치던 ‘캠퍼스의 온라인화’ 압력은 코로나를 겪으면서 실현 가능성이 시험대에 올랐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기술적 문제 등으로 대체로 비대면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는 박했지만 점차 긍정적으로 변하는 추세다. 지방의 한 국립대 총학생회가 최근 비대면수업의 학습능률을 설문조사(2,998명)한 결과 만족ㆍ매우 만족한다는 응답이 54.3%에 달했다. 2학기 수업 운영을 비대면으로 해야 한다는 응답도 절반을 넘었다(52.3%). 고려대 정경대 학생회가 지난달 340명을 대상으로 1학기 비대면 수업 만족도를 평가한 결과도 53.3%가 만족(매우 만족 포함)한다고 응답했다. 코로나 상황 속에서 감염원 노출을 줄일 수 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물리적 제약 없이 반복학습이 가능하고 시간관리에 용이하다는 점에서 만족한다는 응답이 두 조사에서 모두 많이 나왔다.

1년 반 동안 비대면 수업을 진행했던 교수들은 이런 변화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교수와 학생, 학생과 학생 간 상호작용 약화, 학습 동기 유발의 어려움 등 비대면 강의의 원천적 한계를 뛰어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 발생 이후 대학생들의 일상생활 변화를 분석했던 홍성희 계명대 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비대면 강의의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학업 성취도 하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봤다. 실시간 강의라고 해도 대면강의의 생동감 유지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홍 교수는 “학교에서 강의를 들으면 동료 간 경쟁의식도 생기고, 서로 대화하는 과정에서 문제 해결의 물꼬가 트이기도 한다”며 “나도 온라인 강의의 약점을 극복하려 실시간 강의를 해봤지만 학생들이 카메라를 꺼놓고 즉석 질문도 거의 하지 않더라”고 했다.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방학생들이 학교까지 굳이 올 필요가 없어지는 등 학생들의 시간관리가 가능해진 건 비대면 강의의 장점”이라면서도 “강의의 밀도와 집중도가 낮아져 대면강의보다 이해도나 성취도가 현격히 떨어졌다”고 말했다.

코로나 이후 20, 30대 우울위험군이 다른 연령대보다 증가하는 등 젊은 층이 코로나에 따른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비대면 강의 지속이 대학생들의 생활패턴을 붕괴시키고 인간관계 축소로 답답함, 불안감, 고립감, 외로움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목소리도 현장에선 나온다. 고려대에 따르면 올해 교내 정신상담 서비스를 받은 인원은 지난해보다 14% 증가하는 등 주요 대학들에서 학생들의 정신상담이 늘어났다. 신입생들을 주요 대상으로 글쓰기, 문학강의를 하고 있는 한승우 중앙대 교수(다빈치교양대학)는 비대면 강의가 지속되면서 대학생들이 글쓰기에서 ‘정서적 위로’를 받으려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 교수는 “지난해 학생들이 제출한 칼럼이나 서평에선 코로나로 위축된 상황을 다루면서도 방역 문제 등 사회적 문제를 지적하는 글이 많았지만 올해는 위축된 자신의 내면에만 집착하는 글들이 늘었다”면서 “지난해에는 학생들의 글을 조목조목 사실적으로 비평하는 피드백을 했지만, 올해는 마음이 다칠까봐 주로 위로를 해준다”고 귀띔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재정난 해소, 대학 바깥으로의 확장성 강화 등을 이유로 각 대학들은 비대면 강의의 확대를 꾀할 것으로 예측한다. 대학의 개인주의화 성향 강화, 공동체 문화 해체에 이어 비대면 강의 확산은 대학생들을 정서ㆍ심리적으로 더욱 취약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배 교수는 “코로나 유행기에 학생들의 심리 문제에 신경을 쓴 학교와 내버려 둔 학교 간의 차이는 코로나가 지나간 뒤 확인될 것”이라며 코로나 학번, 코로나 세대 대학생들의 심리방역에 대한 대학들의 적극적인 관심을 촉구했다.


자료: 마승혜, 허정경 (2020)

자료: 마승혜, 허정경 (2020)


이왕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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