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1900년 이후 2.9도 상승...폭염 휩쓴 올림픽
IPCC "20년 이내 지구온도 1.5도 이상↑...큰 재앙"
도쿄는 '열섬현상', 서울은 '열돔현상' 시름
전 세계 지구 온도 낮추기 위한 노력 이어져
최고 열관리책임자(CHO) 임명·거대 '도시 숲' 조성
"20년 골프하면서 이런 더위를 경험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여자 골프에서 5대 메이저 트로피와 올림픽 금메달을 모두 따내 세계에서 유일하게 '골든 커리어 그랜드 슬램' 타이틀을 보유한 박인비(33). 하지만 이번 2020 도쿄올림픽은 그에게 버거운 도전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폭염과의 전쟁 때문이다. 한낮 기온 35도 이상의 더위는 올림픽 2연패라는 타이틀에 빨간불을 켜게 했다.
박인비는 "하루하루가 정말 마라톤 경기처럼 힘들었다"며 컨디션 난조를 인정했다. 경험한 적 없는 역대급 더위는 '침묵의 암살자'로 불리는 박인비도 피해갈 수 없었다.
박인비뿐만 아니다. 테니스,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비치발리볼, 양궁, 경보, 마라톤 등 야외 경기에서는 선수가 열사병으로 실신하거나 경기를 포기하는 일도 발생했다. 오죽했으면 테니스 세계랭킹 2위 다닐 메드베테프가 "만일 내가 죽으면 책임질거냐"라며 극심한 더위로 인한 고통을 주심에게 따졌을까.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의 기후변화를 예측하지 못한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도 문제다. 2013년 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도쿄유치위원회는 "선수들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이상 기후"라고 말했지만, 8년 후 현실은 '온화하고 맑은 날씨'와는 거리가 멀었다.
심지어 57년 전 도쿄올림픽 때보다 운영 능력이 떨어졌다. 1964년 도쿄올림픽 당시 주최측은 여름 더위를 경계해 10월에 올림픽을 개최했다.
지구온난화로 이제 올림픽 개최지와 시기 등을 다시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 뜨거워지는 지구에 전 세계 도시들은 시름하고 있다.
"도쿄올림픽 선수들은 가장 뜨거운 대회로 고문당했다"
일본 NHK 방송의 기상캐스터 모리 사야카는 도쿄올림픽 기간 내내 뜨거운 도쿄 날씨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고지했다.
4일에는 "오늘 오후 1시 도쿄의 기온은 33.7도, 습도는 62%"라며 "이것은 마치 43도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정말 도쿄에서 올림픽 선수들과 자원봉사자들은 고문당하고 있다"고 했다.
올림픽 골프 1라운드가 진행된 이날은 박인비가 "경험한 적 없는 더위"라고 말했던 바로 그날이다. 야외에서 경기하는 선수들은 체감 온도 43도를 고스란히 느끼며 땡볕에서 활동했다. 쓰러지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였다.
도쿄의 기온은 상승 중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에 따르면 도쿄는 1900년 이후로 기온이 약 2.9도 상승했다. 지구 평균 기온의 거의 3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는 도시 개발 방식과 관련이 깊다. ①아스팔트 ②강철 ③콘크리트 ④벽돌 같은 건축 자재가 더 많은 열을 유지하기 때문에 도시 지표면의 온도는 더 올라간다. 이 때문에 따뜻한 공기가 갇히면서 도시 기온이 바깥 기온보다 높아지는 '도시 열섬 효과'로 이어지게 된다.
뜨거워지는 지구의 위험성은 올림픽 선수들의 생명까지 위협하고 있다. 미국의 현대 스포츠의학 보고서에 따르면 열사병은 운동 선수들 돌연사의 세 가지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폭염으로 인해 15~19세 남성이 많이 사망하는 경향을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종종 덥고 습한 환경에서 격렬한 운동이 체온을 40도까지 끌어올릴 때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 세계 축구 팬들이 기다리고 있는 2022 카타르 월드컵은 겨울로 연기됐다. 대개 6~7월에 월드컵이 열렸지만 내년에는 11월 21일부터 한 달 동안 진행하기로 했다. 중동 국가 카타르의 6~7월 최고 기온은 40도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스포츠 축제 운영 방식을 바꿀 때가 왔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기후변화와 스포츠 세계화로 인해 각종 행사가 기온을 포함한 날씨의 영향을 더 많이 받게 될 터. 어쩌면 지구의 기온 상승으로 인해 스포츠 대회를 열지 못할 날이 올 수도 있다는 우울한 전망도 있다.
러셀 시모어 영국 지속가능한 스포츠협회(British Association for Sustainable Sport)설립자는 앞으로 스포츠 축제의 목적이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구온난화가 기온을 높이고 올림픽을 스포츠 실력을 겨루기보다는 '인내력 테스트'로 바꾸려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선수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능력을 뽑아내 테스트해야 하는데 인간 생리에 적대적 환경에서 경쟁해야 한다"며 "스포츠에 대한 사랑과 열망은 잔혹한 상황에 처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인간에 의해 뜨거워진 지구...20년 안에 큰 재앙 온다"
"장기간의 폭염이 숲을 부싯돌 상자로 만들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최근 그리스와 터키, 이탈리아 등 남부 유럽 전역으로 번지고 있는 대규모 화재의 원인을 이렇게 분석했다. 그리스는 30년 만에 최악의 폭염으로 지난주 기온이 45도까지 치솟았다. 전문가들은 독일과 벨기에 등에 범람한 홍수, 남유럽 전역을 휩쓸고 있는 산불의 원인을 "기후변화 위기"라고 입을 모았다.
이 같은 우려는 현실이 됐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9일(현지시간) "앞으로 20년 이내 지구 온도는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1.5도 이상 상승해 광범위한 기상 이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수백 명의 전 세계 과학자들이 작성한 이 보고서는 지구가 뜨거워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빨리 찾지 않으면 상황이 훨씬 나빠질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인간에 의해 뜨거워진 지구를 빨리 식히지 않으면 큰 재앙을 피할 수 없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다.
이러한 기후변화 위기는 인간 활동에 의해 야기됐다고 보고서는 꼬집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①화석 연료 연소 ②산림 파괴 ③기타 인간 활동으로 인해 배출되는 온실 가스로 인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 수준은 현재 최소 200만 년 동안 최고점에 도달했다.
인간에 의한 재앙은 결국 인간에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보고서는 홍수로 이어지는 폭염과 폭우가 1950년대 이후 더욱 강해지고 빈번해지면서 전 세계 지역의 90% 이상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1970년대 이후 주요 허리케인과 태풍의 수가 증가했을 가능성은 66% 이상이라고 밝혔다.
또한 폭염의 농도와 횟수도 잦아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온난화가 없을 경우 극심한 폭염은 50년에 한 번씩 예상됐지만, 이미 그 주기가 짧아져 10년마다 일어나고 있다. 1.5도 기온이 올라가면 이러한 현상은 약 5년마다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만약 2도 상승하면 3.5년마다, 4도 상승 시 15개월에 한 번씩 폭염이 잦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나라도 기후변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 지난달에는 서울이 36도까지 올라가는 폭염을 경험했다. 현재까지도 낮에는 양산과 부채나 선풍기가 없으면 거리를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뜨겁다.
이는 고기압이 대기 중에 자리잡고 반구 형태의 지붕을 만들어 뜨거운 공기를 가두는 '열돔(heat dome) 현상' 때문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공기 순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대류권의 상부 또는 성층권 하부 영역에 좁고 수평으로 부는 강한 공기의 흐름인 '제트 기류'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만일 제트 기류가 제대로 활동하지 않으면 지구의 대기가 제대로 섞이지 않고, 지구 온도는 계속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비정상 상태가 이어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고기압이 정체돼 열돔 현상은 길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폭염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셈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인간의 몫이다. 우리나라는 최근 33도 안팎의 폭염이 지속되면서 열사병 등 온열질환자 수도 증가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5월 20일부터 이달 7일까지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로 신고된 온열질환자는 1,212명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동기간(753명) 대비 2.6배 증가했다.
이 기간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도 18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1년 감시체계가 운영된 이후 최악의 폭염 피해가 발생했던 2018년 48명 이후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도시의 온도를 관리하라!...녹지 조성↑·온실가스 배출↓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시(市)는 극심한 폭염 앞에 무릎을 꿇었다. 유럽 최초로 도시를 식혀줄 '최고 열관리 책임자(CHO:Chief Heat Officer)'를 임명했다. 기후변화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아테네의 온도를 관리할 새로운 직종이다.
CHO는 올초 미국의 플로리다주(州) 마이애미의 한 카운티에서 가장 먼저 등장했다. 점점 심해지는 폭염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관광도시인 아테네는 여름이면 주민들뿐만 아니라 관광객까지 폭염에 시달리곤 했으니 미국의 CHO에 눈이 번쩍 뜨일 만했다.
이번에 임명된 엘레니 미리빌리 아테네시 CHO의 임무는 막중하다. 우선 도시 전체를 냉각시키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자연친화적 방법을 찾는 건 당연지사. 도로와 건물을 재설계하고, 건축에 사용되는 자재를 검토하는 것도 그의 몫이 될 것이다.
이제 도시의 온도, 즉 열을 관리하는 일은 전 세계의 숙제로 떠올랐다. 도시에 녹지를 형성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것이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활용되고 있다.
스페인의 마드리드는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거대한 '도시 숲'을 건설하고 있다. 약 50만 그루의 나무가 있는 75km의 도시 숲이다. 도시 주변에 말 그대로 거대한 '녹색 벽'을 쌓고 있다고 유로뉴스가 전했다.
도시 숲의 효과는 꽤 클 것으로 보인다. 도시 전체의 대기질을 개선하고 열섬 효과를 잠재우며, 온실가스를 흡수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된다. 마리아노 푸엔테스 마드리드 환경도시개발위원은 "이 사업은 도로와 건물 사이에 놓여 있는 버려진 부지들을 활용해 연간 17만5,000톤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국은 전기 화물 자전거에 눈을 돌리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배달이 급증하면서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 및 도시 혼잡, 오염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기후 연구단체인 파서블, 자동차 사용 감소를 연구하는 웨스트민스터대 액티브 트래블 아카데미 등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전기 화물 자전거는 디젤을 사용하는 밴에 비해 탄소 배출량을 90%나 줄였다.
그래서 밴이 아닌 화물 자전거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이 보고서에는 "2018~2020년 유럽에 도입된 10만 대의 화물 자전거가, 매달 런던에서 뉴욕으로 왕복하는 약 2만4,000명을 태우는 데 필요한 이산화탄소를 절약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화물 자전거로 대체될 경우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극적으로 감소할 가능성은 말할 것도 없다. 대기 오염 및 도로 교통의 위험을 상당히 줄이는 데에도 이바지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이 보고서는 영국 정부가 화물 자전거 배달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내리고, 보다 강력하게 전기 자전거의 사용을 허용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에르실리아 베링기에리 웨스트민스터대 연구원은 "지난 10년 동안 운송에서 발생한 탄소배출량은 거의 줄지 않았다"면서 "최근 유럽에서는 도시의 모든 화물 운송 중 최대 51%를 화물 자전거로 대체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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