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연일 '주한미군 철수'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10일 담화에서 "미군이 남조선에 주둔하는 한 조선반도 정세를 악화시키는 화근은 제거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데 이어 11일 신홍철 주러시아 북한대사가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한반도 평화가 달성된다"고 강조했다.
주한미군 철수는 김일성 주석 때부터 바라던 바다. 그러나 김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대에는 북한은 주한미군 주둔 필요성에 대한 이해한다는 태도를 취해왔다. 그간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실질적인 의제로 다뤄지지는 않은 배경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으로 상황은 달라졌다. 2016년 7월 정부 대변인 명의의 성명에서 '조선반도 비핵화' 5대 조건 중 하나로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했다. 다만 2018년 3월 평양을 방문한 정의용 외교부 장관(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한미연합군사연습(한미훈련)으로 남북관계가 단절돼선 안 된다"고 하자, 김 위원장은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이해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핵화 논의서 '대미 협상력' 강화
북한이 다시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꺼낸 배경은 경색된 북미대화에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풀이된다. 향후 북미 간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테이블에 올리겠다고 예고한 것이다 다름없기 때문이다.
관철될 가능성은 낮다. 다만 주한미군 철수 요구를 앞세워 '대북 적대시 정책 일부 폐기' 등 성과를 기대할 수는 있다. 최대치 요구조건을 제시한 뒤 이보다 한 단계 낮은 성과물을 챙기는 건 북한의 전형적인 협상 전술이다.
핵 개발 명분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미군이 철수하지 않으면 핵을 포기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울 수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비핵화가 아닌 핵 군축 협상으로 가자는 의미"라며 "미국에 자신들을 회담장으로 부르려면 상응하는 무언가를 준비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러시아 끌어안기 포석도
중국과 러시아를 끌어안으려는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다.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할수록 남남갈등이 커지고 한미동맹에 균열이 나타날 수 있어서다.
실제 '한미일 3각 동맹'을 강조하는 조 바이든 미 행정부 출범 이후 북중러 협력이 공고화하고 있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6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현 정세하에서 한미훈련은 건설적이지 않다.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 복원을 희망한다면 긴장을 고조시키는 어떤 행동도 하면 안 된다"며 북한 편을 든 것이 대표적이다. 신홍철 북한대사도 타스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공통의 위협인 미국에 맞서 북러 협력을 활성화하겠다"고 말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북한 입장에선 주한미군에 대한 지속적 비난을 통해 중국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며 "동북아에서 중국과 전략적 행보를 같이하는 러시아도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국익에 부합한다고 볼 것"이라고 했다.
한편 미 공군은 11일(현지시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미니트맨-3의 시험발사 장면을 공개했다. 한밤에 진행된 발사 장면을 당일 공개한 것을 두고 한미훈련에 반발해 도발 카드를 꺼낸 북한에 경고를 보낸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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