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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치명적 전염병은 종종 인류 역사의 변곡점이 되기도 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 고대 그리스의 패권을 두고 벌어진 펠레폰네소스전쟁이 그랬다. 개전 이듬해인 BC 430년 아테네를 휩쓴 정체불명의 전염병은 결국 아테네의 패전과 몰락을 재촉했다. 14세기 중엽 유럽 인구 3분의 1에 가까운 희생자를 낸 흑사병도 장기적으로 봉건제를 무너뜨린 동력으로 평가된다. 소작농이 흑사병 창궐로 급감하자 영주들의 몰락이 시작됐고, 나아가 근대를 여는 체제 변화가 전개됐다는 얘기다.
▦ 1531년 스페인 정복자 피사로가 불과 180명의 병력으로 잉카제국을 무너뜨린 건 황제의 목줄을 움켜쥔 교활한 책략 덕분이었다. 하지만 정작 잉카문명을 파괴한 건 정복자들이 제국에 퍼뜨린 천연두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바다. 근ㆍ현대 들어서도 역사를 흔든 전염병은 이어졌다. 결핵과 콜레라부터, 20세기 초 전 세계를 휩쓸며 1억 명에 이르는 희생자를 낸 스페인독감과 ‘신의 저주’로 불린 에이즈에 이르기까지 악명의 목록은 끝이 없다.
▦ 전염병 병원체의 양대 축은 박테리아(세균)와 바이러스다. 박테리아성 전염병은 흑사병과 콜레라, 결핵 등이다. 주로 항생제를 투여하고 수액을 보충해 치료하며, 오늘날에는 치료와 예방이 가능한 상태가 된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바이러스성 전염병으론 천연두와 에이즈, 통상적 인플루엔자나 변종들인 메르스, 사스 등이 열거된다. 항생제도 듣지 않으며, 전염 확산 과정에서 숙주세포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변이가 발생해 퇴치가 어렵다.
▦ 지금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도 인류의 방어력과 경쟁이라도 하듯 왕성한 변이를 나타내고 있는 중이다. 이미 알파(α)부터 람다(λ)에 이르는 5종의 주요 변이가 출현했고, 당장은 델타(δ) 변이가 지배종으로 번지고 있다. 문제는 더 무서운 변이의 출현 가능성이다. 미국 뉴스위크는 델타 변이가 마치 스테로이드를 맞은 것처럼 강력해져 ‘심판의 날(Doomsday) 바이러스라고 할 만한 변이로 진화할 수 있다는 학계의 우려를 전하기도 했다. 코로나19가 인류 역사에 어떤 변곡점을 만들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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