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 계기로 돌아 본 논란의 역사]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金 양정모 첫 혜택
올림픽 3위, 아시안게임 1위 이상이 대상
"국위 선양보다 공정·형평성 중시" 논란 커져
"우상혁 선수에게 동메달 혜택을 주세요." "야구팀이 동메달을 따도 군 면제 혜택을 박탈하세요."
2020 도쿄올림픽 기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입니다. 육상 높이뛰기에 출전한 우상혁(25·국군체육부대) 선수는 24년 만에 한국 신기록(2.35m)을 세우며 당당히 4위에 올랐습니다.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 육상 트랙·필드 종목에서 올림픽 사상 최고의 성적을 낸 만큼 '올림픽 3위 이내 입상'이라는 병역 특례 기준에 미치지 못했어도 혜택을 주자는 취지였죠. 바로 전역할 수 있는 기회는 놓쳤지만, 국군체육부대가 우 선수에게 포상 휴가를 주기로 했다는 소식에 잘됐다는 누리꾼들의 반응도 나왔네요.
반면 인기 종목인 야구는 정반대 의견이 나왔습니다. 호주·대만 등 강팀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불참해 6개 참가국 중 3위 입상이 상대적으로 쉬웠던 데다 투혼이 보이지 않는다는 팬들의 평가가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대형 스포츠 행사가 열릴 때면 병역 특례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곤 했습니다. 도쿄올림픽도 예외가 아니었죠. 왜 병역 특례 논란은 되풀이되는 걸까요? 그 역사를 통해 이유를 찾아봤습니다.
박정희 시절 도입 병역특례...군사훈련 받고 봉사활동 해야
체육인 병역특례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인 1973년 '병역의무의 특례규제에 관한 법률' 제정으로 도입됐습니다. 과학·기술 분야 병역특례와 함께 '학술·예술 또는 체능의 특기를 가진 자'도 보충역에 편입시켜 현역병 징집을 사실상 면제해주기로 한 건데요.
구체적 기준은 없었고, 국무총리가 위원장이 된 특기자선발위원회가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의 추천을 받아 '국가 이익을 위해 그 특기의 계발 또는 발휘를 필요로 한다고 인정되는 자'를 선발해 3~5년 해당 기관 또는 같은 분야에 종사하면 병역을 수행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이 조항은 사문화됐다가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양정모(레슬링) 선수가 처음으로 이 혜택을 누렸다고 합니다.
전두환 정권은 서울올림픽 유치가 확정된 1981년 법 시행령을 바꿔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합니다. 세계올림픽대회·세계선수권대회(청소년대회 포함)·유니버시아드대회·아시안게임·아시아선수권대회(청소년대회 포함)에서 3위 이상으로 입상한 자, 한국체육대학 졸업자 중 성적이 졸업 인원 상위 10%에 해당하는 자로 대상을 정합니다.
하지만 올림픽 이후 병력 자원 부족, 형평성 논란 등이 불거졌고, 1990년 노태우 정부는 현재와 같은 올림픽대회 3위 이상, 아시안게임 1위 입상자로 대상을 대폭 줄입니다.
여러 차례 보완을 거친 현 병역특례제도는 군역의 의무를 완전히 없애주는 면제와는 다릅니다. 병역특례를 받은 선수들은 체육요원 신분으로 34개월 복무하는데, 일반 사회복무요원과 똑같이 3주 기초 군사훈련을 받은 후에 자신의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544시간 봉사 활동을 해야 합니다. 복무기간이 끝나면 예비군에 편입되는 것은 일반인들과 같습니다.
축구 월드컵·야구 WBC 호성적에 예외 적용... 논란 시작
이 원칙은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깨집니다.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을 비롯한 국회의원 146명이 이한동 국무총리에게 "16강 이상 진출할 경우 축구 대표 선수들에게 병역혜택을 달라"고 건의했지만 정부가 난색을 표했는데, 4강이라는 기적을 일궈내자 분위기가 바뀐 겁니다.
사상 첫 16강 진출을 확정한 예선 마지막 경기 후 대표팀 라커룸을 찾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주장이었던 홍명보 선수(현 울산 현대 감독)가 "선수들 병역문제를 대통령님께서 특별히 신경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며 총대를 메고 건의해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낸 일화는 유명하죠.
당시 다른 종목과의 형평성 문제로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정부는 '월드컵축구대회에서 16위 이상의 성적을 거둔 사람'에게 병역특례 혜택을 부여하는 것으로 규정을 손봅니다.
처음 금기를 깨는 것이 어렵지, 이후에는 처음처럼 어렵지 않죠. 4년 뒤 비슷한 사례가 생깁니다. 2006년 야구를 잘하는 16개 나라가 참가해 처음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이 승승장구하며 4강에 진출하자 정치권과 정부가 야구 대표 선수들에게 병역특례를 적용하기로 하죠.
특히 2004년 9월 프로야구 선수 51명이 연루된 초대형 병역비리가 터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도 이런 결정이 나와 당시 반대 여론도 상당했었지만, 결국 2006년 9월 관련 규정을 바꿔 'WBC 4위 이상 입상자'도 병역특례 대상에 포함시킵니다.
이후 "지나치게 병역혜택을 남발한다"는 비판 여론과 다른 비인기 종목과 형평성 논란이 또 제기되자 정부는 2007년 말 병역법 시행령을 개정해 월드컵 16강과 WBC 4강은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국위 선양보다 형평성 중시 사회 분위기에 병역특례 논란 반복
국가대표 선수들이 열심히 노력해 국위 선양에 앞장서고 국민에게 자부심을 심어준 것은 분명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인 병역 의무를 두 차례나 규정까지 바꿔가며 특례 혜택을 줄 정도로 원칙 없이 운영한 선례는 큰 파장을 남깁니다. 대형 스포츠 행사가 열릴 때마다 병역특례가 입길에 오르는 거죠.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준우승했을 때 다시 야구계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병역혜택을 주자"는 건의가 나왔지만, 국방부는 "이미 몇 년 전 (병역특혜를 주지 않는 것으로) 입장이 정리된 사안"이라며 일축합니다.
2012년 런던올림픽 때는 축구대표팀이 3ㆍ4위전에서 2-0으로 앞서 동메달이 확정된 후반 44분에 투입된 김기희 선수가 단 4분을 뛰고 병역특례를 인정받아 '4분 전역' 논란에 휩싸였죠. 이는 '단체경기 종목의 경우 실제로 출전한 선수만 혜택을 받는다'는 조항 때문이었습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더욱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축구대표팀과 야구대표팀 모두 결승전에서 일본을 꺾고 금메달을 따 병역혜택을 받는데, 축구는 칭찬과 축하가 쏟아졌지만, 야구팀은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병역특례 논란은 시민의식 높아져 불공정 바로잡는 과정"
왜냐하면 축구는 우승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야구는 라이벌인 일본은 사회인선수, 대만은 실업선수가 주축을 이뤄 전원 정상급 프로선수로 구성된 우리 대표팀이 우승하지 못하면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었습니다. 당연히 우승해도 병역특례를 줄만큼 대단한 성과냐는 여론이 나올 수밖에 없었겠죠.
또, 야구는 병역특례 대상자 9명 중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면 현역으로 입대해야 했던 오지환ㆍ박해민이 포함됐었죠. 더욱이 두 선수는 전년도(2017년)에 상무와 경찰청 입대를 포기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아시안게임에서 병역특례 받을 것을 노렸던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습니다.
선수 선발에 어떤 부정이나 청탁은 없었지만, 논란이 커져 선동렬 야구대표팀 감독과 정운찬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가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 진땀을 빼기도 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병역 문제에 대한 시대적 흐름에 둔감해 국민 정서를 반영하지 못했다"며 머리를 숙였죠.
이를 두고 당시 언론에서는 "국민들의 시민의식이나 사회정의에 대한 의식이 높아져 병역특례 제도가 공정하지도 않고, 명분도 약해졌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며 "과거 불공정한 관행들을 하나씩 바로잡아가는 과정"이라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종목별 특례 기준 달리하면 또 논란... 보상 체계 다양화 필요"
병역특례를 비롯한 대체복무제도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자 정부는 병역자원 부족 문제 해결과 병역의무 이행 형평성을 감안해 2018년 12월 관계 부처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 11개월 동안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이듬해 11월 대체복무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습니다.
정부는 대체복무 인원을 감축하기로 했지만, 체육 분야 병역특례는 현행대로 유지하는데요. 다만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선발규정'에 선발 방식 절차 요건 등 핵심 사항을 명시하고, 국가대표 선발의 구체적 기준·과정 및 관련 자료를 대외에 공개하는 등 공정성·투명성을 강화하고, 논란이 됐던 '단체 종목 경기출전자 편입 인정 조항'을 삭제해 경기에 뛰지 않은 후보 선수도 똑같이 혜택을 받도록 하죠.
이번 2020 도쿄올림픽에서는 수영 다이빙 육상 등 한국이 전통적으로 열세인 종목에서 메달은 못 땄어도 한국 신기록과 훌륭한 기량으로 선전한 선수들이 유독 많아 종목별 혜택 기준이 불합리하다는 목소리가 나왔어도 병역특례 규정은 지켜졌습니다.
전문가들도 예외 인정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입니다. 김상겸 한국스포츠엔터테인먼트법학회 회장(동국대 법과대학 교수)은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종목마다 특성을 반영해 기준을 달리하면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할 수 있어 공통의 객관적 성적 기준은 불가피하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체육계에서는 "최근 엘리트 체육을 지양하는 분위기 속에서 병역특례는 최소한의 엘리트 체육 생태계 유지와 동기 유발, 선수 생명을 오랫동안 지속하도록 배려하려는 목적도 있는 점을 감안해 장기적으로 보상체계 다양화 등 개선이 필요하다"(유재구 중앙대 스포츠과학부 교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6개월 후 베이징 동계올림픽(2월)을 시작으로 항저우 아시안게임(9월), 카타르 월드컵(11월) 등 내년에도 굵직한 대형 국제 스포츠 행사가 열릴 예정이라 또 어떤 병역특례 문제가 불거질지 지켜봐야 할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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