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경 전 통계청장 '공론화의 효과' 보고서
"의제 대부분 정치적 쟁점, 편중 완화 노력해야"
대입제도는 쟁점도 모호… "기본요건 못 갖춰"
문재인 정부 초기에 진행된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과 '대학입시 제도 변경'에 대한 공론화 과정에서 "진보성향의 의견이 '과다 대표' 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자는 현 국책연구기관 연구위원이자 문재인 정부의 초대 통계청장 출신이다.
그는 "공론화를 거치며 대중의 의견이 성숙해지는 장점은 유효하지만, 공론화의 특성상 특정 정치성향이 과다 대표되는 구조적인 오류는 보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10일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황수경 KDI 연구위원은 최근 발간한 ‘공공선택에서 공론화의 역할 및 효과 연구’ 보고서에서 문재인 정부의 두 공론화 과정을 분석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두 공론화 모두 쟁점 사안에 대한 태도 대표성과 포괄성에서 부족함이 발견됐고, 진보적 정치성향이 과다 대표되는 문제가 포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황 위원은 2017년 7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통계청장을 지냈다.
"신고리 공론화에 특정 입장 과다 대표"
황 위원이 분석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조사 원자료를 보면, 2만6명 대상의 대국민 사전조사 당시 39.2%였던 ‘원자력발전 축소’ 의견은 이후 공론화 참여자(시민참여단·471명) 중에선 47.4%로 높아졌다. 원전 확대(12.9%→14.0%), 현상 유지(31.1%→31.6%) 의견은 비슷했지만, ‘잘 모르겠다’는 응답자가 16.8%에서 7.01%로 크게 줄면서 결과적으로 원전 축소 의견이 늘어난 것이다.
대국민 사전조사 때와 시민참여단의 지지정당 분포도 역시 달라졌다. 애초 39.6%였던 여당(더불어민주당) 지지자는 1차로 공론화 참여 의향자(5,882명)를 골랐을 때 43.4%로 늘었고, 시민참여단 471명 가운데는 46.1%로 더 많아졌다. 야당인 당시 자유한국당(8.9%→10.4%)이나 국민의당(3.7%→3.0%) 지지자보다 여당 성향이 훨씬 강화된 셈이다.
이는 공론화 논의 집단의 구조적인 특성이기도 하다. 일반 여론조사에 응답하는 사람과 달리, 시민참여단에는 아무래도 해당 쟁점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적극적인 의견 표명을 하는 사람이 참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지지 정당이 없다'는 응답층이 대국민조사 당시 37.2%에서 시민참여단에서는 30.79%까지 줄어드는 등 상대적으로 정치에 관심이 없는 계층은 공론화에 참여할 가능성이 떨어진다.
황 위원은 "공론화를 설계한 정부가 의도한 게 아니라도, 참여집단 선정 과정에서 '국민을 충분히 대표하고 다양한 계층을 포괄해야 한다'는 공론화의 기본 원칙이 왜곡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특히 공론화의 의제 대부분이 정치적 쟁점 사안임을 감안하면, 시민참여단의 '정치적 편중성'은 결론의 객관성까지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참여 집단을 선발할 때부터 아예 정치성향을 명확히 고려하는 등 편중성을 완화시킬 장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숙의 과정은 '합격점'… 대입제도는 공론화 말았어야"
다만 공론화의 '숙의 과정'은 적절했다고 황 위원은 평가했다. 시민참여단이 정보 습득과 찬반 토론을 거치면서 의견을 형성하거나 견해를 바꾸는 ‘선호 전환’ 현상이 나타났다는 점에서다.
실제 시민참여단의 41%는 숙의 과정에서 신고리 원전 건설에 대한 견해, 향후 원전 정책 방향에 대한 입장을 바꿨다. 황 위원은 “비교적 명확한 의제로 공론화가 이뤄져 원전 건설 재개와 향후 원전 축소라는 복합 의견을 도출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공론화 과제였던 대입제도 개편은, 과다 대표의 문제뿐 아니라 의제 자체도 명확하지 않아 '기본도 갖추지 못한 설계였다'고 황 위원은 평가했다.
당시 대입제도에서 우선시해야 할 전형이 '학생부 위주 전형'이라는 응답은 39.3%에서 44.5%로 늘었고, 민주당 지지자 비율도 44.5%에서 50.2%까지 높아졌다.
시민참여단은 ‘공정한 교육 기회’와 ‘시스템적 효율성’이라는 두 가지 기준을 가지고 수능 절대평가를 도입할지, 상대평가를 유지하면서 어떤 평가 기준을 보완할지 등 네 대안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황 위원은 “(공론화 주문자인) 정부가 종종 곤란한 의사결정을 시민참여단의 이름으로 결정해 주길 기대한다”며 “공론 형성에 다가가는 공론화가 아니라면, 또 다른 형태의 다수결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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