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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정부” 비판
복지축소 겨냥한 ‘보모국가’ 낙인찍기와 유사
정부간섭 개인 자율성 침해 논란은 무의미
“현재 이 정부의 목표 중에 제일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국민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11일 발언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비난은 물론이고, 국민의힘에서도 “국민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부정하시는 분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신 것이 의아스럽다”는 비판이 나왔다. "국민의 삶을 정부가 모두 책임지겠다는 게 바로 북한 시스템”이라며 색깔론 공세까지 폈던 최 전 원장은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이튿날 “정부의 역할은 모든 국민이 자율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며 자신의 발언이 소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가족모임에서도 국민의례를 하는 그가 개인 자율성의 옹호자연(然)하는 건 아무리 봐도 어색하지만, 따질 건 따져보자.
최 전 원장이 비판하는 “정부가 국민의 삶을 책임진다”는 목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7월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공개했다. 사회복지ㆍ문화분야 32개 정책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이후 ‘포용적 복지국가’ 만들기라는 청사진으로 설명했다. 기초연금ㆍ국민연금 같은 사회보험의 보장성을 높여 격차를 완화하고 교육ㆍ보건ㆍ복지와 같은 사회서비스의 공공성을 강화해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사회복지 정책에 국가재정을 최소로 투입해 온 이전 정부의 관성에서 탈피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게 핵심적 차별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모든 지표는 한국의 사회복지 투자가 국가 규모에 비해 과소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급격히 팽창하기는 했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지출은 12.2%(2019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3.1%ㆍ2015년)의 절반 수준이다.
복지국가가 국민 개인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최 전 감사원장식 주장은 새롭지 않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상징되는 영국 등 서구의 복지체제가 세계경제의 저성장으로 위기에 빠지자 대처와 같은 신우파들은 이를 공격하기 위해 ‘내니 스테이트(nanny state)’라는 개념을 들고 나왔다. 복지국가는 정부가 보모처럼 개인을 간섭하는 국가라는 경멸적 낙인찍기다. 국민들이 정부의 무분별한 현금복지에 매달려 근로의욕이 떨어지는 ‘복지병’에 걸린다는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 하지만 한국은 서구와 달리 저성장시대에 본격적으로 사회복지에 투자를 한 후발 복지국가다. 어느 정치학자의 표현대로 겨우 ‘무복지 상태에서 작은 복지국가로 진화’한 국가에서 정부가 개인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개인을 정부에 예속된 상태에 빠뜨리고 있다는 주장은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가.
‘포용적 복지국가’ 담론의 주요 설계자인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 담론이 “개인이 책임과 자율성을 누리기 위해 최소한의 조건을 만들어주려는 청사진”이라고 반박했다.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든 아니든 현 정부가 추구한 ‘포용적 복지국가’의 성적표는 신통치 않다. 기초연금 인상, 국민취업제도(실업부조) 시행 등 공적 소득보장제도는 다소 두터워졌지만, 고령화 사회의 핵심과제이기도 한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 정책은 평가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지지부진하다. 정부가 힘을 쓰기는커녕 공공성 강화를 저지하려는 민간서비스 공급자들은 위풍당당하다.
다행인 것은 최 전 감사원장이 “뒤처지는 국민들에 대한 책임, 이건 국가가 기본적으로 해야 한다”며 정부 책임을 전면 부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코로나 사태로 긴급복지 신청과 기초생활수급자가 폭증하는 등 사회적 약자들이 재난적 상황에 처해 있다는 걸 감안하면 당연하다. 선별복지가 됐든 보편복지가 됐든 ‘국민의 삶’에 대한 정부의 책임은 점점 더 강조될 것이다. 정부의 간섭이 개인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논란은, 2021년 한국에선 별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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