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곤충은 겹눈입니다. 수많은 낱눈으로 들어온 영상을 모아 사물을 모자이크로 식별합니다. 사람의 눈보다 넓은 시각, 더 많은 색깔구분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대선레이스가 점점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거칠고 복잡한 대선판을 겹눈으로 읽어드립니다.
대통령이 되려면 먼저 대통령 후보가 돼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 되기보다 (주요 정당의) 대통령 후보 되기가 더 어렵다. 산술적으로 봐도 여당에선 여섯 명이, 야당에선 열서너 명이 각각 한 자리를 놓고 싸우고 있다.
‘경선 후보’라는 직함에서 ‘경선’이라는 단어를 떼내면 상황은 완전히 바뀐다. 백여 명 이상의 소속 의원과 당직자들, 수십만 당원, 유권자 중 30% 이상의 고정 지지층이 든든하게 받쳐준다. 돈 걱정도 사라진다.
진영 맞대결 구도로 펼쳐지는 대선은 전략도 복잡하지 않다. 지지층을 다지고 중간층을 설득해 견인하는 게 전부다.
직선제 부활 이후 정권 재창출 사례는 네 번이다. 1987년(전두환→노태우), 1992년(노태우→김영삼), 2002년(김대중→노무현), 2012년(이명박→박근혜) 모두 여당 후보가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통해 승리했다. 노태우와 노무현은 전임자와 전략적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김영삼과 박근혜는 “나 말고 대안이 있냐”는 식으로 현직 대통령을 거칠게 몰아붙였다.
정권 교체 사례는 세 번이다. 1997년(김영삼→김대중), 2007년(노무현→이명박), 2017년(박근혜→문재인) 야당 승리의 공통점은 안정감의 강화 혹은 거부감의 약화다. 김대중은 ‘유신 본당’이자 3당 합당의 한 축이었던 김종필과 DJP연합을 구성했다. 이명박은 실적과 탈이념적 실용주의를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웠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을 맞은 2017년 문재인도 ‘국민통합’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선거 과정에서 ‘청산’을 강조했던 야당 후보는 없었다. 즉, 반대편을 바라본 사람들이 본선에서 이겼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 즉 경선은 다르다. 내부 경쟁에선 변수가 너무 많다. 무엇보다 ‘민심’과 ‘당심’의 차이가 꽤 크다. 당심 내에서도 강경파와 온건파가 갈리고, 전통적 지지층과 신규 유입층의 성향이 다르다. 이중에서도 늘 강경파의 목소리가 크게 마련이다. 게다가 여당의 경우에는 청와대와의 관계 설정이 중요하다.
경선에서 이겨야 후보가 되고, 후보가 돼야 대선에서 이길 수 있는데, 문제는 경선의 과제와 본선의 과제가 다르다는 점이다. 심지어 민심에 부합하는, 옳은 말 하면 ‘누구 편이냐’고 공격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여당 1, 2위 주자들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저를 싫어하는 검찰과 경찰” “정경심 교수 항소심 선고, 조국 전 장관과 함께하겠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한다. 야당 선두 그룹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을 불구속 수사하려 했었다” “헌법가치를 가장 잘 지킨 대통령은 이승만” 같은 소리가 나온다.
하나같이 본선에선 절대 도움이 되지 않을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일단은 경선에서 이기고 보자’ ‘어차피 경선은 정체성이고 본선은 확장성인데 방향 전환을 하면 된다’는 셈법인 것이다.
맞는 말이다. 경선에서 지면 본선 전략이나 확장성은 써먹지도 못한다. 하지만 경선 끝나면 바로 본선이다. 후보가 된 자신을 맨 먼저 맞이하는 것들은 경선 때 쏟아놓은 언행들이다.
경선 통과가 대통령 당선의 필요조건이라면 본선 경쟁력은 충분조건이다. 과거 김영삼, 김대중, 박근혜 같은 이들은 형식적 경선 전에 이미 필요조건을 갖추고 일찍부터 충분조건에 집중했다.
2022년을 바라보는 ‘경선 후보’들에게는 달리 방법이 없다.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의 줄타기에 성공해야만 두 번의 전쟁에서 다 이긴다.
그런데 실은, 당원과 지지자들이 경선에서 제일 중요하게 보는 것도 ‘정체성’이 아니라 ‘본선 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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